대학 평가 세계 00위? 학생들은 불행하다

[복지국가SOCIETY] 사람 키우려면 대학 공공성 높여야

대학교 앞을 거닐다 보면 "OO대학교, 대학 평가 세계 △△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현수막들은 한국의 대학 교육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적으로 높은 순위를 가진 한국 대학들에 대해 정작 우리 학생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4년제 대학의 교수·학습 역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전공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에서 2014년 64.3%로 4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교양 수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기간 78.8%에서 54.5%까지 하락하여 절반가량의 대학생들이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등록금 비싼데, 교육 투자는 절반

이처럼 대학 평가 순위와 실제 수요자인 학생들의 만족도 간에 괴리가 생긴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하나의 교육제도가 수요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측면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크게 대학 내부적인 문제들과 정부와 사회라는 대학 외부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대학의 재정 운용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등록금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투자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의 78%는 사립대로서, 이들의 등록금은 8554달러에 이른다. 국공립대 역시 4773달러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금액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미국과 영국을 이어 3위이다. 국공립대 비중이 2%에 불과한 전문대학의 등록금까지 감안하면 순위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 <표1> 2012년 국공립대 및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단위 : 달러, 구매력지수 환산액. 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처럼 학생들이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는데도, 교육에 투자되는 돈은 많지 않다. 사립대들이 5년간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들어간 비용들을 추계해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산인 건축 적립금과 법인에서 들어오는 자산 전입금의 비중은 44.4%에 그쳤다. 즉, 나머지는 다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또한 우리 대학들은 교육보다 연구 실적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국립대의 경우 일 년에 쓰는 논문 편수에 따라 교수의 연봉이 산정된다. 뿐만 아니라 임용 및 승진도 연구실적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교수들이 학생들과의 학습보다 개인적인 연구에 급급하도록 만들었다. 대학 교육의 대부분이 토론식,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여전히 중등교육의 연속선상으로 불릴 만큼 일방향의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영향이 크다.

이처럼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등록금의 상당 부분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대학들의 토건 자산을 늘리는 데 투자되고, 연구 위주의 대학 운영 방식은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대학에 성과 부풀리기 요구하는 정부

대학의 이러한 운영 방식들은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1990년~2000년대 한국 고등교육 정책들의 목적은 대학들 간 경쟁체제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근거하여 공적 자원을 배분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 당국들이 '교육'의 관점이 아니라 성과를 양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경영과 마케팅'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경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율화·특성화 정책들은 대학들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수익성 없는 학문이나 수량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대학의 고유한 가치들을 대학 밖으로 밀어냈다.

우리나라는 지출 구조상으로도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 <표2>를 보면 고등 교육에 대한 한국 정부 부담이 OECD 평균보다 작은 반면, 민간 부담은 거의 4배 정도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재정적으로도 정부의 역할이 작은 상황에서 대학에 대한 자율화 및 특성화 정책은 대학들의 목소리만 더 키워왔다.

▲ <표2> 2012년 GDP 대비 교육비 비율(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러한 상황에서 조·중·동 등 각종 언론에서 대학 평가 지표들을 개발하여 대학 서열화를 조장했다. 최근 6년간 전국 4년제 사립대학 홍보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213개 대학에서 언론 홍보를 위한 지출액은 1392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세계대학평가 기관의 수입 중 4분의 1은 한국 대학들이 충당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하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문화도 한몫했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78%에 이르는 고학력 국가이다. 노동시장의 왜곡으로 인해 대학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 특히 명문대생과의 임금 차이가 커지면서 입시 경쟁이 과열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뽑는 위치에 있는 대학들이 갑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대학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의 질을 형성하는 데 마지막 단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중등 교육을 통해 생긴 경험들을 한층 더 심화된 지식으로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함께 공유하고 생산하게 된다. 세계은행에서도 대학 교육을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하듯이 사회적 중요성이 크다. 이러한 역할이 있기에 대학 교육은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회로 진출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교육은 사회에서의 '생존'에 관한 교육(직업 교육)과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가치에 대한 교육(인문학이나 예술)이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재원과 정책의 영역에서 대학에 지나친 자율성을 부여한 결과 공공성이 매우 약하다. 이로 인해 돈이 되지 않는 후자의 교육은 경시되고 전자에만 집중되고 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보다 공급자인 대학 위주로 성과에 급급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 키우는 교육 위해 대학 공공성 높여야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을 키우는 대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대학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며 교수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지식에 우왕좌왕하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니라, 교수와 다른 학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지식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학생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한층 더 발전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대학평가 거부 선언에 참가한 서울 시내 8개 대학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2014년 10월 6일 오후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대학평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서어리)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큰 만큼 정부는 공공 재원을 투자하여 대학들의 무분별한 경쟁을 막아야 한다. 지금처럼 재원 운용에 대학의 자율성이 큰 상황에서 반값 등록금과 같이 재원만 지원해주는 정책은 일정 부분 등록금 인상률은 통제할 수 있겠지만, 등록금 액수를 근본적으로 낮추기 어렵다. 재원의 운용이 전적으로 대학의 손에 맡겨져 있어 불투명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 재원을 투자하되, 대학들의 재정 운용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들 간의 불필요한 서열화 경쟁을 위한 홍보비, 건축비 등을 통제해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들이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가 아니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투자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 대학 수가 포화 상태인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수년간 학생 수가 미달된 학교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취업률과 같은 양적지표에 의해 인문사회계열의 순수 학문 학과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서 단지 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배우는 인문 철학 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단지 대학들이 양적 지표에만 급급해하지 않도록 정부가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에서 대학 졸업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과다한 입시 경쟁을 진정시키고 대학들 간의 서열화도 완화시킬 수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은 40% 정도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는 더 심화된 지식을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노동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낭비되는 사회적 자원들이 많다. 따라서 대학 진학률을 낮추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이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많은 대학들에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학과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취업률에 보탬이 안 되는 인문 사회계 위주의 통폐합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정책들로 몇 년 공부했던 학과가 없어지는 피해를 본다. 이 학생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단지 순위, 취업률 등 성과위주의 양적 지표에 급급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의 사회 구성원을 양성한다는 관점으로 대학 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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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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