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가입하는 '부모 보험' 제도 만들자

[복지국가SOCIETY] 아이 간병 휴직은 '임시 육아 휴가제'로

가족 정책은 사회 정책의 핵심

복지국가에서 가족이란 개인과 사회 간 통합의 고리라는 의미가 있다. 자녀가 있는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육아, 교육, 주거 그리고 가족들의 건강관리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생활 및 여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소득 행위, 즉 직업 생활이 빠질 수 없으며, 이외에도 부모는 소득 생활 이후의 자신들의 노후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가족이 원만히 유지되려면 이러한 소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사회 정책이 필수적이다. 가족을 중심에 둔 다양한 사회 정책이 적절하게 연계될 때 비로소 국민의 기본적 행복추구권이 보호될 수 있으며, 복지 정책의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가족 개념은 아직도 전통적이며 가족의 문제를 사적인 사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2001년 여성가족부가 발족한 이후 성 평등이나 저출산 문제를 두고 사회 정책으로서의 가족 정책의 개념과 필요성이 소개되었으며, 최근에 와서야 '일-가정 양립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가족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는 여전히 포괄적이지 못한 데다가 가족을 관장하는 부처가 보건복지부와 여가부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역할 분담을 통한 상승 효과를 기하기보다는 예산 떠넘기기식의 형식적, 관료적 행정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출산율, 높은 여성 고용의 단절 현상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노동 정책과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가족 정책을 사회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성 평등을 넘어 빈곤 예방 및 소득 불평등 완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족 정책과 노동 정책은 사회 정책의 핵심으로 두 기둥(two piller)이라 불리며, 이를 중심으로 소득 보장 정책과 사회서비스 제도가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연계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스웨덴 복지국가를 말할 때 '국민의 집'을 연상한다. 국민의 집 선언은 개인과 사회 간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하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제도 개선과 사회 개혁을 통해 해결하려는 주창이다. 그 중심에는 사람(human)으로서의 인간 존엄을 강조했다. 스웨덴은 이미 1930년 복지국가 건립 초기부터 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집(가정)을 통해 확대하려 했고, 개인을 가족·시장·가부장적 고용주 등 '낡은' 제도로부터 해방시키려 하였다(<경제 성장과 사회보장 사이에서>, J. Andersson, 2006). 스웨덴의 가족 정책은 '국민의 집'이 담고 있는 핵심 정신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 임신 상태와 비슷한 10킬로그램의 임신 체험복을 입고 임산부 체험을 하고 있는 예비 아빠들. ⓒ연합뉴스

가족 정책의 세 가지 목표와 '이인 소득자 모델'

가족 정책은 사회의 핵심 문제와 나아갈 방향을 가족의 관점에서 보고, 가족 단위를 통하여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족 정책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세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및 소득 불평등 현상을 완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출산력 증가 효과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셋째, 성 평등의 실현이다. 성 평등 실현이 가족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에서 이루어질 때 첫째와 둘째의 목표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성 평등 관점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인구의 절반(하위 50%)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불과 전체 자산의 2%인데 비해 상위 10%가 차지하는 부는 전체의 66%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자산 불평등도가 높다. 이토록 심화되어가는 양극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열려있어야 하며, 중간층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경제 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부부 모두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여 가구 소득을 높여야 하며, 양육, 교육과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소시켜 덜 가진 가족이 덜 빈곤해지도록 경제 정책과 사회 정책이 포괄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2인 소득자모델, 즉 부부의 맞벌이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가족 정책의 강화이다.

한국 사회가 우려하는 또 다른 문제는 출산력 저하에 의한 경제 활동 인구의 감소 추세이다.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는 인구구조의 노령화와 이에 따른 성장 동력의 상실, 그리고 저성장시대의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재원의 고갈로 이어진다. 다른 한편,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든 IMF 사태 이후 급증한 가족 해체, 1인 가족 증가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늘면서 가족 정책의 전면적 재편이 요구되고 있다. 동시에 청년층의 결혼 포기 추세 또한 주택정책과 자녀 양육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 형태의 변형, 한 부모 가족의 증가, 저출산·고령화, 아동학대 및 청소년의 사회적 일탈 등은 포괄적 가족 정책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가족 정책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내용

가족 정책이 동원하는 수단에는 출산과 관련된 '육아 휴직', '현금 부조', '서비스 공급 체계와 공급량' 등이 포함된다. 이 세 가지 지원 방법이 단수형인가 복수형인가, 또한 출산 후 직업 유지의 가능성에 따라 가족 정책의 기대 효과가 좌우된다. 더욱이 성 평등 정신과 아동의 권리 보호가 중심을 이루는가의 문제도 보편적 복지국가 여부를 가리는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지원 정책의 일관성과 주거 비용 차등 지원 정책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가족 정책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 내용을 아래에 살펴본다.

첫째, 모든 모성에게 부모 보험을 적용시켜야 한다. 부모 보험이란 '육아 휴직 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부모가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물적·사회적 제반 여건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이다. 부모에게 규정된 출산 및 육아 휴가 기간의 소득 대체 임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이후 직장 복귀를 보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2012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여성의 산전후 휴가와 배우자 출산 휴가 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출산한 여성은 3개월간의 산전후 휴가와 출산 휴가 이후 1년간의 육아 휴직이 가능하다. 부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배우자 출산 휴가가 최대 5일로 확대되었으며, 법정 육아 휴직은 남성에게도 1년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를 실제로 활용할 수 없는 한국의 기업 문화와 제도적 모순에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육아 휴직은 고용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업장의 정규직 여성 노동자에게만 허용된다. 이들은 2011년 전체 여성 노동자의 38.2%에 불과하다. 설사 모성이 보험 가입자일지라도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면서 육아 휴직 급여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다수의 모성이 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휴직 급여의 소득 대체율 50%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편이나, 직장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허용하는 민간 직장이 드물어 대부분의 모성에게는 고용 단절로 이어진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를 국정 운영 과제로 발표한 바가 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이에 몇 가지의 대안을 제시한다.

• 모성 보호 제도를 부모 보험 제도로 발전시켜 모성, 부성을 다 포함하는 성 평등 관점을 적용하여 제도와 내용을 포괄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 대상을 모든 출산 여성으로 확대하여 보호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소득 대체 수준도 점진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 현재 사용되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가 개념을 통일하여 '부모 휴가제'로 하고, 10세 미만 자녀가 병고 발생 시 휴가를 낼 수 있는 연간 일수를 법으로 정하고, 이를 '임시 육아 휴가제'로 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보편적 아동 수당을 통해 아동권을 보호하고 가구 소득을 지원해야 한다. 이것은 아동 수당 지급을 통한 자녀 부양가족에 대한 지원으로서 유자녀 가구와 무자녀 가구 간 생활 수준의 격차를 좁히려는 목적이 있으며, 특히 다자녀 가구를 돕는 효과가 있다. 아동 수당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아동들이 고루 건강하고 동등한 양육과 교육을 받도록 하는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국가는 가구 소득과 상관없이 자녀수에 따라 아동 수당을 지급함으로서 가족에게 직접 보상해야 한다. 이는 모든 아동이 평등하고 중요하다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하다. 이외에 자녀수와 소득에 비례한 주택 보조 수단으로서의 현금 부조 또한 참조할 필요가 있다.

▲ 지난 1월 29일 인천의 한 어린이집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셋째, 사회적 육아 서비스를 증대해야 한다. 부모 보험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큰 축은 보육과 유아 교육이라는 공적 서비스 체계이다. 참여정부 이래 보육에 대한 인식이 교육과 함께 국가가 관리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으로 바뀐 점은 바람직한 발전이며, 보육사업 예산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4배 이상 증가한 점도 고무적이다. 사회적 육아 서비스 체계는 2인 소득자 모델에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서 수요 욕구에 따라 반드시 확대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양과 질의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우선은 그동안 난맥상을 보여준 현행 보육 서비스체계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여 자칫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과 예산 낭비로 이어질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여야 한다.

• 보육은 가족 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주무 부처를 하나로 통일하고, 공공 서비스 체계의 중장기적 계획과 점진적 목표 달성의 지표를 설정해야 한다.

• 정부 보조금을 받는 보육 시설 이용의 우선권을 일하는 모성의 자녀에 부여하여야 한다. 전업 주부 자녀에게는 단시간제 유치원 시설을 확대하여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 아동 수당의 도입은 무상 보육 제도를 보완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보육료 지원의 개념이 '현금'에서 '서비스'로 바뀌어야 한다. 맞벌이, 외벌이, 취업한 한 부모 가구 등 가구의 형편에 따른 차등 대우로 취업 가구가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육 서비스는 예산의 고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철학과 정책 방향의 부재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육 서비스 제도가 가족 정책의 포괄적 목표 중의 하나로 설계되지 않고 현재와 같이 보육 정책 단독으로 발전될 때, 예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근본 목표를 상실하고 집행 실적만 남는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고 고용 단절을 해소해야 한다. 부모 보험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의 철저한 계획이 선행될 때 여성의 고용률을 제고할 수 있다. 이는 일자리 창출로이나 보육 예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수요 욕구에 대한 진단이 우선 과제이며, 이를 바탕으로 중·장단기의 정책 목표를 세우고, 시설 투자 프로그램과 운영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출산과 육아로 고용의 단절을 경험하는 여성의 피해는 노후의 삶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여 사회 경제적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가족 정책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전제

우리나라의 가족 정책 관련 예산은 아이 돌봄 지원, 한 부모 가족 지원, 다문화 가족 지원이 대부분이어서 여전히 어려운 가정을 위한 시혜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 정책으로는 출산력 증가의 효과는 물론 성 평등의 목적조차 달성하기 어렵다.

가족 정책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출산율 증가와 아울러 빈부 격차의 감소 효과가 크며, 여성 고용률 또한 높다. 자녀 부양가족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이들에 대한 소득 보장과 돌봄 및 사회 서비스 분야를 적극 발전시켜야 한다. 가족 정책은 가족 구조와 형태의 새로운 변화에 맞춰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고, 동시에 사회 정책 전반에 성 평등 관점이 구현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여성의 경제 활동 기간이 짧고 긴 것이 국민 연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2인 소득자 모델의 활성화는 노인 빈곤율의 감소와 노인 정책 전반에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정리하자면, OECD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 정책은 빈곤 해소, 성 평등 사회 구축, 그리고 출산율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와 여성의 사회적 능력과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가족 정책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저출산·고령화를 심화시킨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2인 소득자 모델과 아동권 보호에 기반을 둔 포괄적 가족 정책과 노동 시장에서의 철저한 성 평등 원칙이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전제라는 것이다. 이제는 좀 더 포괄적 접근 방법으로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국가 운영 방식과 체계를 설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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