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이수인이 노동자가 되기까지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③]

김경욱 씨는 1998년 육군 대위로 제대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잘나가던 군 장교가 갑자기 군복을 벗고 사회에 뛰어들었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눈감기 힘들었다. 자기도 비리에 동참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 내부에서 싸울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가 군복을 벗은 이유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출세라는 것도 하고 싶었다. IMF가 터진 1998년 프랑스계 대형마트 까르푸에 입사했다.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고용불안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회사 공채 1기였다, 1기 중 상당수가 나가고 동기는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까르푸 일산점, 분당점, 천안점, 가양점, 시흥점, 부천점 등 신규매장을 돌아다니며 매장 오픈하는 일을 주로 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소문을 듣고 프랑스계 매장 점장과 부장의 통역을 맡기기도 했다. 회사에서 최고실적을 내기도 했다. 우수 사원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메리트도 있었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 그가 일하던 까르푸 중동점에 새로 온 점장과 문제가 생겼다.(직원들 물갈이를 예고했다.) 까르푸 중동점장인 프랑스인 기수드릴 씨는 중동점 점장으로 와서는 회의시간에 "나의 목표는 인간청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날 부장이 당시 과장이었던 김경욱 씨를 회의실로 부르더니 점장의 지시라며 직원들을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직원들을 해고할 수는 없었다. 군대로 치자면 자기 직속 부하들 아닌가. 자기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경욱 씨는 그 자리에서 불법이라며 해고 지시를 거부했다. 그 날 이후 점장이 직접 김경욱 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김경욱 씨는 고민했다. 따를까, 떠날까, 싸울까. 김경욱 씨는 싸우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싸우기로 결심하고 방도를 찾았다. 까르푸에 노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인터넷에서 까르푸 노조를 찾아 가입원서를 제출했다. 2002년 말이었다. 당시 작업현장은 매우 험악하게 변해갔다. 까르푸 중동점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점장과 그의 수족인 부장, 그리고 그들에게 부당하게 징계 받거나 받게 될 직원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갔다. 일부 젊은 사람 중심으로 '우리가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뭉쳐서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 나왔다.

ⓒJTBC

자연히 작업환경은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점장의 눈치를 보는 구조가 됐다. 점장이 중동점에 부임한 지 1년 만에 많은 직원이 사직서를 쓰고 떠났다. 회사를 떠난 직원들 대부분은 본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점장의 압력과 횡포, 그리고 수모를 견디지 못해 떠났다. 김경욱 씨가 노조에 가입할 때의 회사 분위기였다.

이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하도 중동점 분위기가 흉흉하니 관리자 직급인 과장(김경욱 씨)이 노조에 가입한 것을 두고 까르푸 노조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김경욱 씨가 프락치가 아닌지 의심했다.

게다가 당시 까르푸 노조는 300일 넘는 파업 끝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회사에서 단협 조항에 '김경욱은 노조 위원장을 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으려 했다. 회사로서는 회사시스템을 잘 아는 김경욱 씨가 노조위원장이 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미리 선수를 치려 한 셈이다. 물론, 이는 부당노동행위이기에 무산됐다. 하지만 노조에서는 그런 전후맥락을 알지 못했다. 까르푸 노조 간부들이 김경욱 씨의 정체가 궁금한 이유였다.

도대체 김경욱이라는 사람이 누구야.

까르푸 중앙노조 간부들이 김경욱 씨에게 연락했다. '한 번 봅시다', 까르푸 중앙노조 위원장, 사무국장, 교선국장이 중동점으로 김경욱 씨를 만나러 왔다. 그때를 생각하면 김경욱 씨는 아직도 아찔하다고 했다.

지부가 설립돼 있지 않은 중동점에는 김경욱 씨보다 먼저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 3명 있었다. 그들은 비밀 조합원이었다. 물론, 그들도 자기 뒤로 누군가(김경욱 씨) 노조에 가입한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지부가 만들어지기 전이라 까르푸 노조는 중동점 소속 조합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노조 간부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김경욱 씨는 그때 중동점에서 자기보다 먼저 노조에 가입한 비밀조합원을 만났다. 그날이 첫 대면 자리였다. 테이블을 등지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 세 분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이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다름아닌 김경욱 씨 부하직원들이었다. 노조 간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기겁했다. 물론, 김경욱 씨 정도는 아니었다. 김경욱 씨는 순간 도망칠까 고민했다고 한다. 까르푸 노조 위원장이 "서로 잘 아는 사이죠?"라면서 앉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앉았단다. 황당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래서 대뜸 그들을 쏘아붙였다. 그들에게 정색을 하고 물었다.

"아니, 여기 왜 오신 거예요?"

나중에 그들이 노조에 가입한 이유를 들으니 더 황당했다. 새로 부임해온 김경욱 씨가 자신들을 괴롭혀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 김경욱 씨가 무척이나 싫었다고 했다. 김경욱 씨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자기가 부하직원들보다는 프로모션 즉, 협력업체 직원들 편을 많이 들기는 했다. 매장이라는 곳에도 나름 계층이 나눠진다. 관리직-정규직-비정규직-협력업체. 이런 도식이다. 자연히 협력업체 직원들은 그 곳에서 '을 중의 을'이었다. 정규직 직원들은 이들에게 자기 일을 비일비재하게 시켰다. 김경욱 씨는 그게 싫었다. 협력업체 직원에게 일시키는 일체 행위를 금지했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하니 아주머니들 직원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자기가 협력업체 직원들을 관리하는 '갑질'을 그동안 해왔는데, 새로 온 과장이 그것을 못하게 하니 열이 받을 수밖에. 그런 과장이 무섭기도 하고, 자기를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해서 노조에 가입했단다. 한마디로 김경욱 씨에게 '엿'을 먹이려 가입한 셈이었다.

이들이 노조에 가입한 뒤부터 김경욱 씨에 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줄기차게 했는데, 정작 당사자가 노조에 가입하니 '이 사람 뭐지?' 싶었다. 프락치가 아닌지 의심한 이유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당황하고 충격 받았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김경욱 씨였다. 부하직원을 보호한다고 노조에 가입했는데, 거꾸로 부하직원은 새 관리자가 자신을 괴롭혀 '보이콧'한다고 노조에 가입하다니…. 그때 아주머니 중 한 명은 김경욱 씨가 얼마나 싫었는지 남편이 경찰 간부였는데도 노조에 가입했단다.

그렇게 김경욱 씨는 자신의 부하직원 3명과 함께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노조활동이었다. 사실 노조에 가입할 때만 해도 김경욱 씨는 노조가 뭔지, 노동권이 뭔지도 몰랐다. 그저 노조란 '회사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조직' 정도로만 생각했다. 막상 노조를 가입하니 제대로 노조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노조를 배웠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가 운영하는 '노동과 꿈' 사이트에 들어가 교안, 자료 등을 모두 훑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성명서, 보도자료 등을 일일이 찾아 읽기도 했다. 문제는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일단 읽었다. 그렇게 지내다 노조가 무엇인지, 노동권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프레시안(허환주)
노조에 가입한 김경욱 씨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중동점에 지부, 즉 조직을 만드는 일이었다. 김경욱 씨가 중동점에서 노조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까르푸 노조에는 지부가 3~4개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중동점은 지부가 없었다.

노동조합을 잘 알지 못하는 그가 지부를 세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민주노총 부천지구협의회 문을 두드렸다. 2003년 3월쯤이었다. 지구협의회 의장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이후 일사천리였다. 지부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담당자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담당자를 통해 조합원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전편에서 이야기한 박양희 씨와 이은영 씨가 이런 일을 모두 했다.

당시 노조에 가입한 사람과, 가입하려는 사람들을 민주노총 부천지구협의회 사무실에 놓고 교육을 진행했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첫 교육에는 김경욱 씨를 포함해 달랑 직원 3명만이 교육에 참여했다. 김경욱 씨는 그때 교육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그때 교육은 김경욱 씨의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노동자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이었다. 노동자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게 주 내용이었다. 그런데 개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 법조항 등을 이야기했다. 김경욱 씨는 규칙이나 법을 매우 중요시 생각했다. 여기에는 군 출신이라는 점이 상당히 작용했다. 그 강연에서 노동3권이 헌법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동3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회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3권을 왜 헌법이 보장해주는지 등을 듣게 됐다. 그간 전혀 몰랐던 내용이었다.

군인 출신인 김경욱 씨가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식'에 국한됐다면 이후부터는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계급은 군대에서 말하는 대위, 소위 아닌가. 장교와 사병과의 관계가 계급에 의해 구분 지어진다. 장교는 사병의 영원한 적이다. 군대에서 병사들이 항상 하는 말이다. 그러나 병사와 장교는 함께 생활한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영원한 적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 않나. 그리고 목적도 서로 동일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노동자의 관점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군대에 비춰서 이해하는 습관이 있다.(웃음)"

김경욱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 교회 가서 하나님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신자다. 그전만 해도 사실 노조 활동이 불안했던 김경욱 씨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김경욱 씨가 노조를 가입할 때만 해도 노조란 회사랑 싸우기 위해 필요한 조직적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 노조가 '빨갱이 집단은 아닐까. 사회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군대에서 주입된 개념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3권이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헌법을 수호한다고 맹세했는데 그 맹세를 계속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군인이 앞으로도 헌법을 수호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셈이다. 이것이 교회를 다니는 김경욱 씨에게는 영접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이후 김경욱 씨는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게 늘 '노동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JTBC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은 대부분 아주머니다.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이유는 자기가 잘릴 위기에 있거나, 관리자에게 '엿'을 먹이려는 목적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게 필요에 의해 가입한 사람들은 노조활동을 거의 안 한다. 김경욱 씨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도'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으로 해야 한다. '교회 가면 떡 준다. 빵 준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내게 하나님 말씀은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는 거였다.(웃음) 그것의 의미를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내가 교육받은 내용보다 훨씬 더 쉽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노동자란 무엇인가' 강연 이후부터 노조 활동을 제대로 시작했던 듯하다."

깨달음을 얻었으나 노조활동은 쉽지 않았다. 조합원 수가 적은 노조였다. 당시 까르푸 노조 총 조합원 수는 100명도 안 되었고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은 60여명으로 전체 직원수로 보면 노조 조직률이 1%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조합원 수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 싸움은 쪽수 싸움 아닌가.

* 이 기획은 현재 미디어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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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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