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관직은 '국가주석'이 아니다!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중국 최고 지도자를 만드는 권력의 정당성

시진핑의 공식 직위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총 4개이다.

앞의 두 개는 당에서의 직위이고 뒤의 두 개는 헌법기관에서이다. 장쩌민(江澤民) 이후로 총서기가 국가주석을 맡는 것이 관례화됐고,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가 중앙군사위원회를 동일인으로 구성하게 됐다.

다 중요한 자리이긴 한데 만약 그중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까? 중국의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국가주석직을 포기할 것이다. 중국의 국가주석은 인민의 대표로서 외국의 사절을 맞이하는 일종의 명예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직위가 실질적인 권력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 중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떤 직위가 중요한지 보다 선명해진다. 마오쩌둥은 1945년 처음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당시 명칭은 주석)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된 이후 죽을 때까지 두 직책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반면에 국가주석직은 초창기 5년을 제외하고는 류샤오치(劉少奇)가 담당하거나 심지어 주석직 자체가 설치되지 않은 때도 있었다. 국가 중앙군사위원회(당시 명칭 국방위원회)도 다른 사람이 맡거나 설치되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라면 응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직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국가 주석은 물론이고 심지어 당 총서기를 맡은 적도 없다.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개혁 개방을 추진했다. 그가 톈안먼(천안문) 사건을 겪으면서도 개방을 대세로 확정할 수 있었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명언을 상기하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989년 장쩌민의 권력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덩샤오핑이 빠르게 넘겨준 직책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이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었는지 덩샤오핑은 1993년까지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하면서 1992년 당 중앙군사위원회 인사를 개혁개방의 지지자들로 재편한 후에야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넘겨주었다. 당 기구든 국가 기관이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연임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쩌민이 후진타오(胡錦濤)에게 권력을 인계할 때는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임기에 맞춰 물려주었지만 중앙군위 주석직은 2년가량 지난 후에 넘겨주었다. 이 때문에 장쩌민은 후진타오 집권 초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진타오가 시진핑에게 권력을 이양할 때 장쩌민처럼 중앙군위 주석은 몇 년간 더 보유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런데 총서기 임기에 맞춰 중앙군위 주석직도 물려준 것을 보면 후진타오의 세력이 장쩌민보다 견실하지는 못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된다는 것은 공산당을 힘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군통수권은 국가 주석이나 당 총서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중앙군위 주석의 명령을 받는다. 중국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군대가 아니고 당의 명령을 받는 공산당의 군대이다. 혁명군에서 출발해서 홍군(紅軍), 팔로군 그리고 인민해방군 등으로 명칭을 달리 해가며 혁명, 항일, 국공 내전을 치렀던 그 군사 조직 자체가 중국공산당의 핵심 조직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후에도 기본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 가지 직책은 포기하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직책은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것이다. 중국과 비슷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서 과거의 김정일이나 현재의 김정은이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책만 유지하고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총서기를 맡으면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다. 두 직책은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라는 전당대회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후보자의 공약이 발표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선거운동이 어땠다는 얘기도 없이 어느 날 그냥 결정된다.

고위층과 원로들이 휴양지 베이따이허(北戴河)에 모여 비밀회의를 통해서 결정한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비밀회의이니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파벌의 관점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누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하는데 당일에 가봐야 아는 것이다. 아무튼 그 자리에 오르는 과정이 외부에서 볼 때는 너무나 미스터리하다.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 선출이 되던 간에 당원 모두가 공산당 강령에 따라 상명하복의 원칙을 준수하고 있으니 최고 권력자는 공산당 내에서는 지배의 정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중국 같은 공산당 일당 체제의 국가에서는 당만 장악하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정치체제를 당국가(party-state)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공산당은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임의 단체이지 인민이 선출한 대표성 있는 단체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 공산당에서 선출한 최고 권력자가 중국 인민을 통치하는 정당성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오쩌둥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회주의 혁명을 극적으로 성공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을 때 마오쩌둥은 마치 종교적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기적적으로 출현한 구세주 같았다. 그가 내세운 교리는 중국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것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하고, 인류의 마지막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헌신적인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메시아의 약속과 같은 것이었다. 중국의 농민들 입장에서는 하늘의 명을 받은 새로운 천자가 등장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회주의 체제가 됐다고 해서 중국인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이 그 이론을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복종을 미덕으로 살아왔던 그들이고, 공산당 스스로 자신들이 인민을 영도하는 선봉대라고 생각했으므로 자유주의적 참여 정신은 애초에 필요치 않았다. 마치 예전의 황제들이 대업을 이루면 그 자체로 천명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 것처럼 중국의 인민들은 공산당 지도자를 새로운 황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지배의 정당성에 대해 거론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베버가 분류한 카리스마적 권위, 전통적 권위, 합법적 권위이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어떤 기적과 같은 것으로부터 형성되며 계시를 따르고 영웅을 숭배하고 위대한 지도자를 신뢰하는 복종심에서 발생한다. 더 이상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발적 복종의 마음은 사라지고 지도자는 새로운 지배의 정당성을 모색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질서가 생기고 그것을 전례로 삼아 전통적 지배의 단계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폭력은 피지배자의 충성심에 더욱 심각한 타격을 주어 결국 몰락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중국은 운이 좋은 케이스다. 덩샤오핑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서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농민들은 기적이 없어도 복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니 선대의 정통을 잇는 계승자임을 보이기만 하면 지배의 정당성은 확보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헌법 서언에는 유독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삼개대표론 등 지도자가 받은 천명이 차례대로 언급되고 있다. 후진타오 역시 헌법에는 없지만 공산당 장정에 그의 이념인 과학발전관을 새겨 넣었다.

결국 중국 최고 지도자의 권위의 정당성은 베버가 말한 전통적 권위를 넘어서 수천 년을 이어온 중국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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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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