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진박/가박' 갈라치기 vs. 중국의 숙청 정치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중국 정치의 파벌 문화

"한 사람이 득도를 하면 그 집안 닭과 개도 승천을 한다(一人得道, 鷄犬升天)."

한 집안에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가족은 그 덕에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의미겠다. 이 말은 동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저서 <논형(論衡)>에 있는 말인데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연고주의가 심했던 모양이다. 이런 성공의 연줄이 한 집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확장하여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 서로 도와주고 비호하면서 세력을 이루면 그것이 붕당이고 파벌이다.

성공하려면 득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곁에 가야하지만 누구에게나 득도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중국에서 사대부만이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갈 기회가 주어졌던 것처럼 현재는 공산 당원이 되어야만 권력에 접근할 기회가 주어진다. 공산당 독재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나라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럼 그런 특권을 누리고 싶으면 공산당원이 되면 될 거 아니냐는 물음이 생길 텐데 중국의 공산당은 입당 원서만 내면 가입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1년간 예비 당원으로서 활동하며 평가를 받아야 하고 기존 당원의 추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추천인은 신규로 가입한 당원의 과오에 대해 연대 책임을 져야하므로 아무나 추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도 가끔 입당하기 위해 뇌물을 썼다는 기사가 나오곤 하는 것을 보면 입당 자격이 꽤 까다로운 모양이다. 그러니 입당 절차에서부터 특별한 관계망 즉 '꽌시'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추천인도 입당할 때 누군가의 추천을 받았을 테니 꽌시는 자연스럽게 최고위층까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라인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꽌시를 과거에는 붕당이라고 했고, 현대에는 파벌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해방, 태자당, 공청단파 등의 명칭을 들어봤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중국의 총서기 시진핑은 태자당, 총리 리커창은 공청단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장더장은 상해방 출신이라며 중국의 최고지도층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을 파벌의 안배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요즘에는 상해방을 장쩌민(江澤民) 계열이라는 의미로 장파(江派) 또는 장계(江系)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리커창을 제외한 6인이 모두 장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파벌의 명칭이 자주 언급되다보니 저런 조직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태자당이라는 정당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파벌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중국 내의 어떤 언론에서도 위에 열거한 파벌의 명칭을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파벌은 주요 정치 지도자의 인간관계를 관찰한 외부인들이 친밀도가 높아 보이는 정도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권력의 꽌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국 상무위원쯤 되면 외부에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 뿐 각각의 인물들 그 자체로 꽌시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파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파벌은 외부에서 붙여준 이름이지 중국의 정치인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떤 파벌에 속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그런 파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한국 정치의 파벌과 어떤 점이 다른가

요즘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처럼 스스로가 친이계니 친박계니 하며 특정 파벌의 소속임을 자처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왜 다른지 이유는 간단하다. 원칙적으로 공산당의 조직 원칙은 통일성에 있고 최고 지도자의 권위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중국 인민을 통치하는 공산당 일당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벌의 명칭이 중국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 권력 투쟁이 발생했을 때이다. 개혁 개방 이전에 거론됐던 '극좌모험주의노선', '주자파(走資派)', '당권파', '사인방' 등등의 명칭은 권력 투쟁에서 승기를 잡은 세력이 상대 진영을 타도할 목적으로 덧씌운 이름들이다.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세력은 파벌을 이루어 공산당의 통일성을 해친 종파 분자로 낙인찍히기 된다. 이 역시 타인이 붙인 이름이지 스스로가 만든 이름은 아니다. 이렇게 파벌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권력 투쟁이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최근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저우용캉(周永康)이 당 기율을 심각하게 위배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부가된 그의 혐의는 뇌물 수수, 직권 남용, 국가 기밀 누설, 간통, 성매매 등 그를 완전히 파멸시킬 만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그와 관련한 중국 언론의 기사에서 석유방, 쓰촨방, 정법계 등의 파벌 명칭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저우용캉은 중국석유·천연가스총공사 사장, 쓰촨 성 당서기,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분명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특별한 인맥이 형성됐을 것이고 그 인맥은 그의 세력이 되었을 것이다. 파벌이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그런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니까 중국의 꽌시 문화로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저우용캉이 처벌된 이유는 그가 저지른 부패 행위가 너무나 심각해서 좌시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할 무렵 보시라이(薄熙來)와 더불어 시진핑의 반대편에 섰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그의 숙청이 권력 암투의 결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나 파벌을 형성했다는 보도가 중국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저우용캉이라는 날개를 달았던 닭과 개들이 모두 추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시진핑이 벌이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이 단순히 부패 척결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중국의 권력 투쟁은 평상시에는 궁중의 암투처럼 일반인들 모르게 펼쳐진다. 통치권 내부에 분열이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인민에 대한 통치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중국이 성장하고 있고 나눌 것이 많으면 파벌끼리 타협을 통해 적절하게 이권을 배분할 수 있으니 갈등도 조용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이 멈추고 나눌 것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파벌 간 충돌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미 시작된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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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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