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총량의 법칙…노인들, 제발 배우자!"

[독서통]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쓴 고광애 선생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이 20%를 넘는 사회)의 문턱에 섰다. 한국에서 가장 늙은 지역 중 하나인 전라북도의 경우 2019년이면 실현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에게 노인은 관심 밖의 문제였다. 우리에게 노인이란 지하철에서 조(는 척하)는 젊은이를 노려보거나 임산부에게 "비키라"며 욕 하는 존재, 가스통을 들고 나타나 시위하는 존재, 선거 때면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새벽부터 열심히 투표하는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꽃보다 할배>의 비현실적인 로맨스 노년(노인 빈곤율은 세계 1위다)이 젊은이의 뇌리에 남은 노인의 이미지다. 현실에 발 디딘 노인은 손주를 대신 봐주는 사람 혹은 파고다 공원에 모인 이들이었을 뿐이다. 철저히 대상화된 주변의 존재로 우리 머릿속에 그려졌을 따름이다. 유독 노인은 집단의 존재로서만 우리 머리에 인식된다.

위 이미지는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많은 가정에서 (노년의) 부모와 (장년의) 자식 간 대화 단절을 경험한다. 인구의 5분의 1은 당연하지만, 함께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이들이다. 이들을 이해해야 우리의 미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에게도 자식 세대와의 상호 이해는 필요하다. 어찌됐든 이 사회의 미래를 그릴 이들은 더 젊은이들일 테니 말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고광애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는 노인인 작가가 노인에게 하는 충고를 모은 책이다. 저자가 <노인신문>에 써 온 칼럼을 모은 책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젊은 세대가 보기에도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자식의 효심에는 한계가 있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라", "꾸준히 배워라", "임종을 잘 준비해라"는 등의 주제의식을 담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도발적이다. 저자는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을 없애고,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도 없애자고 주장한다.

고광애 선생은 1958년 <한국일보> 정규 채용 시험에 뽑힌 최초의 여기자 출신이다. 결혼 후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세 아이를 키웠다. 그 중 하나가 <영원한 제국>, <하녀>, <돈의 맛> 등을 찍은 임상수 감독이다.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기획한 저자 인터뷰 '독서통'은 27일 이 책의 저자 고광애 선생을 만났다. 노인의 목소리에서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흔치 않은 자리였던 데다, 저자가 워낙 달변이었던 까닭에 방송 내내 웃음꽃이 피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고광애 선생과의 인터뷰를 요약 정리했다.



▲"100살까지는 살 준비 해놓고 유산을 상속하든지 뭘 하든지 하세요." ⓒ프레시안(최형락)

쉰에 저자가 되다

독서통 : 독서통 코너를 신설하면서 진행자가 독서광이 되었습니다. 책을 안 읽어보고 독서통을 진행할 수는 없으니까요. 덕분에 다방면으로 면학에 힘쓰고 있습니다.

오늘 모실 저자는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쓴 고광애 선생님입니다. 일단 간략히 책 소개를 좀 해야겠는데요, 뭔가 '꽂히는' 제목입니다. 제목을 듣고 짐작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이 책은 노년 문제, 세대 간 소통, 나이 들어간다는 것 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 문제가 화두가 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노인 문제를 노인의 관점에서 다룬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노인을 대상화했죠.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의 입장에서 노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인 문제와 관련한 기사를 쓰는 기자도 이 문제를 보통 두 가지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인을 짐처럼 생각하거나, 아예 그 문제에 관심이 없죠. 사실 기사를 읽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힘이 센 세대가 베이비 부머일텐데요, 그 세대들이 조만간 60대로 진입합니다. 앞으로 노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세대가 되는 거죠. 그런데 정작 노인 문제와 관련한 담론은 너무 부족합니다. 이 책이 더 각별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저자 고광애 선생님이 너무 매력적이셔서 저희가 책을 읽기도 전에 바로 출판사에 섭외했습니다. 인상적인 이력의 소유자이신데요, 1958년 <한국일보>에 기자로 입사하셨습니다. 자제 중에도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임상수 감독입니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께서 다른 분들은 인생살이 정리를 준비하고 은퇴하실 시기에 홀연히 나타나셔서는 언론을 통해 활발히 노인의 목소리를 내고 계십니다. 당장 이 책도 노인 문제에 관한 칼럼집입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쓴 글을 모은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일관된 시선으로 쓴 책으로 여겨질 정도로 만듦새가 좋습니다. 더구나 일상의 언어로 글을 풀어주셔서 읽는데도 전혀 막힘이 없습니다.

저자를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고광애 : 안녕하세요.

독서통 : 아름다우십니다.

고광애 : 아이고, 아름답다는 얘기 좀 듣고 살았거든요. (웃음) 다른 걸로 칭찬받고 싶어요. 책 제목대로 예의가 바른 노인, 스테레오 타입의 노인이 아니라 당신들 마음에 드는 노인이라고요.

독서통 : '노인'이라고 하면 이른바 '가스통 할배' 내지 지하철 내 자리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계신 노인, 명절에 집에 찾아가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벽이 느껴지는 노인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젊은이가 솔직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노인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고광애 : 예. 그렇죠.

독서통 : 선생님이 기자 출신이셨어요.

고광애 : 예. 내가 젊어서 <한국일보> 견습기자(한국일보사는 예전부터 신입 기자를 '견습기자'로 불렀다) 시험을 본 최초의 여기자예요. 그 전에도 신문사에 여기자가 더러 있기야 했지마는 보통 잡지사에 있거나 다른 곳에서 있다가 온 분들이었고, 정식으로 채용시험을 봐서 통과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에요. '회까닥' 해서 금방 그만뒀지만요.

독서통 : 뭐에 회까닥 하셨나요?

고광애 : 콩깍지가 씌었지요. (웃음) 결혼하니 세 아이가 태어나버리는 바람에 오십 살까지는 앞도 옆도 안 보고 살았어요. 살림을 잘 한 건 아닙니다만, 아이 셋만 키웠지요.

독서통 : 사내 연애를 하셨다고요.

고광애 : 그렇죠.

독서통 :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주변 시선이...

고광애 : 불륜처럼 보고 그랬지요. 도덕성까지 낮춰보고 하는 게 너무 끔찍했어요. 아이들만 열심히 키웠는데, 내가 49살이 되니 갑자기 세 아이들이 전부 다 곁에서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부부랑 어머니 부부랑 넷이서 살았는데, 어느 날은 우리 딸이 유학을 갔어요. 우리 어머니가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 "얘, 저놈(사위) 밥은 내가 해줄게, 너는 딸 따라가서 뒷바라지나 해라"고 해. 그건 아니지. 나는 엄마처럼 자식 따라서 안 가지.

그러면 혼자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돼요. 그래서 책을 보다가 노인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짬짬이 공부한 걸 글로 써봤거든. 우연찮게 당시 조감독하던 우리 감독 아들(임상수)이 며칠 만에 집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얼른 책을 감춰놓고 밥을 해다 주려고 갔는데, 밥 차리는 동안 애가 (내가 쓴 글을) 봤나 봐요. "엄마는 무슨 공부를 하우?" 하면서 이것저것 묻다가 "(이 글 모아서) 책 한 번 내봐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아들이 나를 워드프로세서 앞에다가 끌어 앉혀서 그때부터 워드를 배워서 책을 썼어요. 아들 덕에 원고지에 안 쓰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중한 씨라고 있었어. 우리 영감하고 친구거든. 그래서 "그러면 이중한 씨한테 책 내자고 해볼까" 했더니 우리 아들 말이야, "'빽' 좀 작작 좋아하고 그냥 출판사에 보내세요!" 해. 그래서 몇 군데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출판사에서 원고 달라고 배달꾼이 와서 가지고 갔어요. 그때는 요새처럼 퀵 서비스도 없고 배달꾼이 다 했거든. 그래서 책(<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아침나라 펴냄))을 냈는데, 그때만 해도 노인에 관한 책은 있지도 않을 때야. 그래서 첫 번째 책이 물경 12쇄까지 찍었어. 내가 인세를 1000만 원을 넘어 받았어요. 거기서 요새 책을 개정하자고 했는데, 내가 다시 봤더니 '아웃 오브 데이트'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책을 쓰게 됐어.

내가 처음에는 늙음에 천착하고, 다 늙고 나니까 남는 게 뭐야. 죽는 거 아니야. 그러다보니까 요새는 죽음 공부에 매진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열심히 쓴 좋은 책(<나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하여>(서해문집 펴냄))은 별로 안 팔리더라고. 애써서 썼는데 아무도 안 보나봐. 그래서 '이제 책 쓰는 건 끝인가 보다'했는데, 의외로 칼럼을 모아서 책을 냈는데 이게 조금 (팔리나봐)...

독서통 : 방송에서도 노인 문제로 상담하시죠.

고광애 : 첫 책을 쓰고 났더니 KBS, SBS에서 4년 전까지 매주 한주도 빠지지 않고 방송을 했어요. 이상하게 MBC는 안 부르대? (웃음)

"노인이 세상 배워야 한다"

독서통 : 이제 책 내용을 이야기해보죠. 아주 인상 깊었던 게 선생님께서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셨어요. 심지어 '어르신'이라는 소리도 마뜩찮다고 하셨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써왔는데 말이죠. 왜 문제라고 보시나요?

고광애 : 나는 사실 그냥 익숙해서 받아들이는데, 우리 친구들이 못 받아들여. 내 친구 하나는 '어르신' 소리도 듣기 싫대. "이러다 나보고 '옹'이라고 하겠네" 하면서. 교수하는 내 친구는 자기가 아직 교수인데 할머니라고 하니 듣기가 싫다고 해.

내 책이 다섯 권 나왔는데, 그 동안 일관된 내 소신은 '젊은이한테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지 말고 우리 늙은이들이 이 세상에 적응하고 배우자'는 거예요. 이제 우리 세상 아니라 젊은이 세상이니까. 마거릿 미드라고 하는 인류학자가 "36살만 돼도 새로운 행성에 이사 온 것 마냥 모든 걸 배워라"고 했어요. 그 사람이 1901년 생이고 1978년에 죽었어요. 그때 벌써 통찰력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평생을 서대문 쪽에서 살았는데도 여기(스튜디오) 오는 동안에 보니 길이 다 새로워져서 새로운 나라에 온 것 같더라고. 너무 많이 바뀌어서. 그러니까 모든 걸 배우고 거기에 적응하자는 거예요.

독서통 : 할아버지, 할머니 호칭이 일제의 잔재라고도 하셨어요. 그 호칭은 직계 가족 간에나 쓰는 말이라고 하셨죠.

고광애 : 그렇죠. 직계 가족 안에서나 할아버지, 할머니지. 지나가는 사람이 왜 나한테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늙은이 호칭이 마땅찮은 게 사실이에요. 프랑스에서나 '무슈', '마담'이라고 하지, 우리나라에서 '마담'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중국 사람은 덮어놓고 '선생님'이라고 그러대? 아무나 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미국은 '시니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마땅찮고.

독서통 :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안 좋다는 말씀이시죠?

고광애 : 안 좋아요. 사회 전체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게 어떨지 싶어요. 저도 뭐가 좋다고 할지는 모르겠어요.

독서통 : 그 말씀을 듣고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단어 자체가 노인을 대상화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 읽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또 생각납니다. '삼고초려의 법칙'을 세우셨죠. 이 부분을 보고 뒤통수를 맞았달까요, 전혀 생각도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삼고초려의 법칙'이 간단히 말해 세 번 이상 요청하지 않으면 오라는 곳에 가지 마라는 겁니다. 의미가 있는 게, 보통 나이 드시면 본인 스스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항상 대접을 받아오니까요. 책에 나온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자기가 낄 자리, 안 낄 자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그게 아니라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십니다.

고광애 : 노인들이 아무데나 찾아가면 안 되겠더라고요.

제 친구가 하는 말이 협회고 뭐고 나이 여든이 넘으니 다 새 임원을 뽑아서 "저희들이 할테니 이제 안 오셔도 돼요"라고 한대요. 엊그제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는데, 거기서도 제가 고령자예요. 고등학교 졸업한지 60년이 됐다고 잔치 해주는데, 후배들은 노인이 있는 걸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독서통 : 대부분 어르신이 그런 얘기를 들으면 서운하시고 받아들이기 힘드실 텐데, 선생님은 책에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노인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실제로는 서운하셨죠?

고광애 : 아니요. 얼른 넘겨야지. 눈치를 잘 차려서 정말로 늙은이 의견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가지 말아야 돼요. 그래서 제가 참석 여부 가이드라인을 딱 정했어요. 세 번을 간절한 마음으로 초대하기 전에는 가면 안 돼요(삼고초려의 법칙). 솔직히 당신들도 안 싫어? 노인네들 은퇴 안하고 자꾸 끼어드는 거?

독서통 : (웃음) 그래도 한편으로는 노인의 지혜나 경륜이 필요한 자리마저도 없애고 홀대하는 데 대한 울분이 없으세요?

고광애 : 당신들이 노인의 지혜가 필요해요? 컴퓨터 누르면 다 나오는데?

독서통 : 이 말씀을 같은 노인들께 하시면 어떻게들 반응하세요?

고광애 : 젊은이도 여러 층이 있잖아요. 그러듯 노인도 그래요. 사람이 늙으면 좋은 성품은 더 확대되는데, 결점도 결점대로 확대돼요. 같은 늙은이지만 그런 결점은 나도 볼 수 없어. 저는 그냥 젊은 사람뿐 아니라 노인한테도 충고 안 해요.

▲우리는 백세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백 살을 살아갈 준비는 부족하다. 노령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연합뉴스

자식 뒷바라지 대신 노후 준비 착실히!

독서통 : '효심 총량의 법칙'도 알려주셨죠.

고광애 : 나의 이론인데, 살다보니 어느 것이나 총량이 정해진 것 같아요. 효심도 마찬가지예요. 부모가 일흔이면 자식도 40대, 50대인데, 그때 정도까지 열심히 할 수 있는 총량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요새는 주책없이 너무 오래 살잖아. 나는 오래 살아서 다행스럽다고 생각 안 해요. 백년을 살면 사람 노릇을 잘 못해요. 백 살을 혼자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몇 명 젊은이의 희생을 딛고 사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특히나 건강수명이 짧잖아요.

내 경험도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으니 나도 잘했을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94세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진력이 나더라고. 나갔다 들어가면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데 '이제 그만 사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우리 언니들도 집에 오면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서 '엄마가 아흔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으면 내가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효심했을 텐데, 이 딸년이 불효한 생각 했구나' 했어요.

옛날이야 환갑이 얼마나 귀하면 잔치까지 했겠어요. 그런데 이제 자기들도(자식들도) 늙어서 죽겠는데 언제까지 (부모 뒷바라지를 해)... 그러니 효심 총량제 법칙이죠.

요즘은 다행인 게 노인 요양원 같은 시설을 많이 지어놨어요. 우리 친구들은 벌써 거기 들어가 있어요.

독서통 : 책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대목이 있습니다. 본인 노후 준비를 하라는 부분이요. 사람이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살게 되는데, 효심 총량의 법칙은 작동하니 자식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 안면 몰수해버려서 문제가 발생한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광애 : 제 주변에도 낭패 본 사람이 많아요. 최소한 100살까지는 살 준비를 해놓고 유산을 상속하든지 뭘 하든지 해야 돼요.

독서통 : 그런 준비는 사실 돈 많은 노인에게만 국한될 겁니다. 대부분 우리 부모들은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 붓잖아요.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인데, 대부분 원인이 노인 빈곤이라고 합니다. 빈곤에 시달리게 되니 자식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자식은 효심 총량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그러니 '내 손으로 내 생을 끝낸다'는 생각을 하는 불행이 생겨나는 거겠죠. 노인 복지를 강화하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할 텐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일부에서는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고광애 : 복지하는 건 좋은데, 주책없이 쓰는 것 같아요. 돈이 줄줄 새는 게 기막혀요.

물론 노인이 가난해서 자살하게 하도록 만드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래도 우리나라가 최소한의 생존은 하게 해주더라고요. 사람으로서 사는 건 아니고 목숨은 건지게끔 해줄 정도.

독서통 :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거리에서 보이는 노인의 절대다수는 할아버지지, 할머니가 아니에요. 왜 이런지에 대해 주변 몇 사람과 이야기해봤습니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서 굳이 밖으로 안 나가셔도 된다고들 하더군요. 가정에서도 자식은 주로 엄마와 관계를 형성하니, 할아버지는 가족에게서도 소외되는 거죠. 그래서 할머니는 동네나 집에 있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럴 수 없어서 밖으로 나돌게 된다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시각은 어떻게 보시나요?

고광애 : 일부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요즘은 남자도 살림을 도와야 하니 늙어서 집에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시대 남자는 새벽종이 울리면 나가야지. 집에 있을수록 무능한 남자였지.

요즘 친구들을 보면 아들이 설거지한다고 분해해요. 나는 노인 강의 다니면서 그러지 마라고 해요. "우리 아들들이 설거지 하는 게 늙어서 잘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거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라"고 해요.

내가 노인 공부를 해보니, 남자 노인이 여러 가지로 불리합디다. 완전히 바깥에만 있다가 다 늙어서 집에 들어오면, 친구들 표현대로면 '짐덩이가 하나 들어왔다'고들 생각해요.

모든 세대 섞여 사는 첫 걸음, 노약자석 없애기

독서통 : 저희도 기쁜 마음으로 설거지해야 하겠군요. (웃음)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셨어요. 지하철 노약자석은 없애는 게 낫다.

고광애 : 나는 낮에 지하철 타서 노약자석 앉은 적이 없어. 언제만 앉느냐 하면, 밤늦게나 아침 일찍. 오늘 8시쯤 지하철을 탔더니 그때는 노인석이 비어있더라고요.

독서통 : 승객이 별로 없을 때?

고광애 : 아니, 젊은이석은 와글와글한데 노약자석은 비어있더라고요. 노인들은 그렇게 일찍 안 나오거든. 너무 훈련들을 잘 시켜서 속상해 죽겠어요. 젊은이들 피곤해 죽겄는데도 자리 비어있는데 안 앉고 그러고 있더라고요.

독서통 :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더 늙수그레한 남성 노인이 와서 자리 비키라고 한 일화도 쓰셨어요.

고광애 : 아유, 나 많이 당했어. 지금은 이렇지만 내가 70 초반까지만 해도 괜찮았거든. 내 모습이. (웃음)

독서통 : 지금도 아름다우신데요. (웃음) 동안이라는 말씀이시죠?

고광애 : 동안은 아니지만 우리 영감보다는 젊어 뵜어. 아무튼, 우리 딸이 외국 살다 와서 "아니 왜 노인들은 딴 데다 몰아놨어? 섞여 살아야지" 하더라고. 뭐든지 섞어 살아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철도 섞는 게 낫잖아요? 나는 젊은이 자리가 비면 뻔뻔하게 앉는데, 우리 언니는 "얘, 젊은이가 너 때문에 못 앉아" 해요. 그러니 섞자고. 노소가 화합하고 사회가 화합하고 섞여야지, 각자 떨어져있으면 안 되잖아.

독서통 :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은 계속 늘어나는데, 노인을 계속 배제하고 벽 치려고만 하는 거니까요.

고광애 : 그러니까. 조그만 데서부터 시작해야지.

독서통 : 가끔 잊을만하면 나오는 뉴스입니다. 지하철에서 노인은 호통치고, 젊은이는 자리 안 비키려다 대드는 뉴스 말이죠. 이런 뉴스 보시면 어떤 생각 드세요?

고광애 : (둘 다) 똑같죠. 우리 영감이 지난 4월 12일에 가고 나서, 내가 집을 우리 딸 애 따라 응봉동으로 이사했어요. 거기는 지하철이 없더라고. 그래서 버스를 타는데, 버스를 억지로 타고 사람들을 보니 일제히 '이걸 일어나, 말아' 하는 얼굴이 딱 보이더라고. 저 노인네가 올라왔는데 이걸 어째야 하나 싶은 거야. 젊은이는 안 일어나고 같이 늙어가는 50대가 일어나더라고. 그래서 나는 타자마자 손잡이 붙들고 "금방 내려요" 했어요. 피해 끼치기 싫어.

독서통 : 앞서 '가스통 할배' 얘기도 나왔습니다만, 요즘 보수단체 노인들께서 활발히 활동하십니다. 길거리에서 구호도 외치곤 하시죠. 이런 건 어떻게 보세요?

고광애 :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있어야 민주주의지. 당신들만 데모해? 노인도 데모해야지. (웃음)

극우고 극좌고 다 문제야. 그런 극우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어요. 그런데 극좌도 말도 못 붙이게 해. 우리나라 큰일 났어. 다 갈라졌어. 우리 감독 아들놈도 말만 하면...

독서통 : 임 감독께서 캐릭터가 조금 센 진보적인...

고광애 : 나는 노인으로서는 진보적인 편이에요. 교과서 국정화도 반대하거든. 내가 신문 서너 개를 보다가 요새는 돈이 없어서 줄이다보니 <조선일보>하고 <동아일보>를 놔뒀는데, 우리 감독 아들이 와서 <조선일보> 본다고 난리야. "얘, 나는 문화면 보는 거야" 해도 안 돼. (웃음)

그러니까 우리 집안서부터도 전부 자식하고 갈라져서 투표들을 다 달리 하더라고. 난 이 갈라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어떻게 부모 자식이 다 갈라져.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독서통 : 명절에 정치 얘기는 안 하세요?

고광애 : 안 하죠. 일부러 안 해요. 우리 집은 정치 얘기 하기 전에 감독 놈이 영화계 얘기를 하는 바람에...

▲"죽음을 받아들여야죠." ⓒ프레시안(최형락)

"노인이여, 공부하라"

독서통 : 그게 훨씬 재미있겠네요. (웃음)

관련해서 책 말미에 보면 <걸리버 여행기>(조너선 스위프트 지음)에 나오는 스트럴드브럭(책에서 럭낵이라는 가상의 세계에 사는 종족. 90세 이상이 되면 기억과 이성이 모두 사라져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데, 죽지도 않는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아요.

고광애 : 그런 노인도 있어요. 그러니 그런 족속이 되지 않게끔 늙어서 공부해야지.

독서통 : '시대는 변했는데 수십 년 전의 가치기준으로 세상을 보니 저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목소리들이 있거든요. 그런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광애 : 그런 목소리도 일부 타당성 있지요. 그런데 덮어놓고 이렇다고 보는 거는 문제고. 나는 누구한테 가르치고 지시하긴 싫고, 우리 자신이 스트럴드브럭 족속처럼 되지 말고 적응하자는 게 내 일관된 얘기죠.

독서통 : 인상적이었던 게 삶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그 부분은 따로 떼서 부모님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더라고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고광애 : 저한테 남은 게 죽음이더라고요. 내가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 독서회'라는 모임에 20년째 다니고 있어요. 다니면서도, 그리고 외국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서 느낀 게, 우리나라처럼 죽음을 싫어하는 나라 처음 봤어.

독서통 : 이전에 내신 책이 죽음에 대한 책인데, 그 책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하신 것 같습니다. 그 일(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싫은 거죠.

고광애 : 우리 고등학교 후배들하고 많이 친해요. (동창회) 사이트가 있거든. 거기서 어제 나온 말인데, 우리나라 인텔리 여성인데도 "선배님, 죽음 얘기는 하지 마세요" 하더라고. 피하려고 하더라고. 나는 그게 너무, 뭐라 그럴까, 후진적이야. 죽음은 당연히 돌아오는 건데, 그걸 당연히 알고 배우고 얘기 해야지.

독서통 : 마무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고광애 : 받아들여야지. 죽음을 받아들여야죠. 안 죽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만큼 흉한 죽음이 없죠.

독서통 : 연명 치료부터 시작해서 관련 이야기만도 오래 이야기해야 할 주제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가 노인 문제를 노인 관점에서 썼다는 건데, 대상 독자도 노인입니다. 노인 사이에서 노인 문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진다고 보시나요?

고광애 : 아니요. 전혀 안 되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큰 문제는 서로 오고가는 토론이 없어요.

독서통 : 그런 과정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있죠.

고광애 : 내가 TV서도 토론하는 거 보면 절대로 자기 주장에서 요만큼도 양보를 안 하더만. 이게 늙어서 경직돼서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좌빨'들? 어쩌면 절대로 요만큼도 (양보 안 해). 그래서 내가 그랬어. "우린 늙기나 했지만 너흰 젊은데 어떻게 그렇게 남의 얘기는 안 듣고 너희 얘기만 하니." 각자 자기들만 얘기해요. 우리나라처럼 토론이 안 되는 나라 없다고 봐. 그러니까 노인만 야단치지 말고 젊은이들도 반성하세요. (웃음)

연명 치료 없이 좋은 죽음 맞이하기

독서통 : 이 책의 대상이 노인이긴 하지만, 아랫세대도 읽고 고민할 화두를 많이 던지셨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헤아리기가 어려운데, 이를 헤아려볼 기회가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요, 그 전에 선생님 사내연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심쿵'이라는 말 아세요? 젊은이들이 하는 말인데. '심장이 쿵 한다'는 뜻입니다.

고광애 : 어, 지금 처음 들었어요.

독서통 : 콩깍지가 씌었다는 거죠. (남편이) 뭐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고광애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프레시안
고광애 :
모든 연애나 모든 결혼은 콩깍지 안 씌면 안 돼. 자꾸 내 결혼 얘기에 관심을 가져서 얘기해드리자면, 콩깍지가 씌어서 결혼하고 나니 이건 아니야. 그래서 아이들한테만 '올인' 했잖아요. 남자를 안 보고.

그런데, 이 남자가 마지막 죽을 때 돼서, 죽기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성자같이 되더라고요. "이제는 죽을 때가 됐다." 나를 괴롭히지 않고 죽는 걸 많이 생각했더라고요. 금요일 입원해서 다음 주 일요일에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짧은 동안을...

그러니 일생 그 모든 잘못이 희석되고... 그래서 남편 죽은 얘기를 다섯 군데에 썼어요. 그렇게 예쁘게 죽으니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 톨스토이인가? 그 사람도 "마지막에 잘 죽으면 일생에 잘못이 없어진다"고 했어요. 그러니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해요.

이 사람이 잘 죽었다는 게 뭐냐. 죽음을 받아들이더라고요. 아무리 죽음 공부해도 죽을 때 되면 "아유 나 싫다"하고 도망가기 마련인데, 그 양반은 사전 의료의향서(임종이 다가올 때 인공호흡, 제세동기 등의 인위적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을 법적으로 분명히 하는 각서. 인터넷에서 작성 후 보관 가능하다.)도 딱 써서 고통 없이 가고, 나도 고통 안 주고. 얼마나 예뻐.

독서통 : 이 인터뷰를 쭉 들으면서 청자들이 '저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셔' 하고 궁금할 것 같아요.

고광애 : 37년생 소띠. 올해 일흔 아홉이지.

독서통 : 이야, 그런데 칼럼도 계속 쓰시고.

고광애 : 한 달에 칼럼 두 개씩 써요.

독서통 : 노인의 관점에서 쓴 칼럼은 처음 봤는데, 너무나 신선했습니다. 자주 써주세요.

오늘 청취자 여러분도 웃으시면서 여러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어떠셨나요?

고광애 : 이런 노인을 불러주셔서 황송할 따름이지요.

독서통 : 오늘 소개한 책은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입니다. 저자인 고광애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 들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광애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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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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