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전투기 사업, 모두가 죽는 길인 이유는?"

[인터뷰] 김종대 단장이 말하는 '차기 전투기 사업' 문제점 ②

F-35를 도입하려던 나라는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캐나다 역시 이 전투기 도입을 계획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도입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캐나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부실 사업임이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F-35 도입을 계획했던 국가들은 줄줄이 도입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하지만 한국은 당초 F-15 사일런트 이글(SE)을 도입하려던 계획을 돌연 취소하고 2013년 F-35로 기종을 변경했다. 이후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차기 전투기 사업(FX)과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KFX)이 위기를 맞았다.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의당 김종대 국방개혁기획단장은 "지금이라도 청와대 또는 정부가 잘못 관리했다고 국민들한테 사과하고 실상 밝히고 책임자 규명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정책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면서 아직 사업을 진행할 희망은 있다고 주장했다.

김 단장은 "이 사업은 공군의 목숨이 걸린 사업이다. 이 문제 해결하지 못하면 전투기 없는 공군이 돼버린다. 안보를 표방하면서 안보의 본질이 아니라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다. 이게 바로 이적행위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전투기 사업은 역대 대통령들이 다 직접 챙기던 사안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만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국정의 수반이 아니라 군주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이 국책사업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가 등장한 셈"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김 단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차기 전투기 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 저질렀던 모든 방산비리를 합한 것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정의당 당사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전편 보기 : "박근혜 정부, '괴물 전투기' 만들 셈인가")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F-35 도입 과정을 보면 사실상 한국 정부가 졸속으로 계약한 것인데,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김종대 : 미국 정부가 승인하는 수출은 정부 대 정부 협상 사항인데 우선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하고, 지금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국방부는 방사청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방사청은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좋은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방사청에서 말하는 '좋은 답변'이라는 것은 미국이 F-16의 기술 자료를 제공하고 300명의 기술 인력을 파견해서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F-35 도입을 위해 미국에 구매의향서(LOA)를 보내고 이를 수락해 달라고 하면, 미국은 의회가 심사해서 수락서를 보내게 돼 있다. 이 수락서에서 미국이 이같이 밝힌 것이다. 방사청은 이를 근거로 국회와 언론에 미국이 전폭적으로 기술 이전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사청은 이걸로 자신들의 할 일은 다했다고 하며, 나머지는 업체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답했다. 즉, 한국형 전투기 체계 종합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너희가 미국에 가서 마지막 협의하라" 라면서 손을 뗀 거다. 그런데 F-16 기술 자료 제공과 300명에 달하는 기술 인력 제공은 핵심 기술 이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다가 KAI는 매출액 1조 원짜리 중기업이다. 이 기업보고 미국 국방부, 국무부, 의회를 상대로 핵심 기술을 따오라는 거다. 업체가 가서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나. 그러는 동안에 방사청은 자기들이 다 받아냈다고 주장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면 큰일 난다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정부는 계속 묵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해 국감을 계기로 언론에서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이 난리 통이 벌어진 거다.

F-35도입,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

프레시안 : 그런데 다른 국가 사례를 보면, 몇 년 전에 이미 F-35 도입을 중단하거나 취소한 국가들도 있다고 하던데?

김종대 : 캐나다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똑같이 겪었다. 지난 2012년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총리가 재임하던 때였는데, 캐나다 감사원이 F-35 도입과 관련해 전면 감사에 착수했다. 결국 부실 사업으로 판정났다. 이 때부터 캐나다 정부가 FX 사업(차기 전투기 도입, Fighter experimental)을 중단했다. 현재까지 중단돼있고, 얼마 전 끝난 캐나다 총선에서는 야당인 자유당에서 F-35 도입 취소를 선거 공약 1번으로 내걸어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당시 캐나다 감사원이 밝힌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와 유사하다. F-35 도입 가격, 기술 이전, 인도 시기 등에 문제가 있어 부실 사업으로 판정한 것이다.

이 감사 결과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F-35를 구매하려던 11개국이 구매 취소 또는 축소로 전부 돌아섰다. 영국, 네덜란드, 터키, 노르웨이 등등이 이에 해당하는 국가다. 다음 <표>와 같이 전 세계가 F-35를 외면하고 있다.

ⓒ김종대

한국은 2011년 FX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2년 시험평가, 구매 협상을 하다가 방위사업청이 2013년 마지막 입찰에서 보잉사의 F-15 사일런트 이글(SE)을 선정했다. 이게 2013년 8월인데, 2년 동안 진행했던 사업을 9월에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뒤집었다. 이후 2014년 9월 록히드마틴의 F-35A를 단독 수의 계약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와서 F-35A를 선정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심지어 미국도 합동전투기 구매 물량을 대폭 축소한 상황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일본도 구매 의사를 밝히긴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미국의 군사 원조를 받아서 그 돈으로 사는 것이다. 일본은 전투기 생산국가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보다도 더 돈을 많이 들여서 전투기 생산라인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자기 돈 주고 40대 넘게 직구매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 하나다.

영국의 경우도 F-35를 사려는 이유가 우리와 다르다. 유럽은 유로파이터라는 주력 전투기 기종을 개발했다. 그런데 유로파이터에는 항공모함에 탑재하는 함재기가 없다. 그래서 함재기로 쓰기 위해서 F-35를 구매하려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구매하려고 하는 F-35A와 다른 F-35B 기종이다.

그런데 B형은 아직 개발 착수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이 이를 구매하겠다고 미리 투자를 해놨는데, 미국이 기술 공유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 영국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도 거의 구매 취소로 돌아섰다고 봐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80대를 구매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미국이 F-35에 들어가는 네덜란드제 미사일을 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덜란드는 반드시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하는데, 이런 네덜란드마저도 최근에 구매계약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에서는 한국의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지난해 9월 스웨덴에서 세계 각국의 군사 전문기자를 만났다. 주로 유럽 국가들이었는데 같이 식사를 하던 도중, 한국 정부는 F-35를 40대 구매 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영국의 <제임스 디펜스 위클리> 기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냐면서, 궁금하니까 이유를 말하라고 재촉하더라. 그런데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2014년에 나온 미국 국방부의 QDR(국방검토보고서, 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 에서 미국은 자국의 합동전투기 사업이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점을 진솔하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 사업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동맹국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 동맹국은 한국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다 떠나갔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그럼 대체 한국은 왜 뒤늦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가?

김종대 : 한민구 국방 장관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F-15SE에서 F-35로 도입 기종을 바꾸게 됐던 이유에 대해 정무적 고려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정무적 고려'는 2013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 때도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정무적 고려라는 것이 아주 묘한건데, 청와대가 개입한 사업은 '성역'이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미국의 강한 요청과 압박이 있었다는 동맹 정치 차원에서의 고려라는 이야기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다만 2013년 8월 27일 인도네시아에서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과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양자 회담 직후부터 기종 결정을 번복하기 위한 흐름이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F-15SE를 구매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 한국에 대해 미국이 비상조치를 쓴 것이 확실해 보인다. 척 헤이글 장관이 얼마나 급했으면 김관진 장관한테 직접 요청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F-35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의 고문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코헨이 영입됐다. 또 제임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도 록히드마틴 행을 택했다. 외교안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지한파들이 록히드마틴사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전 공군참모총장들이 본격적인 실력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한테 F-35 구매를 요청한 것이다.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프레시안(최형락)


이렇게 한국과 미국에서 전·현직 유력자들이 동원되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김관진 장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3년 9월 인천상륙작전 기념식 때 예비역 장성들은 하나같이 전투기 사업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김 장관에게 따져 물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안보자문단도 총대를 멨다. 안보자문단은 자문회의에서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F-35 도입을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처음에 어떤 상황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가 분위기를 보니 어느새 사방에서 F-35 구매 찬성론자들에게 포위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언론에서 방사청 때리기가 시작됐다. 종편과 보수언론 할 것 없이 스텔스 기능이 있는 전투기를 사지 않으면 안보에 큰일이 나는 거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때마침 김관진 장관은 북한의 정권 수뇌부를 은밀하게 침투해 제거해버리는 능동적 억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게 스텔스기 도입 명분에 힘을 실어줬다. 또 산의 전면에 있던 북한의 장사정포가 산의 후면으로 갔다면서, 조밀한 방공망을 피해 산 뒤에서 전투기를 이용해 포를 공격하려면 스텔스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능동적 억제를 위해서도, 북한의 비대칭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만능의 보검은 스텔스기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따라서 이 기능을 갖추고 있는 F-35를 사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후 2013년 9월 13일 방위사업청장과 김관진 장관이 대통령 보고를 들어갔을 때, 박 대통령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추석 연휴가 끝난 24일, 이제까지의 사업 검토 결과 사항을 모두 부결시켰다. 그리고 1년 뒤인 2014년 9월 F-35 수의 계약을 결정하게 된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F-35, F-15SE, 유로파이터를 두고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두고 보고 있었다. 설마 한국이 F-35를 선택하지 않는 '불경죄'를 저지르겠냐 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데 F-15SE로 사실상 결정이 났고 방사청장은 F-15SE로 결정이 된 줄 알고 기자들과 만나 현대전에서 스텔스기가 뭐가 필요하냐고 이야기하고 다녔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비상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방위적인 압박이 들어간 것이다.

전투기 없는 공군 만들고 싶나

프레시안 : F-35도 그렇고 KFX도 이제는 가능성이 없는 사업 아닌가?

김종대 : 지금이라도 청와대 또는 정부가 잘못 관리했다고 국민들한테 사과하고 실상 밝히고 책임자 규명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정책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쌍발기를 단발기로 낮춘다든가, 전자식 레이더를 기계식 레이더로 바꾼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대신 좋은 컴퓨터를 실어서 체계 종합을 훌륭하게 하면 나중에 새로운 기술도 들어올 수 있으니까 이런 유연함과 탄력성으로 살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많다.

국제공동개발도 꼭 미국이나 인도네시아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검토하고, 다른 파트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으니 참여 국가와 시스템을 다시 짜면 아직도 희망은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정두언 국방위원장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했겠나.

이 사업은 공군의 목숨이 걸린 사업이다. 이 문제 해결하지 못하면 전투기 없는 공군이 돼버린다. 지금 나온 대안들은 모두가 죽는 길이다. 안보를 표방하면서 안보의 본질이 아니라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다. 이게 바로 이적행위 아닌가?

전투기 사업은 역대 대통령들이 다 직접 챙기던 사안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만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국정의 수반이 아니라 군주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이 국책사업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가 등장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저질렀던 모든 방산비리를 합한 것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다.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우리가 F-35를 도입한다고 해서 어려움에 처한 F-35 개발 사업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사실상 많은 국가들이 등을 돌렸는데.

김종대 : F-35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 개발에 쏟아부은 돈이 총 1조 달러(한화 약 1100조)나 되다 보니 본전이라도 건저야 한다. 미국 국방 예산이 시퀘스터(자동 예산삭감) 조치가 시행된 이후로 항상 도마 위에 오르는데, 합동전투기 사업이 잘못되면 국방예산 전체가 현재와 같은 규모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이럴 때 한국에서 책정한 8조 원의 자금이라도, 실제 돈은 늦게 받더라도 계약이라도 해놓는 것이 미국에게는 유리하다. 계약마저 하나도 없다면 F-35 단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실제 F-35의 단가 자체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대 : 미국 국방부도 살 수 없는 값비싼 전투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 록히드마틴사의 CEO를 지냈던 어거스틴이 발표한 52개 법칙 중에 16번째 항을 보면 전투기 가격 상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거스틴은 지난 70년간 전투기 가격 상승 추세를 분석한 뒤, 이런 추세가 유지됐을 때 2054년이 되면 미군이 국방예산을 모두 투입한다고 해도 전투기를 단 한 대밖에 사지 못할 것이라며, 일주일 중에 3.5일은 공군이 쓰고 나머지 3.5일은 해군과 해병대가 쓰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국은 지금으로 보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던 값싼 전투기로 세계 1,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치렀다. 그러던 전투기 가격이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다가 F-22, F-35가 등장하면서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다 보니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추구했던 미국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됐다. 최첨단을 추구하다 보니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전투기 성능이 고도화되다 보니 막상 이 전투기를 써먹을 전장이 없는 것이다.

일례로 리비아의 독재정권인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서방의 온갖 전투기가 출동했다. 여기서 스텔스기는 참전하지 못했다. 왜? 스텔스기는 은밀성이 높은 전투기다. 항속거리도 짧고 무장도 빈약하고 속도도 제일 늦다. 이런 복잡한 전장에 끼어서 전투를 할 수 있을 만한 성능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카다피는 레이더로 잡을 수가 없다. 스텔스 전투기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 2011년 3월 수도 트리폴리에서 연설하고 있는 생전 카다피 모습 ⓒAP=연합뉴스

당시 카다피 정권 제거를 위해 라팔, 유로파이터, F-18, F-16 등 전투기라는 전투기는 전부 리비아 상공에 출현했다. 실전에서 서방국가들의 전투기 성능 경쟁, 한마디로 말하면 '카다피 에어쇼'가 열린 셈인데, 이러다 보니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다국적군이 갔다고 하더라도 지휘체계는 단일화돼야 하는데 다른 서방 국가들이 미군의 지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국의 전투기를 가지고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지휘체계가 통일되지 않았다. 군사 작전이 아니라 완전 '에어쇼'였다.

한 번이라도 더 출격해야 다른 국가에 전투기를 파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군사 작전이 남발했다. 이러다 보니 전장이 통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카다피는 자기 나라 국민인 반군에 검거됐다. 서방으로서는 애석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전투기의 우수성을 검증할 기회가 없어진 것 아닌가?

근데 그런 면에서 딱 좋은 표적이 북한이다. 김관진 장관이 능동적 억제를 이야기하면서 은밀한 작전을 이야기했으니까. 이렇게 북한을 상대로 스텔스기를 써야 한다는 명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해버렸고, 이후에는 스텔스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에 감히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스텔스기에 대해 개발문제, 가격 문제 등 반론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개발하는 전투기 아니냐"며 밀어붙였다. 이건 미국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전투기인데 그걸 왜 믿지 못하냐는 식이었다. 전투기 도입이 냉정한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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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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