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12일 박근혜 대통령 발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방문 중인 박 대통령으로부터 '대선 투·개표 조작' 주장에 대해서는 날선 반응이 즉각적이고 격렬하게 터져나왔다.
대통령 방미를 수행 중인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3일(현지 시각) 브리핑을 열고 "지난 대선이 부정 선거였다는 취지의 야당 의원 주장이 있었다"며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해당 의원의 사과와 소속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차원의 입장 표명까지 요구했다.
워싱턴 현지발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김 수석은 박 대통령 일행이 미국에 도착한 지 불과 3시간 만에 현지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를 찾아 이같이 말하고 "(이는)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날 국회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이 "선거 당일 개표 2시간 만에 모 방송사가 박 대통령 '당선 유력' 방송을 내보냈다"며 "중앙선관위의 개표 조작 의혹이 있다"고 말한 것을 겨냥한 것.
김 수석은 이에 대해 "이같은 주장은 박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고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며 "국익을 위해 해외 순방에 나선 대통령에 대해 면책특권에 기대 이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국익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수석은 "과연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강 의원은 즉각 국민과 대통령에 대해 사과해야 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차원의 입장을 밝히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나섰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14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 "대통령을 뽑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며 "국민의 뜻으로 정당하게 당선된 대통령을 걸핏하면 흔드는 야당의 고질병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원 원내대표는 "모든 법적·정치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며 "문재인 대표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 달라"고 했다. 문 대표는 2013년부터 수 차례 "지금 누가 대선 불복을 말하나.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계속 '불복, 불복' 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 수석부대표는 "(강 의원의 의원직) 자진 사퇴 및 출당 조치 전까지 국회 운영위원직 사임을 요구하며, 사임할 때까지 운영위를 개최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선언하면서 "이와는 별개로, 법적 조치와 동시에 국회 윤리위원회에 동 사안을 회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대선 이후부터 인터넷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진 '대선 투·개표 조작' 주장은 낭설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관련 기사 : SNS 달군 '대선 부정 투표 의혹', 배후는 MB?) 주요 언론도 전날 강 의원의 발언을 전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14일자 조간 신문 지면에서 강 의원의 발언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강 의원의 발언에 발끈해 적극적으로 반응을 내놓은 것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뿐이다.
오히려 이날자 모든 신문은 국정 교과서 논란을 크게 보도했다. 교과서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은 전날 "나라와 국민 경제가 어렵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올바른 역사 교육 정상화를 이루어서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달라"고만 했다. 소통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비판과 함께 '남 얘기 하듯 한다', '유체이탈 화법이다'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에서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입장 표명이나 대(對)국민 설득 노력이 나오지 않았다. '대선 부정' 발언에 대한 신속한 반응과는 대비된다.
김무성 "사과할 사람이 그런 발언 하겠나" 시큰둥…친박계와 묘한 대조
새누리당 내에서 원 원내대표와 조 수석부대표, 심재철 의원 등 친박계 쪽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과는 달리, 김무성 대표는 다소 온도차가 있는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14일 오전 당 지도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강 의원 발언에 대한 입장을 요청받고 "도가 넘치는 잘못된 발언"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야당 의원들의 경우를 벗어난 발언이, 뭐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원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중심이 돼 강 의원의 사과와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당 차원의 입장을 내고, 청와대에서도 김성우 홍보수석이 강 의원의 사과와 새정치연합의 조치를 요구했지만, 김 대표는 "사과할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하겠나"라고 말해 묘한 대조를 이뤘다.
김 대표는 "(이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며 "언론에서 강 의원의 발언을 좀 더 크게, 대서특필로 써 주시기 바란다"고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이날자 조간 신문에 강 의원 발언 관련 보도가 거의 없었던 상황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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