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기어이 '안보 법안' 강행…파장은?

전후 70년 맞아 전쟁 가능 국가로…미-일 vs 중 긴장 고조

일본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집단 자위권 행사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안보 관련 11개 법률의 제·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로써 세계 2차대전 전범 국가였던 일본은 전후 70주년을 맞아 집단 자위권을 가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게 됐다.

19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자위대의 군사적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 안보 법안이 찬성 148표, 반대 90표로 통과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며 안보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작전을 벌였지만 표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에 제·개정된 법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무력공격사태법'과 '중요영향사태법' 등 10개 개정안을 담은 '평화안전법제조정법안'과 타국 군대의 후방 지원이 수시로 가능하다는 법안인 '국제평화지원법안'의 신설이다.

▲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소속 의원들이 19일 새벽 법안 통과가 결정된 이후 환영의 박수를 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선 '무력공격사태법'에는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구체적인 조건이 담겼다. 법안에서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권리가 근본에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가 '존립위기사태'로 규정됐으며, 이때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이는 일본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국가 존립을 위협받거나 명백한 위협이 있는 경우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향후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와 더불어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尖角列島)를 두고 중국과 벌이는 분쟁을 비롯해 동북아 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군사적 행동이 기존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다음으로 양당은 기존 '주변사태법'을 '중요영향사태법'으로 개정했다. 이는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자위대가 일본 주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군을 비롯한 동맹군을 후방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미군이 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동 지역에도 자위대 진출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또 양당은 '국제평화지원법'을 제정해 자위대의 해외 파병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전에는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위해 매번 특별조치법을 만들어야 했지만, 이제는 국회의 사전 승인이 있으면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 없이 언제든 원하는 곳에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총리가 파병을 요구할 경우 국회는 7일 이내에 의결하도록 노력한다는 규정이 있어 총리의 의중에 따라 파병이 결정될 여지를 남겨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태? '엿장수 맘대로'의 결정판

아베 정부는 이번 법안 제·개정을 통해 일본의 존립에 명백한 위협이 된다면 자위대를 통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명백한 위협이 되는 사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일본 내에서도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17일 "(아베) 정부는 안전보장 관련 법안으로 자위대가 활동할 새로운 '사태'를 다수 창설해 평상시에서 유사시까지 '끊김 없는 대응'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며 "사태 인정의 기준은 확실하지 않다. 사태 간의 경계에 애매한 부분도 많아 혼동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아베 총리를 포함해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대신 등 정부 주요 관료들은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발생한 사태의 개별적인 상황에 비춰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통신은 해설 기사를 통해 이번 안보 법안 제·개정은 "집단 자위권의 행사요건은 애매함을 해소하지 못했고, 행사 상정 사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향후 안보 정책에 화근을 남기게 됐다"면서 "'헌법 위반'이라는 근원적인 지적을 경시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동북아, 당장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겠지만…

일본이 자위대를 투입할 수 있는 '사태'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것은, 뒤집어 보면 일본의 정치·군사적 필요에 따라 자위대를 기존보다 유연하게 배치·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동북아 내에서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자위대 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향후 미국의 정치·군사적 수요가 자위대를 움직이는 주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당장 동북아가 미-일 대 중국의 대결 국면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동북아 역내 구성원들이 대결구도가 강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당분간은 조정 국면을 거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미국이 일본을 강하게 당겨서 현재 동북아 구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내년에 대선이 있는 미국의 국내 정치 일정상 일본에 지금보다 더 강하게 중국 견제의 선봉에 나서라고 압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역시 당장은 일본이 자위대를 이용한 군사적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일단 자위대가 집단 자위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법안 과정에서 일본 사회 내부의 반대가 강했기 때문에 실제 자위대의 파병과 같은 군사적 행동에는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일본이 평화 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면서 "이러한 여론이 아베 총리와 자민당에 정치적인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실제 집단 자위권 행사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2013년 10월 27일 일본 사이타마현 소재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열린 관열식(열병식)에서 사열하고 있는 아베 신조 (오른쪽)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한편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맞춰 장거리 로켓 발사 또는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의 정당성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북한의 군사적 행위가 일본 내 집단 자위권 행사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는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일반적으로 북한의 로켓 발사나 핵실험 등은 대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차원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것이 자위대를 움직이게 하는 '유사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준형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북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남북관계만 좋은 상황이면 한국의 대외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장거리 발사체를 쏘지 못하도록 예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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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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