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임질 테니 저 교수 끌어내!"

[상지대 민주화 일기 ⑦] 하계 교원 연수의 여덞 가지 장면

옛날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고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해주는 옛날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그러나 고집스런 할아버지가 출연하는 이야기는 재미없다. 8월 27일 오전부터 원주 인터불고호텔에서 진행된 상지대 하계 교원 연수는 자상한 할머니 대신 자기 옛날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고집스런 할아버지가 어거지로 출연한 재미없는 날이었다.

상지대에는 매년 여름방학에 교수 전체가 참여하는 하계 교원 연수가 있다. 김문기가 쫓겨나고 김찬국 총장이 오신 이후에 하계 교원 연수는 대학이 교수를 연수시키는 곳이 아니라 대학의 중요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면서 앞으로의 추진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공론을 모으는 '하의상달'의 매우 중요한 자리로 활용되었다. 더구나 대학 본부의 정책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결정 이전의 공론 형성의 장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사람사는 세상에서 잘 노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1박2일의 연수 과정에서 교수들이 서로 교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귐을 이어가고 관계를 도탑게 하는 또 다른 효과가 있었다. 삼상오오 거닐면서 이야기하고, 즐거이 노래하고, 한 잔 술을 마시면서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연수 이상의 효과이고 어떤 연수에서도 기대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목적과 취지가 그런 만큼 연수 장소도 설악산이나 동해안과 같은 산좋고 물 맑은 곳으로 했다. 상지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교원연수에 빠지지 않았다.

보직 교수들이 사퇴했는데 누가 교원 연수를 주관할까?

그러나 김문기 구재단이 학교를 접수한 이후 두 차례 연수는 무박1일의 무미건조한 전달 시간으로 추락했다. 작년에는 원주 문막의 오크밸리에서 했는데 초청된 외부 강사의 자기 자랑 빼고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때는 김문기의 둘째 아들 김길남이 이사장이었다. 김문기가 총장되기 직전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었더라면 이번 연수는 김문기가 총장으로서 주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7월 9일에 징계 해임되어 불발에 그쳤다. 그러나 자기가 11개월 동안 재직하던 총장실을 '설립자실'로 바꾸어 놓고 교육부를 속이면서 계속 학교로 출근하던 김문기가 교원 연수에 인사말을 하러 온다는 말을 들었다. 교원 연수 분위기가 궁금해졌다.

궁금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틀 전인 8월 25일 교육부가 대학 평가 결과를 각 대학에 통보했고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상지대는 하위 그룹에 포함되었다. 그날 저녁 모든 보직 교수들이 사퇴한다는 성명서가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랐다. 보직 교수들이 사퇴했는데 누가 교원 연수를 주관할까? 대학 평가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까? 만약 김문기가 출연한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재미없는 연수지만 참석하기로 했다.

8월 27일 오전 10시. 인터불고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행사장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학생들의 대열이었다.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 20여 명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김문기가 들어올 길목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에는 "학교 망친 김문기, 이사회, 보직 교수 전원 즉각 사퇴하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피켓은 교수, 학생, 직원 탄압을 반대하는 문구와 사학 비리 전과자 김문기의 퇴진과 대학 민주화를 염원하는 익숙한 내용이었다.

학생들의 대열을 지나 행사장 근처로 가니 교수들이 여기저기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방학을 지나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파면된 이후 처음 만나는 교수들은 멋쩍게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고생한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먼저 파면되고 이어서 교수 3명이 파면되고 1명이 중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나를 포함해서 파면 교수 3명이 연수에 참석했다. 학교에서 우리들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다. 더구나 나는 파면 직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파면이 취소되었지만 학교가 복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궁금했다.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

장면 1

10시 30분 경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돌려 바깥을 보니 학생들이 우르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문기를 태운 벤츠 승용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그 옆을 학생들이 따라 붙었다. 승용차가 행사장 출입문 앞에 멈춰섰고 김문기가 내리자 학생들이 항의를 했다. 몇몇 학생들은 출입문 안으로 들어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김문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교원 연수 행사장 옆에 붙은 신부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왜 김문기는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을까?

장면 2

시간이 되자 교수들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최근에 파면된 공제욱 교수, 방정균 교수협의회 대표와 함께 나도 안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일부 직원들이 막아섰다. 막는 직원들은 교원 연수를 담당하는 교무부 직원이 아니라 행사와 무관한 시설부나 총무부 소속의 김문기 측근들이었다. 김문기가 처음으로 참석하는 행사이니 신변 경호를 위해 출동했거나 우리를 막기 위해 나온 모양이다. 약간의 실랑이가 일었다. 나와 직원 몇 명이 실갱이 하는 사이에 공제욱 교수는 먼저 들어갔고 이어서 그들을 뿌리치고 나도 들어갔다. 방정균 교협 대표는 결국 막혀서 입장하지 못했다.

장면 3

나는 좌석 앞줄에 앉았는데 일부 직원들이 내게로 와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내가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 행사장에 모든 교수들이 앉아 있는데 덩치 큰 직원들이 들어와서 나를 쫓아내려고 하니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경제학과 황신준 교수가 교원 연수장에 왜 교수 아닌 사람이 들어왔느냐고 사회자인 교무처장에게 항의하며 소리쳤다. 그런데 총명하지 못한 교무처장이 말귀를 거꾸로 알아듣고 나를 내보내라는 소리인줄 알고 용기백배하여 직원들을 독려하여 나를 내보내라고 다그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 교원 연수장에 직원들이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방치한다고 항의한 것인데 감각이 미숙한 교무처장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이다.

조금 더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직원들은 밀려나고 연수는 시작되었다. 보는 교수들 눈이 400개가 넘는데 아무리 김문기 측근이라지만 눈총이 따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문기가 설립자를 참칭하며 인사말을 한다고 들었는데 김문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이현규 총장직무대행이 인사말을 했다. 차분하게 인사말을 시작했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장면 4

직무대행의 인사말이 시작되고 채 몇 마디 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교수들의 항의성 질문이 빗발쳤다. 직무대행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교원 연수가 아니라 즉석 생생 토크가 되어버렸다. 왜 교수들을 자꾸 징계하느냐? 대학 평가를 망친 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김문기가 대학 설립자가 아닌데 왜 자꾸 설립자라고 거짓말을 하느냐? 보직들은 25일자로 사퇴했는데 왜 여기 보직으로 참석해 있느냐? 끝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이 아니라 항의였고 분노의 표시였다.

한동안 소란한 상태가 가시질 않았다. 교원 연수가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겨우 분위기를 수습해서 2학기에 새로 임용된 신임 교수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얼마나 어색하고 민망한 분위기였을까?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나온 신임 교수들에게는 인사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소개를 하는 둥 마는 둥 어정쩡하게 마치고 예정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한없이 냉랭했다. 상당수 교수들이 행사장을 빠져나가버렸고 장소를 지키고 있는 교수들도 강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도 행사장을 나와 버렸다.

행사장 바깥 로비에서 보니 신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문기가 큰아들 김성남을 데리고 승용차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물어보니 미리 행사장을 나온 여교수 세 명이 김문기가 앉아 있는 신부 대기실로 들어가 항의를 했다고 한다. 김문기가 어떤 표정으로 응대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 중 한 교수는 너무 답답하다며 울면서 나왔다고 한다. 그 상황이 눈에 선하다. 그 직후에 김문기가 신부 대기실에서 나온 모양이다.

봄에 이사가 된 큰아들 김성남은 지난 달 이사회에서 상임이사로 선임되었다. 김문기 아들이 이사가 되고 상임이사가 되었으니 사실상 이사장 노릇을 할 것임은 익히 짐작할 만하다. 상임이사의 올해 급여로 9314만 원이 책정되어 논란이 일었다. 1년치 급여로 쳐도 엄청난 액수인데 겨우 반년치 급여가 억대 수준이라면 도대체 급여를 얼마로 책정했단 말인가? 몇 조 원인지 모를 엄청난 재산을 가진 김문기 일가지만 법인의 재산과 수입은 형편없는 지경이어서 법으로 정한 법정 부담금도 납부하지 못해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대납하는 빈궁한 처지에 김문기 아들 김성남에게 거액의 급여를 지급하다니 역시 족벌체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오전 행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예약된 식당으로 가니 비빔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많이 먹지도 않는데다 요즘 식욕이 없어서 이 정도가 좋았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전체 교수들을 모아놓고 비빔밥을 내놓은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었다. 메뉴가 비빔밥이다 보니 길게 먹을 것도 없었다. 간단하게 때우고 호텔 안 찻집에 모여서 연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식간에 30여 명의 교수들이 둘러앉았다. 오후 1시가 넘어 찻집을 나와 행사장으로 가다가 화장실에서 총장직무대행과 마주쳤다. 일전에 동료 교수 문상하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길게 나눈 적이 있기도 해서 잠시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장면 5

호텔 로비 복도에 비치된 좌석에 이현규 총장직무대행, 중국학과 이상은 교수와 함께 앉아 최근의 학교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김문기가 총장직에서 해임된 7월 9일 이후에 직무대행으로 선임되었으니 한 달 남짓 직무대행을 한 셈인데 두 가지 주문을 했다. 지금까지 1년간 대학 본부를 장악하고 호가호위해온 사람들(교수, 학생, 직원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부총장, 교무처장, 기획처장을 김문기 측근 3인방이라고 부른다)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대학을 운영해주기 바란다는 것과 진실에 기초해서 중심을 잡고 대학 업무를 수행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야 대학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만 하면 업무에 협조하겠다고 말해주었다. 이현규 교수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경청하는 태도로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

이현규 교수는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89년 가을에 상지대에 부임한 산림공학자이다. 김문기가 쫓겨나기 네 해 전인데, 그 때는 상지대의 썩은 종기가 곪아터지던 시절이었고 교수협의회가 창립된 해이기도 했으니 김문기에 대한 반대 정서가 있을 법도 한데 그는 일찌기 김문기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아마도 부임 초기에 김문기와 연을 맺은 방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때는 또한 상지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던 시기였고 부족한 교수를 보충하기 위해 그 해 전후반기에 30명 가까이 교수를 초빙했는데 전반기에 초빙된 교수들이 대거 교수협의회에 가입하여 김문기 퇴진의 중심에 섰고 김문기 축출 이후에는 대학 본부와 교수협의회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활동한 반면 후반기에 초빙된 몇 명의 교수들은 교수협의회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하더라도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도 후자에 속하는 교수이다. 이현규 교수는 크게 모난 성격의 인물은 아니지만 김문기와의 관계 때문에 교수협의회와는 다른 공간에서 생활했다. 아마도 그 오랜 관계 때문에 이번에 총장직무대행에 선임되었을 것이다.

장면 6

이현규 교수가 오후 일정 준비차 먼저 일어서고 이어서 우리도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별 생각없이 행사장에 들어가려는데 10여 명의 직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오전에는 불과 몇 명이 막았지만 오후에는 인원이 많아졌다. 오전에 실패한 것 때문에 인원을 보강한 모양이다. 그러나 교수들도 많았기 때문에 일순간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안들어가도 그만인 자리였고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실랑이와 몸싸움이 있었지만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들어오는 과정이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미리 들어온 교수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분위기는 싸늘할 정도로 조용했다. 인사, 담소, 덕담의 일상적인 관계는 모두 실종되어버렸다.

오후 일정은 예정에도 없는 질의응답으로 시작되었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오전에 있었던 질의응답에 이어서 보충적인 토론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3인방의 한 사람인 부총장이 마이크를 잡고 질문받고 답변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부총장인 조재용 교수는 고려대를 나와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미생물 전공자인데 구재단 복귀 후 법인사무국장, 총장직무대행, 부총장 등 요직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나 학교 경력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출세가도인데 상황에 잘 편승한 현실주의적인 처신 때문인지 모르겠다. 경력 등 미심쩍은 대목은 있었지만 아직은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았던 2011년도에 내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한 두 차례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치고는 말이 무척 번드르르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기름바른 말주변이 컨텐츠에 의해 뒷받침되지는 못했고, 임기응변에 지나치게 능하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행위 유형의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주변에서 더러 볼 수 있는 하나의 유형이기도 하다.

장면 7

이 날도 그랬다. 사회를 보는 부총장에게 교수 징계, 대학 평가 결과, 설립자 문제 등 질문이 쏟아졌다. 부총장은 예의 알맹이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아전인수격 답변을 끝없이 이어갔고 이에 대한 항의가 빗발쳤다. 설립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법리적 설립자와 실질적 설립자가 다르다는 식으로 들리는 창조적인 대답을 했다. 어린 학생들에게도 차마 하지 못할 소리를 선배가 즐비하고 사립학교법과 대학의 역사에 정통한 교수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했다. 자기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자기가 매우 유능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해 총장직무대행이 대신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바꾸어 설득조로 말을 돌렸다. 교수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교수 징계에 이어 다시 며칠 전 이사회에서 징계 요구된 7명의 교수들 중에서 3명의 여교수가 차례로 일어나 자신이 왜 징계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울분에 찬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갔다. 김문기에 대한 이성적인 비판과는 결을 달리하는 여교수들의 감성 코드가 교수들의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교수이지만 또한 주부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한 젊은 여교수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징계하는 파렴치한 인면수심의 사람들을 향한 예리한 칼날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김문기는 오후에 행사장에서 발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김문기의 지령을 받은 총장직무대행 등 보직들은 김문기의 참석과 발언을 관철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이현규 교수가 설립자 운운하며 김문기의 인사말을 듣자고 교수들을 설득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자 강경한 태도로 돌변했다. 징계 대상자로서 발언하던 여교수들은 더 이상 연수를 받을 이유가 없다며 행사장에서 퇴장해버렸다. 많은 교수들이 함께 혹은 뒤이어 나가버렸다. 이 때 뒤를 돌아보니 김문기는 이미 행사장에 들어와서 뒤편에 서있었다. 그제서야 이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현규 교수는 계속 설립자 운운하며 인사말을 듣자고 했다.

나는 이 날 아무 발언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결심한 것이 아니라 젊은 교수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젊은 교수들이 대학 평가 문제와 교수 징계 문제를 중심으로 발언하려고 하니 지켜봐달라고 부탁을 받은 상황이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종일관 침묵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오전에도 그렇게 했고 오후에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미 3분의 2 이상의 교수들이 행사장을 떠나버렸고 추가로 발언할 교수들도 없는데다 김문기는 입장해서 인사말을 하려는 상황이므로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렵게 되었다.

▲ 발언하는 김문기 씨.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

장면 8

나는 김문기를 돌아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김문기의 참석과 발언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문기는 설립자가 아니고 상지대를 오욕으로 물들인 사학 비리 전과자이며 지금의 상지대를 파행으로 이끈 주범이라고 역설했다. 행사장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 순간 직원들이 행사장 안으로 다시 들이닥쳤고 나를 둘러쌌다. 내 발언을 저지하면서 끌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뿌리치면서 계속 발언했다. 옆에 앉아 있던 방정균 교수협의회 대표도 일어나 발언했다. 행사장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 둘은 자리에 선채로 김문기의 부당함을 웅변했다. 그 사이에 김문기는 앞으로 이동해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김문기를 바라보면서 또한 김문기를 가리키면서 김문기로 인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당황한 총장직무대행이 직원들에게 강한 어조로 지시했다. "내가 총장직무대행으로서 모든 책임을 질테니 정대화 교수를 끌어내!"그러나 교수들의 이목이 집중된 대낮의 행사장에서 설령 깡패라고 한들 나와 방정균 교수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현규 교수가 자리에 앉든지 나가든지 해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우리는 앉지도 않을 것이고 나가지도 않을 것이라며 맞섰다. 내가 파면되었기 때문에 나가야 한다면 총장에서 해임된 김문기와 함께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개를 숙인 교수들

이렇게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우리는 행사장에게 나가기로 했다. 김문기에 대한 반대와 상지대 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후 이 자리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선언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앞자리에서 뒤로 이동하면서 남아 있는 교수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대다수 교수들이 떠나버려 자리는 썰렁했고 일부 남아 있는 교수들은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몇몇 교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행사장 바깥 로비 여기저기에 교수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나간 후에도 계속해서 교수들이 자리를 떴다. 이미 정상적으로 교원 연수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텅빈 공간에서 김문기는 설립자를 참칭하며 무슨 말인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다. 외부 강사로 불려온 뉴라이트 논란의 주역 공주대 이명희 교수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그런 다음에 대학 평가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다수 교수들이 빠져나간 다음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질문도 토론도 없었다고 한다. 질문할 사람도 없고 토론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벽보고 절한 꼴이다.

이렇게 상지대는 김문기의 아집과 전횡에 무너지고, 김문기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파렴치한 인사들에 의해 무너지고, 대학 평가로 무너지고, 부당한 대량 징계로 무너지고, 학내 분규로 무너지고 있다. 하나의 이유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총체적 부실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이제 대학 평가에서 하위 그룹에 들어갔으니 당장 내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초비상 상태를 경험할 것이다. 상지대가 헤어날 수 없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든 셈이다. 대학도 모르고 교육도 모르고 도덕성도 없는 파렴치한 자들이 대학을 좌지우지한 결과이다. 대학에 진정한 배움이 없고, 학문과 연구가 없고, 토론이 없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니다. 상지대는 이미 교육과 연구가 없고 진실과 진리가 실종된 학문의 폐허로 변했다.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에 도둑이 창궐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심성이 특별히 나쁘고 도둑놈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도둑질을 강요하거나 도둑을 방치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도둑질을 하면 국민도 도둑질을 한다. 정부가 무능하면 도둑이 번성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정부가 도둑을 양산하고 경찰이 도둑과 한통속이라면 그야말로 도둑놈 천하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때는 도둑놈이 현명한 사람이고 도둑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 된다. 바야흐로 도둑질 못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뒤집힌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반복해서 경험한 역사의 원리이다.

상지대와 김문기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문기는 결코 교육자일 수 없는 사람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나 상지대가 김문기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이유가 비단 김문기의 무절제한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김문기를 상지대에 복귀시킨 또 다른 파렴치한 조직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와 교육부가 배후 세력이고 그 뒤에는 더 큰 그림자 배후인 부패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김문기의 배후이자 숙주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도둑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김문기 역시 성공할 수 없다. 은폐된 도둑도 성공하지 못하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희대의 사학비리 전과자가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 포인트이다.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겠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김문기는 이 상황의 최대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것은 김문기의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김문기의 복귀 자체가 김문기에는 불운인 것이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불나방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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