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재단에 학교를 헌납한 이상한 국가 기관?

[상지대 민주화 일기 ③] 비리 재단 불러들이는 사분위 정상화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 순사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맹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정치 원리를 설파했는데 만약 맹자가 식민지 시대를 관찰했더라면 순사맹어호(巡査猛於虎)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순사의 위세는 해방 후 권력과 결탁한 정치 깡패를 거쳐 권력의 주구로 전락한 남산으로 이어졌다. 남산은 중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2007년 발족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일반 국민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음지에서 사학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순사이자 정치 깡패이자 남산과 같은 존재였다.

순사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복무한다. 정치 깡패는 독재 권력에 봉사하고 남산은 군사 독재 체제에 복무한다. 그렇다면 사분위는 무엇을 위해 복무할까? 사학 정상화를 위해 복무한다고 되어 있다. 사분위가 말하는 사학 정상화란 무엇일까? 사학 비리를 저질러 쫓겨났던 비리 재단에게 학교를 돌려주는 것이 사분위가 말하는 사학 정상화이다. 그러므로 사분위는 비리 재단의 옹호자, 하수인, 멘토 그 자체이다. 그러나 사분위의 모태인 사립학교법에는 그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점잖은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다. 점잖은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 똥싸고 문지르는 격이다.

사분위는 일반 국민들에게 매우 생소한 조직이므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사립학교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분위의 구성과 조직 및 역할은 글의 끝에 별첨한다. 사분위는 임시 이사의 선임과 해임 및 임시 이사가 파견된 학교의 정상화를 심의하는 교육부 장관 소속의 행정 기구로 설립되었다. 사학 분쟁과 관련해서 종래 교육부 장관이 다루었던 업무를 위임받은 셈이다. 사분위는 대통령 추천 3인, 국회의장 추천 3인, 대법원장 추천 5인 등 11인으로 구성되는데 반드시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인사가 위원장을 맡도록 되어 있다. 교육부의 업무인데 교육부 장관은 사분위 구성에 일절 관여할 수 없다. 대통령 관할의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다루지만 대법원장이 대통령보다 많은 5인을 추천하고 대법원장 추천인사가 위원장을 맡도록 설계되어 있다. 조직 구성 자체가 기형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 정대화 교수가 지난해 10월 7일, 국정 감사에 출석하지 않은 김문기 상지대학교 총장 규탄 기자 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분위, 처음부터 막나가는 조직이었나

사분위의 정상화 심의 결과에 대해서는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이 재심을 요구할 수 있지만 재심 결과에 대해서는 기속되도록 되어 있다. 사분위가 형식상 교육부 산하의 행정 기구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교육부 장관의 지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적 관계를 방증하는 것은 재심인데 지난 8년간 교육부 장관이 사분위에 재심을 요구한 사례는 전무하다. 현실적으로 재심을 요구하지 않고 재심을 요구해도 재심 결과에 기속되니 재심은 사문화된 조항이다.

사분위의 탄생 설화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분위가 처음부터 막나가는 조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사분위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간의 부당거래의 산물로 잘못 태어난 조직인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에 제1기 사분위원들이 선임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조직 구성의 의도가 사분위원 선임에 의해 억제되어 비교적 조신하게 작동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3인을 추천하고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3인중 2인이 열린우리당 추천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장 추천 인사 5인과 한나라당 추천 인사 1인이 모두 동일한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분위가 비리 재단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기 어려운 구성이었다. 사분위 조직에 작용한 음모적 구상이 현실의 인사에 의해 단기적으로 통제되었다는 말이다.

이 시기에는 사분위의 조직 의도와 무관하게 사학 정상화를 정상적으로 추진하려는 정상화파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리 재단 옹호파는 당분간 발톱을 숨겨야 했다. 이들 두 파의 합의로 학교별 사정을 고려한 맞춤형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과 사분위 안에서 합의제 방식으로 사학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이 수립되었다. 아름다운 원칙이고 아름다운 합의였다. 그러나 후일 드러나지만 첨예한 갈등 구조를 내장한 사학 정상화가 합의제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기에 정상화파가 다수를 점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합의제 원칙에 발목이 잡혀 정상화를 추진하지 못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비리 재단 옹호파의 지연 작전이 걸려든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발톱이 드러났다. 먼저 정상화파 중에서 건국대학교 주경복, 상명대학교 박거용, 한신대학교 김윤자 등이 친사학 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그 자리는 이우근 위원장과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친사학 세력이 포진한 2009년의 제2기 사분위 체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제1기의 맞춤형 정상화 원칙은 즉시 폐기되고 비리 재단에게 학교를 돌려준다는 원칙이 수립되었으며 사분위의 합의제 운영 방식도 폐기되었다. 친사학파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사분위 최대 강성으로 이름을 떨친 강민구 판사가 법률특위 간사를 맡아 비리 재단에게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과반수의 이사를 배정한다는 ‘정상화 심의 원칙’을 9월 10일에 만들었고 조선대학교와 영남대학교에 먼저 적용한 후 상지대학교에도 끼워넣었다.
사분위 정상화 심의 원칙

① 합의 또는 합의에 준하는 이해관계자(구성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는 경우 합의를 존중하여 합의안대로 처리.

②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거나, 2/3 이상의 구성원 사이의 찬성이 없는 경우.
∙ 종전 이사 측에 지배 구조의 큰 틀을 변경시키지 않는 최소한(과반수)의 정이사 추천권을 부여. 다만, 사회 상규와 국민의 법감정 등에 비추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경우는 제외.
(제외 조항 적용 예시 : 파렴치범, 반인륜범, 강력범법 행위자 등)
· 나머지(과반수 미만) 정이사는 중립적인 인사를 추천하여 사분위 검증 과정을 거쳐 선임.
· 위의 원칙을 준수하되, 대학별 사정 등을 종합, "대학별 구체적 선임 방안" 마련.
사분위에서 상지대 문제는 조선대, 영남대, 대구대학교, 세종대학교 등과 더불어 초기부터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논의는 전체회의와 소위원회를 오락가락 하면서 가닥을 잡지 못했고 소위원회에서 추진한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도 실행되지 못하고 계속 연기되었다. 정상화 문제가 가닥을 잡지 못하게 되자 임시 이사를 파견하는 방안이 거론되어 한동안 논란을 거듭하다가 사분위 가동 1년 6개월이나 지난 2009년 5월에 6개월 임기의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정상화 문제를 매듭짓지 못해 다시 임시 이사가 파견되었다. 결국 이우근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강민구 판사 주도로 정상화 심의 원칙을 결정하면서 정상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참으로 대단한 사분위

정상화 방침을 결정한 후에도 상지대 문제는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다가 해를 넘겨 2010년 4월에 정상화 원칙에 따라 구재단 5명, 구성원 2명, 교육부 2명 등 5:2:2의 정상화 배분 비율이 결정되었고 이 원칙을 바탕으로 6월에 청문을 실시했다. 그러나 배분 비율을 결정한 다음에도 계속 결정을 연기하다가 8월 9일 최종적으로 구재단 4명, 구성원 2명, 교육부 2명, 임시 이사 1명 등 4:2:2:1의 비율로 정상화를 결정했고 8월 30일 이주호 장관이 취임하는 날 퇴임하는 안병만 장관에 의해 행정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사분위가 상지대에 정상화 심의 원칙을 적용하던 2010년 여름에는 비리 재단 복귀에 반대하는 상지대 구성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상지대의 저항은 야당과 교육 단체, 참여연대 등 시민 단체의 저항은 물론 언론의 저항을 초래했다.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상지대 정상화에 대한 현안 보고를 개최하여 이우근 사분위원장의 출석을 요청하고 회의록 등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분위는 스스로를 준사법적 기구라고 강변하면서 출석을 거부하는 동시에 회의록 제출 거부 및 속기록 폐기 등 안하무인의 자세로 대응했다. 상지대 정상화 결정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9월 9일 사분위가 발표한 성명서는 사분위가 얼마나 무소불위 안하무인의 기구인지를 말해준다. 먼저 자신의 위상을 정리했다.

"사분위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의 제청으로 임명된 11인 위원으로 구성되는 준사법기관적 독립 위원회이며, 사분위의 조정 결정은 재판 절차에 준하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내려지는 창설적·준사법적 성격의 강제 조정 결정…."

사분위가 스스로 설정한 기구의 성격과 위상이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은 3년 후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드러나게 되지만 안하무인의 사분위는 사분위 결정에 누구도 관여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현안이 된 국회 청문회에도 부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참으로 대단한 사분위가 아닐 수 없다.

"특정 안건에 대한 사분위의 심의·결정에 관하여 사분위원장이 법정 외에서 설명 내지 해명을 하는 일이 선례가 되고 관행이 된다면, 이는 사분위의 결정에 사법부 이외의 제3자가 사실상 관여하는 것이 되어 사분위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 현재와 같이 사분위의 특정 결정에 대한 장외에서의 끊임없는 위법한 공세가 지속되고 심지어는 정치적 투쟁으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사분위원들은 현재 심리 중인 어떠한 분쟁 사학에 대하여도 독자적이고 소신 있는 심의와 결정을 할 수 없어 사분위의 존재이유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이에, 이와 같은 위법한 공세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사분위원들은 향후 전원 중대한 거취상의 결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힙니다."

사분위의 이러한 태도에 국회 교과위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사분위 폐지를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김상희 의원 역시 폐지에 준하는 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사분위 문제가 국회의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회기 만료로 개정 법안이 자동폐기된 2012년 후에는 유은혜 의원이 다시 개정 법안을 제출했다. 야당이 중심이 되어 국회가 사분위 폐지를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분위원에 선임되었거나 재직한 변호사들의 심각한 도덕적 일탈 때문이다.

유은혜 의원이 2014년 10월에 발표한 보도 자료에 의하면 2007년 12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사분위원을 역임한 44명중 15명이 바른, 동인, 케이시엘 등 법무법인 소속의 현직 변호사였는데 이들은 정상화가 진행 중이거나 정상화 대상인 대학의 구재단이 제기한 소송을 수임하거나 정상화 과정에서 구재단 측 정이사로 선임되는 등 불법적이거나 부적절한 유착 활동을 반복했다. 고영주 사분위원이 대표변호사로 재직한 케이시엘은 김포대학교와 대구대, 대구미래대 등의 소송을 대리하거나 정상화 후 소속 변호사가 구재단 측 정이사로 선임되었다. 제3기 사분위원장을 지낸 오세빈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의 대표변호사로서 동덕여자대학교 구재단이 제기한 소송을 수임하고 소속 변호사가 구재단 측 정이사로 선임되었다. 강훈 사분위원이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인 바른은 덕성여자대학교 구재단측 소송을 맡았고 서원대학교 구재단 측 소송을 대리한 경력을 가진 이재교 변호사는 사분위원에 선임된 후 소속을 옮겨 다시 서원대 구재단 측 소송을 맡았다.

헌법에 따라 행정부를 감시·감독할 권한을 지닌 국회의 통제까지 거부하면서 사학 재단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한 사분위는 이 과정에서 을의 관계에 처한 구재단의 소송을 수임함으로써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챙기고 대학의 이사로 선임되는 영광도 누렸다. 물불을 가리지 않은 사분위의 노력으로 1980년대 이후 임시 이사가 파견되어 대학 민주화를 이룩한 조선대, 영남대, 상지대, 대구대, 세종대, 경기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일대, 광운대 등 주요 대학들에 예외없이 구재단의 복귀가 이루어졌으며 전국의 초·중등 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임시 이사 대학과 학교에 구재단이 복귀하면서 교육 민주화는 1980년대 이전으로 퇴행했다.

사학 민주화를 완전히 후퇴시킨 사분위

지난 20년간 공들여 이룩한 사학 민주화를 4~5년의 극히 짧은 기간에 완전히 후퇴시켜 버린 사분위의 역할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단한 역할로 인해 사분위는 사학 분쟁을 조정하는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라 사학 분쟁을 조장하고 비리 재단을 옹호하고 복귀시키는 기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사학 민주화를 파괴한 반교육적 기구라는 불명예도 얻게 되었다. 교육 단체와 시민 단체는 사분위를 부정하고, 언론은 사분위를 비판하고, 국회는 사분위 폐지를 추진하는 등 사면초가의 상황이 형성되었다. 사분위에서 악역을 수행한 변호사들의 역할을 두고 법조계 안에서도 적잖은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강민구의 대법관 탈락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비판은 헌법재판소의 비판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5월과 11월에 일련의 사립학교법 위헌 관련 판결을 통해 사분위의 논리는 물론 사분위가 금과옥조로 인용한 2007년 상지대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사분위가 스스로 강조한 준사법적 강제 조정 기구를 부정하고 사분위를 교육부 산하의 행정 기구로 격하시켰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사분위는 국회의 증인 출석 요구나 회의록 등 자료 제출 요구에 고분고분 순응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분위가 고분고분해진다고 과거의 잘못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23일의 상지대 대법원 판결에서 강조한 것처럼 개방이사제를 적용하지 않은 사분위 정상화가 불법으로 확정될 경우 지난 8년간 사분위가 해온 무소불위의 불법적인 정상화는 모두 무효 처리될 운명이며, 이렇게 될 경우 사분위는 폐지의 운명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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