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 블랙리스트, 지금도 유효하다?

[조선소 잔혹사] 노조 가입을 막는 '블랙리스트'

1987년 이전만 해도 월급날이면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는 술집 주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외상값이 문제였다. 당시엔 월급을 지금처럼 통장으로 이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란 봉투에 '아무개' 이름을 써서 현금으로 지급했다. 대략 한 달에 400시간 정도 일하면 20만 원~25만 원을 받았다.

그 돈을 받으면 절반은 생활비로, 나머지 절반은 술집 외상값으로 나갔다. 월급날 술집 주인들이 정문 앞에서 진을 치는 이유는 외상값을 떼먹는 노동자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현금을 쥐고 퇴근하는 노동자의 뒷덜미를 잡으려 혈안이 돼 있었다.

당시 월급날 현대중공업 인근 술집이 몰려 있는 골목은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자는 노동자들로 걷기 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는 길바닥에서 쪽잠을 잔 뒤 곧바로 출근하는 식이었다. 그런 일들이 월급날 뒤로도 2~3일 지속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리고 언제 다칠지 모르는 조선소 노동자의 삶이었다. 이들은 고단한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술로 덜어냈다.

대부분 노동자가 이곳에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다. '빡세게' 일한 뒤, 다른 일을 찾으려는 생각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상도 1987년 민주화 투쟁, 즉 현대중공업에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점차 사라졌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는 두발 자율화, 임금 인상 등 17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1987년 7월 28일부터 9월 21일까지 약 56일 간 파업과 농성, 가두시위 등을 벌였다. 그 결과, 쥐꼬리만 하던 임금은 매년 팍팍 뛰었다. 두발 제한 등으로 대표되는 인격 모독적인 작업현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산업재해도 상대적으로 줄었다. 위험한 작업환경은 노조를 통해 개선해나갔다. 이전보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들, 체로 걸러내기 방식으로 해고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04년 이야기를 해보자. 현대중공업 사측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이중적 차별 고용관리 전략을 짰다. 사내하청공, 즉 하청 노동자 비중을 확대하면서 고용조절, 비용절감 등을 꾀했다. 반면, 원청 노동자에게는 회유 전략을 펼쳤다. 한국조선협회 자료를 보면 1990년 1998명에 불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는 2004년에는 1만2276명으로 6배나 증가했다.

그 결과, 하청 노동자가 담당하는 업무는 대체로 원청 노동자가 기피하는 업무가 됐다. 게다가 원청 노동자와 임금, 복지에서도 차별이 있었다. 연말 경영성과급도 차등 지급됐다. 산업재해로 죽는 하청 노동자의 수도 늘어갔다.

하청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자기들도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했다. 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이 결성됐다.

하지만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도 보장받지 못했다. 하청노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곧바로 해고됐다. 아니면 소속 업체가 '경영상의 이유'로 문을 닫아 자연스럽게 해고자가 됐다. 일례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이 노조설립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한 뒤, 신고서에 적힌 노조 임원진과 조합원 10여 명이 소속된 업체는 폐업처리 됐다.

1987년 원청 노조의 탄생과 이후 투쟁 과정을 지켜본 사측 입장에서는 하청에서도 노조가 생기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속해서 노조 회피, 그리고 방해 전략을 펼쳤다.

그 와중에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게 그의 유언이었다. 2004년 2월 14일이었다. 이것과 더불어 소지공(파워그라인더공)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회사의 일방적인 발표가 있었다. 이것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10여 개 하청업체 150여 명 하청노동자가 공개적으로 노조에 집단 가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박일수 씨 장례식 다음 날이었다. 노조 가입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됐다. 체로 걸러내는 방식이었다. 조합원이 있는 업체를 폐업한 뒤, 그 업체에서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는 다른 업체에 취업시켜주는 식으로 해고가 진행됐다.

▲ 박일수 씨 10주기 행사.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11년 넘게 현대중공업 땅을 밟지 못하는 노동자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5년 이야기를 해보자. 그 사이 1만2000여 명이었던 하청노동자는 3만7040명(원청 2만6880명)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반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11년 전과 다를 바 없다. 2014년에만 13명의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현대중공업 내에서는 다시 하청 노동자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즉 하청 노조는 원청 노조와 함께 올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직화를 진행했다. 하청 노조는 2004년 이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조직력은 매우 약하다.

조직화는 쉽지 않다. 몇 차례에 걸쳐 집단 가입을 유도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다. 노조에 관심은 있으나 선뜻 나서기 어려운 현실조건 때문이다. 노조에 가입했다가 혹시 해고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크다.

무엇보다 11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돌고 있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하청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발목 잡고 있다.

2004년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이들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중공업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계열사는 고사하고 조선업 삼대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 하청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규모가 작은 중소 조선소를 전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부인하지만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이 블랙리스트는 현재 하청노동자의 노조가입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다. 2014년 현대중공업원청과 하청 노조가 하청노동자 1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이들 중 36.5%는 '노조에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해고와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 답한 게 61.7%를 차지했다.


"현장 노동자가 위험 작업 거부하는 힘 있어야"

"2004년 당시, 공개적으로 노조에 가입한 하청 노동자들은 아직도 현대중공업에 발을 못 붙이고 있다. 이들은 중소 조선소가 있는 군산, 통영, 진해 등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셈이다.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며 노조에 가입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고 그 참담함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그런 과정을 현장에서 다 지켜봤다. 노조에 가입하면 현대중공업만이 아니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에서 밥 벌어먹고 못 산다는 인식이 깊게 각인됐다. 그것 때문에 조직화 작업이 쉽지 않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많은 하청 노동자가 노조에 관심이 있지만 대규모 가입이 어려운 이유는 블랙리스트 때문"이라며 "현장 노동자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공포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신원철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의 논문 ‘사내하청공 제도의 형성과 전개'를 보면 노동시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규제양식은 '국가에 의한 직접적 법률적 규제'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통한 규제'로 규정된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함으로써 고용관계 내에서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관행이 재생되는 것을 규제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에 의한 규제'는 있으나 마나일뿐더러 노조 조직화마저도 제대로 안 되면서 단체교섭은 ‘언감생심'이 됐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지속할수록 노동현장은 더욱 피폐해져 간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 "외나무다리 위를 뛰는데 아무도 안 말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김형균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정규직 노동자는 현장에서 문제가 있으면, 요구하면 들어주고 처리해 줄 수 있는 노조 대의원들이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그런 토대 자체가 없다"며 "어디에 외칠 곳도 없으니 답답하고 화도 나고,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박탈감 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이런 구조 속에서는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 지회장은 "현장에서 위험 작업들을 거부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활동보장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시설을 늘리고 안전 대책을 수립해봐야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미향 사무국장도 "고용에 목이 메 있는 하청 노동자 개인의 힘만으로 위험한 작업환경을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하청노조로 힘을 모아 위험한 작업을 할 때는 작업중지도 시키고, 작업환경도 개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재해를 줄이려면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이 결정되는 과정에 단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제도, 즉 노동기본권이 실현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라는 1970년대에나 있을법한 해괴한 리스트가 이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획 시리즈는 사단법인 '다른내일'준비위원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별도의 책자와 영상제작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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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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