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국회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 국회성평등정책연구포럼은 '아베 담화와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참석한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베 담화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는 애당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4일 발표한 담화에서 "전장의 그늘에는 명예와 존엄에 큰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위안부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일본'이라는 주체가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누구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며, 반성과 사과는 애초에 등장하지도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철저히 멸시당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아베 총리는 '전후 70년'을 무사히 넘겼다. 2018년까지 집권할 가능성이 커진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희박하다"면서 한일 간 국장급에서 논의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아베 담화는 한국을 멸시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 가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 담화는 1930년대까지는 일본의 행위에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기존 담화가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반성했다면 아베 담화는 이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남 연구위원은 "아베 담화에 따르면 1931년 중국 대륙 침략, 1941년 태평양 전쟁은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1910년 조선의 식민지 지배는 잘못된 행위가 아닌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이 담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채운 것이다. 피해자들을 소위 '갈라치기'한 것인데 우리가 대응하기가 까다로워졌다"고 평가했다.
남 연구위원은 "아베는 담화에서 다른 국가 피해자들이 관용을 베풀어 전후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발언을 했다. 즉, 위안부의 경우 피해자가 관용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민족 수난의 상징에서 벗어나야
아베 담화 자체도 문제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사실상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사실상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독일의 전후 강제 동원 배상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구체화됐다면서 국제적 압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문제도 똑같이 전후 70년이 지난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계속 세계 각지에서 기억되고 언급되는 것은 다양한 문화외교를 통한 공공외교의 성공적 단면"이라면서 "위안부 역시 다양한 차원에서 역사를 문화 콘텐츠화하여 세계 사람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쉽게 알 수 있게 하고 접근성이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직접 하기 힘들다면 이런 역할을 하는 재단 설립 등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상구 연구위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라는 추상적인 목표가 아닌, 지난 2014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결정된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을 명확한 목표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당시 제언은 일본 정부가 군 시설로 위안소를 입안·설치하고 관리·통제했다는 점,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됐다는 점을 시인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양징자 일본군 위안부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한국 내에서 위안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대표는 "어제(19일) 수요시위 참석하면서 느낀 점인데, 어떤 분들이 (피해) 할머니들을 민족 수난의 상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풀어내는 것으로 이용하는 것 같은 발언도 있었다"면서 민족의 피해자라는 시각이 아니라, 전쟁과 식민 지배 상황 속에서 여성의 인권이 침해됐다는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계속 민족 담론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면, 일본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의 대외 정책을 위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일본 국내 여론을 조성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힘들어지는 것은 피해자 할머니"라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과 국제사회의 입장을 정확히 읽어야 이에 따른 전략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양 대표는 "일본이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일본에서는 사죄에 지쳤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면서 "일본이 제대로 사과한 발언이나 담화를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칭찬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양 대표는 또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방문 당시 언급했던 '인신매매'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미국 등 서구에서는 아베 총리의 이 발언을 국제법 위반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아베 총리가 이런 부분들을 잘 계산해서 말한 것"이라면서 국제사회에서 아베 총리의 발언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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