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사태, 결국 '빅 시스터'만 웃는다

[서리풀 논평] 감시 사회, 통제 사회를 살아내는 자세

감시 사회, 통제 사회를 살아내는 자세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사건에 놀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정원이 하는 일은 모두가 옳다는 '애국 시민'을 제외하더라도, 일반적인 반응은 분노보다는 체념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드러나지만 않았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쪽이 많다.

대통령 선거에 댓글로 개입하거나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켜 처벌을 받을 정도니 국정원에 무슨 기대가 남았을까. 이 정도 일이야 하고도 남는 기관, 개인 전화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것이야 늘 하는 일로 치부하는 것인가. 남은 방법은 내가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다시 한 번 '각자도생'의 시대.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널리 퍼진 냉소와 냉정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어디 휴대전화뿐일까, 국정원만 그럴까, 신경 써 봐야 다른 수가 있나, 하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다. 요컨대 그 많은 사고와 스캔들을 거치면서 개인 정보와 감시에 대한 감수성이 확연히 떨어졌다. 긴장과 조심에도 한계가 있는 법, 늘 불안과 안고 생활할 수는 없으니 둔감해지는 쪽이 편하다(그런 점에서 '합리적'인 반응 방식이다).

아마도 한국 안에서는 가장 많은 개인 정보를 모으고 있을 국민건강보험과 이와 관련된 진료 정보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 유출과 악용은 잊을 만하면 다시 벌어지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적다.

최근에 밝혀진 엄청난(!) 사고에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몇몇 업체가 한국 전체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4400만 명의 병원 진료, 처방 정보를 불법으로 모으고 사고팔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 : 4400만 명 환자 진료, 처방 정보 해외로 샜다) 유출된 정보에는 환자 이름과 생년월일, 병원 이름, 처방한 약품 이름 등이 들어있었다니 이보다 예민한 정보도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감기, 배탈도 매번 드러내고 싶지는 않을 터, 그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질병이라면, 혹 낙인과 차별이 동반되는 것이라면 그 정보를 여기 저기 흘리고 싶겠는가. 그러나 반응은 누가 위법을 했는지 범죄에 더 관심이 크고 개인 정보의 유출에는 무덤덤한 편이다.

이런 것을 빼더라도 개인 정보와 수집, 축적과 이를 통한 감시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신용카드, CC(폐쇄회로)TV, 국민건강보험의 진료 기록…. 수천만의 정보를 모으는 장소와 도구, 기관을 꼽자면 끝이 없다. 24시간 365일, 나를 기록하는 시스템의 외부로 나가기란 점점 더 어렵다. 말 그대로 '감시 사회'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나마 시장을 통한 감시는 탈출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신용카드를 덜 쓰고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휴대전화를 끄면 조금은 나를 들여다보는 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대신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제도화된 삶의 조건 바깥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번거롭고 어렵다.

이에 비해 국가 제도에 통합된 감시를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데이비드 라이언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어보자(<감시 사회로의 유혹>(이광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35쪽). 현대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자격 여부를 검토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등록과 개인 정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역할이 큰 복지 국가일수록 더하다.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 기구 덕분에 감시가 쉬워지는 것은 역설이다. 나아가 이제 감시는 불가피한 것 또는 '필요악'이 되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간단하지만 대표적인 예는 기초생활보호나 의료급여다. 가난한 사람이 의료급여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득과 재산, 부양하는 사람과 같은 개인 정보를 드러내야 하고, 대상자인지 아닌지 추적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권리의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국가 제도가 되면서 감시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개인 정보와 감시가 큰 스캔들이 되어야 함에도 조용한 현실, 그를 시비하는 이유는 감수성과 예민함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깨끗하면 뭘 걱정하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후진적인 현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개인의 사생활(프라이버시) 보호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그대로, 이는 세계인권선언에도 명시된 보편적 인권이라는 점만 지적한다. 개인 정보와 감시에 대한 감수성은 곧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다.

개인 정보 보호에 달린 도구적 가치 또한 가볍지 않다. 감시와 이를 위한 개인 정보의 축적, 그리고 그것이 유출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과 2차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번 진료 정보 유출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개인 정보가 보이스피싱에 활용되었는지 조사했다지 않는가. 많이 좋아졌다지만, 나도 모르게 질병 정보가 유출되어 직장에서 가정에서 문제가 되었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인권의 침해와 2차 피해에 비해 눈에 덜 띄어 소홀한 것은 거시적 측면이다. 정보 수집과 감시가 일상적인 조건과 환경이면 결국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외부의 감시자 없이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 즉 (들뢰즈가 의미하는 바) '통제 사회'가 되는 것을 걱정한다.

이대로 가면 정보가 유출되고 감시를 당해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자기 검열은 기본이다. 통제 사회는 이를 넘어 감시자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권력의 시선으로 감시하는 주체가 된다.

국민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를 예로 들어 보자. 병·의원을 너무 많이 간다고 환자들을 모니터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몇 번 가고 어디를 가서 얼마를 썼는지, 누군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아니 그걸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시각에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에 따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특별한 손해나 처벌이 없어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국가의 시책에 부응해서) 의료 이용을 '합리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제'가 모두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아동 포르노는 정보 사회가 만들어낸 현상이지만 정보 기술을 활용한 감시와 통제가 확산을 억제하는, 말하자면 양면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통제 사회는 권력의 의지가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점에서 통제 사회의 목표는 정보 기술의 성공과 실패, 효용과 부작용보다 더 높은 지점에 있다. 통제를 목표로 하면 감시와 관련된 '사고'가 꼭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감시 또는 '감시하고 있음'을 가시화함으로써 통제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데다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이 더욱 심화되는 상황은 감시와 통제 사회를 벗어나는 것을 쉽지 않게 만든다. 복고적으로는 통제 사회의 훈육과 감시를 무력하게 만드는 '벗어나기'를 상상할 수도 있다.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국가의 복지 제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급진적이긴 하나 현실적이기 어렵다는 것이 한계다.

민주주의의 강화가 그나마 현실적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민주주의란 미시적으로는 정보와 감시의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 기술적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전문성이 높다는 이유로 정보는 흔히 민주주의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예를 들어, 국민건강보험이나 병원의 의료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누가 어떻게 쓰이는지 시민들은 잘 모른다. 중요한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바도 거의 없다. 국정원과 같은 정보 기관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일차적으로 어떤 제도나 기관이든 정보 민주주의의 틈을 내고 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와 체계의 안팎에서 정보와 감시, 모니터링의 민주주의를 진단하고 비판해야 한다. 특히 '시민성'의 이름으로 전문성과 기술, 가치중립의 신화와 대결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정보 민주주의는 권력의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통제 사회 자체가 권력의 문제임을 말했지만, 정보와 감시의 목적과 과정 모두 권력의 성격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정보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할 곳에, 그리고 그것의 환경과 조건으로서 폭넓게 '일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다시 중요한 과제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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