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전쟁 끝 청와대 앞…'견마지로' 지난다

16일 박근혜-김무성·원유철 회동…사라진 수평적 당·청 관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1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다. 지난 2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선출 직후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무려 5개월 만이다. 그 사이 새누리당은 비박계 '투톱(당 대표-원내대표)' 체제로 운용됐지만, 이 아슬아슬했던 실험의 결과는 청와대로부터의 '버림'이었다.

청와대는 당·청 관계의 무게추를 다시 청 쪽으로 기울일 수 없다면, 차라리 관계를 끊어버리는 쪽을 택했었다. 혹자는 '자중지란'에 빗댔던 당·청 전쟁 끝에 유 전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하고 나서야, 박 대통령은 50일 넘게 공석이던 정무수석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제 손에 유 원내대표의 '피'를 뭍인 김무성 대표의 청와대 출입을 드디어 허락했다.

'주인 위해 최선 다 하는 개의 노력' 외친 원유철

16일 회동은 상견례 성격이라고 한다. 김 대표와 함께 14일 오전 박수로 추대된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박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는 설명이다. 뒤틀린 당·청 관계를 정상화하고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추가경정 예산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상견례'란 본래, 다음 만남이 있을 것을 전제하는 표현이다. 유 전 원내대표 취임 직후에도 상견례 성격의 신임 원내지도부와 박 대통령의 회동이 있었다. 그러나 유 전 원내대표에겐 박 대통령과 마주할 '다음'은 없었다. 이날 선출된 새 원내지도부에게 16일 회동이 정말 '상견례'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원 원내대표 등 신임 원내지도부가 이전 원내지도부만큼 청와대와 이견을 가지리라고 보는 이는 별로 없다. 당장 원 원내대표는 이날 취임 직후 "선당후사,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견마지로.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개와 말의 노력이라는 뜻이다. 원 원내대표의 이 말에서 주인을 박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라고 읽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원 원내대표는 이 외에도 "당·정·청은 삼위일체이자 한몸"이라고 했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만 대한민국이 성공하고 새누리당의 미래도 있다"고도 했다.

다시 보는 2월 10일 회동…원유철 "다 줄여도 안 되면 증세해야"

원 원내대표는 직전 유 전 원내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이었다. 어떤 면에선, 국회법 개정안 정국으로 극한으로 치달았던 당·청 갈등의 한 조각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유 원내대표의 빈자리를 채웠지만 유 전 원내대표의 상징과도 같아진 '수평적 당·청 관계'란 기조는 보이지 않는다.

원 원내대표가 정책위의장이던 시절 때인 지난 2월 10일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의 회동을 돌이켜보자. 참석자들은 50분 회동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우선 전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의 등장으로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올랐던 증세와 복지 문제에서 당과 청와대는 바로 부딪쳤다.

박 대통령은 유 전 원내대표 등을 불러들이기 전에 이미 강한 메시지를 선포해놨었다. 전날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을 향해 "증세부터 하자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며 격한 말을 쏟아냈다. 지난달 25일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버럭'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유 전 원내대표는 당시 회동에서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그대로 갈 경우 (앞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당내 의견 수렴과 여야 협상에 맡겨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제는 '견마지로'를 외치는 원 원내대표도 당시 정책위의장으로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건 다 줄인 다음에 그래도 안 되면 증세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었다.
삐꺽거린 지난 5개월, '하명'만 하려 했을 뿐…

시작부터 아슬아슬했던 당·청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엇나갔다. 청와대에선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를 재차 외친 유 전 원내대표의 4월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특히 괘씸해 했다고 전해진다. 김무성 대표는 4월 16일 중남미 순방에 앞서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거취 문제로 박 대통령과 깜짝 독대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여야가 공무원연금법 처리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던 지난 5월 15일 긴급 심야 고위 당·정·청 회의가 한 번 있긴 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청와대의 '하명'을 받는 자리 성격이 짙었다.

김 대표와 유 당시 원내대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회동 후 이들은 "5.2 여야 합의안을 존중하며,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은 국민의 부담 증가가 전제돼 국민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논의해서 결정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앞서 공무원연금 개혁 특별위원회 실무기구 차원에서 이루어진 공무원연금-국민연금 강화 연계 합의를 사실상 수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3일 후,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무산에 책임을 지고 돌연 사퇴한다.

그렇게 비어버린 정무수석 자리를 그대로 둔 채로, 당·청은 공회전만을 거듭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처리됐고, 청와대는 이에 '비토(veto·거부)'를 놨다. 그렇게 격화된 갈등의 책임은 모두 유 전 원내대표에게 씌워졌다.

당의 회동 요청에도 꿈쩍 않던 청와대 "이제는 만나주겠다"

새누리당은 애써 사태의 본질은 당·청 관계가 아니라 위헌적인 국회법 개정안을 수습하는 것이라 포장했지만, 사태의 본질은 엄연히도 수직적인 당·청 관계에 있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등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회동을 통한 사태 수습을 아무리 요청해도 청와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5개월이 지나 청와대의 마음을 움직인 건 결국 당 소속 의원들의 요청도, 국민적 비난도 아니었다. 김 대표는 제 손으로 비박계 파트너였던 유 전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를 끌어냈고, 사무총장엔 친박계 황진하 의원을, 대변인엔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몰이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이장우 의원을 앉혔다.

그리고 인제야 청와대 문이 열린다. 조윤선 전 정무수석 사임 후 50일 넘게 비어있던 정무수석 자리도 현기환 전 의원으로 채워졌다. 청와대가 정무수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14일 오전 현 수석은 김 대표와 원 정책위의장 등을 잇달아 만나 오랜만에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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