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당파의 친위 쿠데타, 장성택이 된 유승민"

[기자의 눈] 유권자들은 기억력이 좋다

풍경 1.

상식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풍경이다. 여당이 스스로 뽑은 원내대표를 내쫓자고 결정하자 일부 의원들이 박수를 쳤다고 한다. 한 의총 참석 의원은 "박수를 치다 말았다"고 하는데, 본인들도 아마 멋쩍었을 것이다. '박수 추인'이라는 조합어를 언론 지면에서 내몰고자 하는 것 같다. 이견은 있었지만, 사퇴하라는 의견이 새누리당 내 다수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6.25파동' 직후 열린 긴급 의총에서 "유승민이 사퇴하면 안 된다"고 결의했던 사람들도 유승민 사퇴를 외친 이들 중에 상당 수 포함 돼 있을 것이다.

유승민을 재신임한 그들은, 불과 2주만에 유승민을 내쫒았다. 원칙은 어디에 있고 소신은 어디에 있는가.

풍경 2.

지난 2일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최고위원들을 향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해도 너무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유승민 사퇴를 결의안 채택 방식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동아일보>는 8일자 신문에서 "원 의장이 유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당내 의원들을 설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한 당직자의 말을 전했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자마자 '원내대표 추대론'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차기 원내대표 하마평이 나온다. 음모와 정쟁이 난무하는 곳, 새누리당이다. 그 음모론의 진원지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조선시대 궁궐 암투를 보는 것 같다. 최근 극장가에 '사극 열풍'이 부는 것도 이해가 될 법 하다. 올해도 사극은 개봉된다.

▲노회찬 전 의원 트위터 갈무리

풍경 3.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8일, SNS에 사진을 하나 올렸다. 그리고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 채택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총회 사진(예상)"이라는 글을 달았다. 북한 장성택이 군복을 입은 인민보안원 두 명에게 끌려나가는 사진이었다. 마침 '원조 친박'에서 '탈박'으로 신세가 변한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유승민 사퇴 여부를 두고) 표결을 하지 않는 이유는 지도부나 권력자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국회의원들의 소신 투표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라며 "'박수로 (사퇴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킵시다, 이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이의 있는 사람 없죠? 하는 식은 북한식 밖에 없다"고 했다.

닮는 것 같다. 국정원이 북한군 2인자 현정택을 숙청했다고 사실상 공개 보고한 것이 지난 5월 13일이다. 남한에서도 '숙청'은 이뤄지고 있다. 정치적 반대파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직에서 끌어내려 힘을 쓸 수 없도록 하는 게 바로 '숙청'의 정치적 의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개인 정보가 털려 언론에 사생활과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면서 숙청당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유도 모른채 숙청당했다. '순망치한', 다음은 누구인가?

풍경 4.

언론에 "왕당파"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2월 여당 원내사령탑에 오르면서 새누리당 비주류의 새 얼굴로 급부상한 유승민 원내대표의 전격 퇴진은 향후 여권 내 권력지도를 새롭게 쓰는 일대 분기점이 될 전망"이라며 "특히 '왕당파'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는 비주류인 비박(비박근혜)계가 장악했던 지도체제를 흔들어 균열을 일으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고 했다.

전근대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정치판이다. 아, 근대 언어도 있다. '친위 쿠데타'라는 단어를 일부 언론은 선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라는 것이다. 너무 심한 표현 아니냐는 지적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만큼 현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 없다.

그리고 전망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나면서 새누리당은 정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됐다. 계산서는 곧 날아올 것이다.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총선 전쟁은 시작된다.

물론 변수는 많다. 특히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벌써부터 '사정 바람'이 불고 있다. 검찰이 칼을 갈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야당의 중진 의원은 구체적인 혐의 내용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유승민 몰아내기 집단 행동' 이면에 "검찰에 약점 잡힌 의원들"이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누군가 검찰을 이용해 정치권을 주무르고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도 남아 있다. 언제나 그랬듯 '유승민 정국'은 다른 이슈로 금새 덮일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기억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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