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루 만에 "강제 노동 아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하자마자 딴소리…압박 외에 마땅한 대응책 없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과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해당 시설에서 강제 노역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외무상은 해당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된 지난 5일, 사토 구니(佐藤地)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조선인 노동자 강제 노역을 언급한 것에 대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기자들에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앞서 지난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 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사토 대사가 "스스로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험한 환경에서 종사한 많은 조선(한)반도 출신자들이 있었다"고 발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통신이 보도한 사토 대사의 발언과 한국 정부가 내놓은 비공식 번역문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정부는 사토 대사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사토 대사의 발언과는 달리 '강제'라는 단어가 부각된 것이다.

이에 한일 간 강제 노역 문제를 놓고 해석 차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토 대사가 발언한 영어 원문에는 강제 노역을 'forced to work'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한국 정부는 '강제로 일했다'는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일하게 됐다' 정도의 수동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기시다 외무상은 강제 노역자들이 피해 배상 문제를 꺼내는 것에 대해 "조선(한)반도 출신자들의 징용 문제를 포함해 양국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해결 완료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강제성 문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전략적 방침으로 읽힌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이 '강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이 들어갔기 때문에 누가 봐도 강제 노역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정부는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제 노역을 인정한 것에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나자마자 강제 노역 사실을 사실상 부인함에 따라 앞으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 사항도 이행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ICOMOS는 해당 시설들의 전체 역사를 설명으로 붙여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으며, 정부는 이에 따라 강제 노역 문제가 이 설명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일본 정부가 애초부터 ICOMOS의 권고를 강제 노역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외무상의 발언과 일본 내 보도 등을 감안했을 때, 2017년까지 일본 정부가 ICOMOS의 권고를 수용해 강제 노역 피해자를 기리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만들거나 이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권고 이행 시한인 2017년 12월까지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되는 것도 아니다. 또 일본에 권고 사항을 이행하라고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이 '강제 노역'에 대해 일말의 책임은커녕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달콤한 열매만 따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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