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인 강제노역' 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희생자 기리는 '정보센터' 비롯한 후속조치 시행키로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은 시설 중 일부에서 조선인을 상대로 한 강제 노역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후속 조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 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일본 측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은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 전략'에 포함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가 언급한 '해석 전략'은 민간기구이자 WHC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 사항을 의미한다. ICOMOS는 지난달 일본이 신청한 총 23개 산업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유네스코에 권고하면서 이 시설들의 전체 역사를 설명으로 붙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군함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이 강제 노동을 했던 해저 탄광이 있으며 1974년 폐광돼 현재는 무인도다. ⓒ연합뉴스

ICOMOS의 이 권고에 대해 한국 정부는 위 시설 중 나가사키(長崎) 조선소를 포함해 총 7개 시설에서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다는 점을 적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 권고가 강제 노역의 역사를 첨부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반발했다. 이에 양국 간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수 차례 협의가 있었고 지난 6월 21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 장관 회담에서 큰 틀에서의 합의를 이룬 바 있다.

일본 측의 이날 발표문은 세계유산위원회 토의 요록에 포함돼 공식 기록으로 남게 되며, 등재 결정문에는 일본의 이 발표를 주목한다는 주석이 추가된다. 또 일본은 2017년 12월까지 세계유산위원회에 자신들의 취한 조치에 대한 경과 보고서(pregress report)를 제출해야 하며 이 보고서는 2018년 42차 WHC 회의에서 검토하게 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번 등재 결정과 관련해 5일 밤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우리의 원칙과 입장을 관철시켰으며, 그 과정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 간 극한 대립을 피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일본 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막지 못한 이유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 중 일부에서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내에서는 이 시설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 역사를 살펴봤을 때 등재 자체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은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그 전에 민간기구이자 WHC의 자문기구인 ICOMOS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ICOMOS는 각국이 신청한 문화재를 심사해 등재, 등재 불가, 추가자료 요구 등의 결정을 내린다.

ICOMOS의 결정이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구가 전문가들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100% 독립성이 보장된 민간기구이기 때문에 이들의 결정이 WHC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ICOMOS의 등재 권고가 있었음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경우는 1건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에 이미 지난 5월 ICOMOS가 일본 산업시설에 대한 등재를 WHC에 권고한 상황에서 이를 철회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대두됐다. 등재를 막는 것보다 해당 시설에서 강제 노역 등 반인륜적인 행위가 벌어진 측면을 정확하게 명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범죄가 자행된 것을 강조하고,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차원이었다.

결국 한일 양국은 등재에 합의하는 조건으로 이 시설들에서 강제 노역이 있었다는 발표와 더불어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진행한다는 합의를 마련했다. 이 시설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가 된 만큼, 조선인 강제 노역이 제대로 기록될 수 있도록 일본의 후속 조치 이행에 대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철저한 감시 역시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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