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엑소 팬들의 고백 "음방 1위 필요 없어요"

[다시, 순위제 폐지를 말하다·上] 아이돌 팬 좌담회·①

가요계는 6월을 기다렸다. 3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빅뱅, 팀원 이탈 등 내홍에도 '대세돌' 위상을 지키는 엑소가 동시에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볼만한 음악 축제를 기대했던 음악 팬들은 그러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음악방송마다 부정 투표 등 논란이 일며 팬덤 간, 방송사와 각 팬덤이 충돌했다. 결국 며칠에 걸쳐 '음방 논란' 기사가 포털 사이트 연예면을 도배했다. 축제의 장은 나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이미 아수라장이 됐다.

각 팬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요는 음악방송 순위제의 형평성,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럴 거면 순위제를 폐지하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음악방송은 불공정성과 더불어 장르 획일화 등 지적을 받으며 몇 번이고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현재는 지상파, 케이블 음악방송의 절대 다수가 순위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겪으며 음악 팬들은 다시금 묻고 있다. 음악방송의 순위제는 그것이 존재하는 한, 논란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숙명에 갇혀 있는 것 아니냐고. 과연 그것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고.


▲지상파 3사 음악 순위 프로그램 로고. ⓒ프레시안(서어리)

순위제가 음악방송을 '아이돌 방송'이 되도록 부추겼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래서 일반 대중은 지금의 음악방송이 '아이돌 팬들에게만 유익한 방송'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돌 팬들 또한 순위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그렇다면 순위제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은 더욱 궁해질 수밖에 없다.

정상급 아이돌 가수 팬을 자처하는 여섯 명을 한 자리에 불렀다. 답변은 똑같았다. "순위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 그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해 거머쥔 상이 '진흙탕 싸움에서 받는 더러운 상'이라고 표현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종일 음원 스트리밍을 재생하고, 수십 장씩 음반을 살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이돌 팬인 동시에 시청자이자 적극적인 문화 향유자인 그들에게서 음악방송 순위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좌담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좌담 참석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름은 가명으로 싣는다. 각기 사용된 가명은 각 가수 팬클럽 혹은 팬카페 이름이며, 빅뱅 팬의 경우 참석자가 두 명인 관계로 편의상 한 명은 'VIP', 다른 한 명은 '븨아피'로 한다.

유애나 : 서울 사는 40대 남자 직장인으로, 이른바 '아이유 삼촌 팬'. 2009년 아이유가 '미아'로 데뷔하던 시절부터 좋아함. 본격적인 팬질은 'Boo'와 '마쉬멜로우' 때부터. 리메이크 앨범 이후로 지금까지는 약간 '휴덕' 상태.

VIP : 서울 사는 고2 학생으로 'VIP' 회원. 빅뱅이 처음 브라운관에 나올 때부터 좋아했고, '음방(음악방송)'이나 콘서트에 따라다닌 건 올 초부터.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지드래곤(G-dragon)’.

븨아피 : 서울 거주하는 대학생.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7년 빅뱅이 일본에서 처음 데뷔할 때 '입덕’한 'VIP’ 회원. 초등학교 때부터 음방 다녔고, 며칠 전에는 월드 투어 홍콩 콘서트에 다녀올 정도로 활동 범위가 넓다. 최애는 '승리’, 차애(두 번째로 좋아하는 멤버)는 '대성'.

샤월&소원 : 서울 사는 20대 여성 직장인. 본진은 소녀시대이나, 최근엔 샤이니에 푹 빠짐. 무려 20년 전 H.O.T 때 팬질을 시작한 전형적인 '스엠덕(에스엠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덕후)'. 소녀시대는 데뷔 때 입덕했고, 샤이니는 데뷔할 때는 안 좋아했지만 'Lucifer' 라이브를 듣고 소름이 돋은 이후로 '라이트팬'이 되었다가 최근 깊이 파게 됨. 소녀시대에서 최애와 차애는 태연, 윤아. 샤이니에서 최애와 차애는 태민, 온유.

엑소엘 : 파주 문산 사는 고3 수험생. 'EXO-L' 가입. 2012년 엑소 'MAMA' 데뷔 전 100일 티저(홍보 영상) 프로모션 시절 입덕한 원년 팬. 작년 첫 콘서트 이후로 격하게 빠짐. 최애 첸, 차애 레이.

뷰티 : 역시나 파주 문산 사는 고3 수험생이자 'B2UTY' 회원. 비스트가 2010년 '숨'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입덕. 최애는 손동운. 고1 'Shadow' 때부터 공방, 콘서트 뜀.

ⓒ프레시안 안종길 조합원

"<엠카>부터 시작된 사전투표 논란, <인가>가 기름 부었다"

프레시안 : 흔쾌히 좌담에 응해주어 고맙다. 이번 좌담의 계기가 된 'SBS <인기가요> 사태'부터 얘기해보자. 당시 1위 후보였던 빅뱅과 엑소 팬덤 양쪽 모두 항의가 엄청났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달라.

VIP : 왜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팬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있었다. 먼저 사전투표 공정성 시비가 붙었다. 빅뱅 신곡 '뱅뱅뱅' 음원이 공개된 후로도 당시 인기가요 사전투표 앱에서는 '뱅뱅뱅' 대신 'BAE BAE'가 올라와 있어서 팬들은 다 'BAE BAE'에 투표했다. 그러고서 이틀 있다가 1위 후보곡이 '뱅뱅뱅'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투표는 1인당 하루 한 표밖에 안 되니까 이미 'BAE BAE'에 한 투표는 전부 무효처리가 됐다. <인가> 제작진은 원래 그날이 1위 후보곡이 바뀌는 날이니까, 이전 투표가 무효가 되는 게 맞다고 하더라.

이후,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엑소 쪽 투표버튼이 사라져 7시간 동안 표가 누락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인가> 제작진이 7시간 동안 투표를 못 한 엑소 팬이 이메일을 보낼 경우 반영해주겠다고 했다. 빅뱅 팬 입장에서는 이게 형평성에 어긋난 거 아니냐고 항의를 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러다가 방송 당일 <인가> 제작진이 메르스 핑계를 대며 생방송 대신 사전 녹화를 하겠다고 했고, 따라서 문자투표도 없다고 일방 통보하더니, 1위 발표도 다음날로 미뤘다. 아무래도 엑소가 팬덤이 세서 문자투표가 강하니까 이날 문자투표를 안 해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메르스랑 문자투표랑 뭔 상관이냐'는 얘기도 나왔다. 어쨌거나 각 팬덤마다 다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엑소엘 : 유독 그 주 음방마다 투표에 문제가 있었다. <인가> 3일 전에 하는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도 사전투표 논란이 있었다. 한국, 일본, 글로벌로 나뉘어 투표를 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창이 닫히는데, 일본 사전투표 페이지가 안 닫혀서 일부 팬들이 아이피를 우회해서 투표를 계속했던 일이 있었다. 결국 엑소, 빅뱅 양쪽 다 불법투표가 이뤄진 게 확인돼 무효 처리됐는데, 양쪽 다 문제가 있었다고 밝혀지기 전까지 엑소 팬들과 빅뱅 팬들이 서로 조작이 아니냐고 공격하기도 했다. 워낙 서로 예민해있던 상황에서, <인가> 일까지 일어났으니, 기름에 불을 부은 격이었다.

▲<인기가요> 사태에 대한 네티즌 반응.

"음방 1등? 진흙탕 싸움에서 받는 더러운 상"

프레시안 : 결국 양쪽 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입장인 것 같다.

븨아피 : 그렇다. 순위를 매기기로 했으면 공정하게 해야지, 이렇게 하면 누가 그 결과를 믿나. 그리고 이런 일이 이번만 있는 게 아니다. 빅뱅이나 엑소뿐 아니라 대다수의 팬들이 겪어왔던 일들이다.

엑소엘 : 물론 싸우는 사람들은 팬덤 안에서도 극히 일부지만, 다들 형평성 문제에 예민한 건 사실이다.

프레시안 : 현재 각 음방 순위 제도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라고 보나.

븨아피 : 문자투표 같은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투표는 일반 시청자보다 아이돌 팬처럼 관심 있는 일부만 하지 않나. 우리나라 대통령 뽑는 것처럼 국민 다수가 투표에 참여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소수가 이메일 계정 여러 개 만들어서 투표를 한다. 어떤 노래가 좋은지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팬덤의 세기를 확인하는 투표인 셈이다.

뷰티 : 집계 방식이 신뢰가 안 간다. 일단 사전투표 같은 건 방송사에서 투명하게 밝히지 않으니 우리가 결과를 확인해 볼 방도가 없다. 또 <뮤직뱅크>의 경우 방송출연 점수가 따로 있다. 방송사나 피디가 마음에 든다며 누구한테 점수를 몰아줄지 어떻게 아나. 팬들은 '정신 승리'하는 수밖에 없다.

VIP : 애초에 순위제 자체가 문제다. 굳이 1위를 가려내는 게 이상하다. 음악에 1,2위가 어디 있나. 그리고 아이돌 말고도 다른 가수의 좋은 곡들도 많은데, 음방 1위는 거의 아이돌이다. 케이윌이나 김동률, 나얼 같은 가수는 음원 차트에선 1위하는데도 음방에선 1위를 못 한다. 그러니 1위를 해도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

프레시안 : 순위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인가.

VIP : 이번 <인가> 일이 있고 나서, 어차피 음방은 투표도 공정하지도 않으니 상을 줘도 팬덤 싸움으로 주는 상이라는 걸 더욱 실감했다. 1등 받아봐야 진흙탕 싸움에서 받는 더러운 상이란 얘기다. 1위, 이제 그런 건 의미 없다. 그냥 <유희열의 스케치북>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음방들 볼 때마다 그 생각한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엑소엘 : 동의한다.

유애나 : 오래전에 기획사와 방송사 간 유착 문제도 드러나고, 기획사의 음반 사재기 문제도 제기되면서 음방이 폐지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까지 문제가 생기는 건 다 순위제 때문 아닌가. 지금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 위주의 프로그램이 계속된다면, 그런 유착 관계 같은 폐습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좌담에 참석한 빅뱅 팬들. ⓒ프레시안 안종길 조합원)

"외모도 대학도 서열화, 음악도 줄 세우기?"

프레시안 : 의외다. 아이돌 팬 입장에서는 순위제가 있어야 더 유리하고 좋지 않나.

뷰티 : 우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 또 오빠들 기 세워주는 거니까 좋긴 하다. 그러나 그건 1위를 했을 때 얘기다. 1위를 하기까지 솔직히 피곤한 일들이 많다.

븨아피 : 방송사가 시청률 올리자고 팬들 싸움 붙이는 거밖에 더 되나 싶다. 음악방송이 축구 경기는 아니지 않나. 빅뱅이랑 엑소가 원래 경쟁 구도인 게 아니다. 각자 알아서 음반을 내는데 하필 시기가 겹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음방에서는 굳이 경쟁을 붙인다.

VIP : 음방에서 늘 대결 구도로 편집을 하는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무대 두세 개 끝날 때마다 '빅뱅 대 엑소' 이런 자막 넣은 영상을 띄우고 또 띄운다. <엠카>는 심지어 컴백 무대 소개라면서 빅뱅과 엑소 멤버 얼굴을 나란히 붙여놔서 '외모 비하' 논란까지 있었다. 혈압 오른다.

▲<엠카운트다운> 영상 갈무리

샤월&소원 : 순위, 없어도 된다. 음악을 점수화시키는 게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1위 안 하는 가수는 너무 배제되고 그 가수의 음악도 가치 절하돼 평가받는다. 소녀시대 저번 앨범이 팬들이나 다른 대중들한테서 완성도 높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음방 성적은 그 전 앨범보다 좋지 않았다. 그랬더니 대중의 반응은 '소시 망했네'였다. 샤이니도 이번 앨범이 진짜 좋은데, 빅뱅-엑소 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 됐다.(웃음)

유애나 : 다른 나라 사람들은 '밥 딜런이 빌보드 1위 몇 번 했다' 이런 얘기 안 하지 않나. 음악을 사랑하는 데 순위가 대체 왜 필요하나. 얼마나 1위를 따졌으면, 가수별로 첫 1위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도 있더라. 외모도 서열화하고, 대학도 서열화하고. 다 1등만 찾는다. 문제다.


▲좌담에 참석한 아이유 팬. ⓒ프레시안 안종길 조합원

"방송사가 가요계 걱정? 그럴 자격 없다"

프레시안 :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순위제나 경쟁 구도는 시청률을 위한 장치인데, 시청자들에게도 흥미와 긴장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븨아피 : 물론 순위를 통해서 새 음반에 대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고, 보는 사람도 흥미가 생길 수는 있다. 그런데 음악 프로인데 정작 음악보다 다른 게 더 크니 문제인 거다.

뷰티 : 팬들 상대로 장사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방송 보고 있으면 문자투표 중간 집계 결과 같은 걸 알려준다.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지고 있으면 속상해서 자기 휴대폰, 부모님 휴대폰, 친구 휴대폰 다 동원해서 투표하게 된다. 문자투표 비용이 100원, 200원이지만, 모이면 큰돈이지 않나. 물론 그 돈 벌려고만 하는 건 아닐 테지만 방송사는 문자투표를 통한 금전적 이익을 보기 위해서도 투표를 실시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과거 순위제가 폐지되고 얼마 후 각 방송사들이 음악시장의 활성화를 이유로 순위제를 부활시켰다. 순위제가 있어야 음반 시장, 나아가 가요계 전반이 살아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유애나 :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부터 방송사들이 음악 시장을 생각했나. 오히려 <음악여행 라라라>나 <초콜릿> 같은 좋은 음악방송을 줄이고 잘라낸 건 방송사 아닌가. 그러면서 음반 시장을 걱정하는 건 상당한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뷰티 : 음반 시장을 왜 방송사가 걱정하나. 순위 정하든 아니든 어차피 팬들은 알아서 음반은 살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왜 부활시켰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다음에 계속. ☞관련 기사 : "가수 욕 먹을까 봐 음원 총공에 반복 스밍, 힘들어요")


▲좌담회 모습. ⓒ프레시안 안종길 조합원


(사진은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안종길 조합원이 찍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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