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나가수·검열논란…다 아이돌 때문이야!

[2011 대중음악 결산①] 아이돌 팝의 해외 진출이 남긴 이야기들

올해 가요계는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전환기로 기록될 만했다.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해외에 뻗어가는 한해였으나, 이 과정에서 취약한 기반도 드러났다.

아이돌은 이제 한류의 첨병이 돼 아시아를 완전정복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아이돌 팝이 장악한 대중음악의 부실한 체질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입증됐다. 대중음악 검열 논란이 다시금 일어난 점은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어두운 일면을 재확인케 했다.

다양한 키워드를 쏟아냈던 올해 대중음악계를 두 차례에 걸쳐 되돌아봤다.

코리아 인베이전…?

아이돌 음악계가 올해처럼 이야기를 양산한 때도 없을 것이다. 먼저 한류의 실체는 어느 정도 확인됐다. 소녀시대와 빅뱅이 음악전문채널 MTV에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카라는 오리콘 차트를 점령했다.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 주류가 된 것은 여러 자료를 봐도 분명한 사실이다.

해외 음악전문지도 이들을 조명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음악 전문지 <스핀(SPIN)>은 '스핀의 2011 최고의 노래 20선'의 9위에 현아의 <버블 팝>을 꼽았다. 비록 (대형 시상식이 아니라) 잡지가 선정한 순위라곤 하나, 이 기록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TV 온 더 라디오, 릴 웨인 등 해외 슈퍼스타들과 한국 대중음악인이 같은 대열에서 평론계에 얻은 성과로 거론된 거의 유일한 지표일 것이다.

빌보드차트에도 한국 스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더걸스는 지난 2009년 10월 <노바디>로 빌보드의 메인 차트인 <Hot 100> 76위에 이름을 올렸고, 보아는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 127위까지 오른 바 있다. 이후 빌보드는 한국 음악시장을 고려해 <빌보드 K-팝 차트>를 신설했다.

불편한 진실도 있다. 한국 정부까지 한류 열풍에 편승한 것을 두고 유럽의 주요언론은 한국의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보도를 냈다. 아이돌의 유럽진출 관련 기사가 기획사의 '기획'에 따른 것이었음이 밝혀져 씁쓸한 뒷맛을 자아냈다. 국내 언론은 아이돌이 오른 각종 차트를 마치 빌보트 싱글차트, 앨범차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지역순위에 불과하다.

빌보드차트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트로 구분돼 있으며, 한국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영향력 있는' 차트란 <Hot 100>차트와 <빌보드 200>이다. 슈퍼주니어가 오른 <월드앨범> 차트나 엠블랙이 오른 <빌보드 재팬> 등의 차트는 국가별 세부집계 차트일 뿐이다. 심지어 빌보드는 코미디 앨범, 아동용 앨범 차트 등도 모두 세분해 집계한다. 이 차트에 올랐다고 '세계 정복'이나 'XX류'라는 표현을 하진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주요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를 한류의 세계정복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원더걸스와 보아의 성적도 과거의 일이다. 아직은 한국의 아이돌 팝이 영미권의 팝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보긴 힘들다. 라틴 팝은 이미 여러 슈퍼스타들에 의해 그래미까지 휩쓴 바 있지만, 그렇다고 라틴 팝이 영미권의 팝과 동일한 위치에서 설명되진 않는다.

영미권 주류 음악계에서 한국 대중음악이 차지하는 지위는 '지역의 특이한 음악' 내지 '새로운 물결의 일부'로 이해하는 게 더 타당하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칼럼이 음악전문지 <피치포크>에 실린 바 있다.

지난 11월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듀오 엘리트 짐내스틱스(Elite Gymnastics)의 제임스 브룩스는 <피치포크>에 기고한 칼럼에서 자신이 K-팝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히고, K-팝의 세계진출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로 유튜브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K-팝이 영미권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같이 미국 주류음악을 공격할 새로운 물결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흔히 음악적 비타협성으로 상징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이 투애니원, 애프터스쿨, 빅뱅 등의 K-팝 뮤지션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주류'의 위치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아티스트의 창작력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성에 기댄 K-팝의 현주소와 기묘하게 대비된다. 결국 종합해 보면, 아시아권을 넘어선 유럽, 북미에서는 K-팝을 레이디 가가와 경쟁하는 주류음악의 하나로 보기 보다, 일본, 라틴, 동남아시아 음악처럼 특별한 취향의 하나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내적으로는 아이돌 음악인들의 올해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아 보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 열풍에 지친 대중의 목소리가 커진 현상이 이를 반영한다. 평론계에서도 올해 아이돌 음악은 지난해만큼 큰 호평을 얻지 못했다(이미 지난해부터 아이돌 신의 음악적 성과가 점차 나빠지리라는 예상이 일부 평론가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들과 네티즌 심사위원단이 공동 평가하는 네이버 '오늘의 뮤직' 주중 집계에서 박재범, GD&TOP 정도를 제외하면 올해 나온 대부분의 아이돌 팝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과거 브라운 아이드 걸스, 미스에이, 소녀시대 등이 심사위원단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과 대비된다.

이는 결국 음악적 소양과 고민이 탄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대부분 아이돌 음악인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점차 외화내빈 현상을 보이려하는 올해 아이돌 음악신의 현주소를 볼 때, 내년은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미국 음악시장 개척을 마치 국가적 목표인 양 판단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열망이 일그러진 콤플렉스의 발현이 아닌지도 냉정히 따져 볼 때다.

▲<스핀>이 연말 기획으로 꼽은 결산에서 올해의 노래 9위를 차지한 현아. 1980년대에 출범한 <스핀>은 <롤링 스톤>으로 대변되는 주류 음악에 대항하는 언더그라운드의 새물결을 상징하며 급속히 부상했다. ⓒ<스핀> 홈페이지에서 캡처

나는 가수인가

<나는 가수다>가 설명한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예능 프로그램의 코너명이 모든 걸 얘기한다. 아이돌 음악에 대한 반감은 이 프로그램을 타고 강하게 일어났다. 곧바로 대중은 아이돌을 콕 지목해 '나는 가수일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희화화했다.

그리고 열풍이 일었다. 원래도 스타였던 이들이 새롭게 부각됐다. 보컬의 중요성이 거론되고, 연주의 맛을 사람들이 느끼게 됐고, 중장년층 시장이 새삼 인식됐다.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노래가 화제가 됐고, 아예 밴드음악을 심사하는 <톱 밴드>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임재범, 이소라 등의 뮤지션이 하차한 후 <나가수>가 만든 혁명적 기운에 대한 피로감이 커졌다. 이제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은 지르기만 하는 보컬에 지쳤고, '더 큰 인물'을 원한 대중은 (기대에 비해) 이름값 떨어지는 가수들에 실망했다. 어느새 <나가수>는 빈약한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투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해버렸다.

참혹한 현실은 보다 근본주의적인 입장에서도 설명된다. 백만 장의 세일즈를 자랑하는 가수를 보유했던 한국 가요계가 어느새 예능 콘텐츠에 기대야 하는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나가수>가 일깨웠다. 상당수 음악인들이 노골적으로 <나가수>에 대한 비판을 내뱉은 까닭이다.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보낸 이들은 김건모가 손을 떠는 모습에, 박정현이 무명 가수 취급당하는 현실에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뒤집어 보면 <톱밴드>가 (비록 저조한 시청률이긴 하지만) 신선한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나가수>의 자극성이 떨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나가수> 이후 '과연 대중은 좋은 음악을 가려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었고 '고음을 지르는 게 좋은 노래냐'는 반문이 잇따랐다. 아이돌의 오토튠과 기획성에 대한 반발이 연주와 라이브 무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획일화된 '한국식 정서'에 대한 반발이 <나가수>를 통해 다시 나오는 상황이다.

그 해답은 제작진도, 대중도 모른다. 하드 록에서 턴테이블리즘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토양과 그에 걸맞은 역사를 자랑하는 영미권 음악신이 한국 대중음악의 해법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은 걸어온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대중은 <나가수>의 다음 출연자가 누구일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현재까지 주류 중심의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비주류까지 아우르는 유일한 프로그램은 <나가수>가 유일하다. <나가수>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내년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한국 대중음악의 내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가수>는 한국 대중음악이 처한 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프로그램이다. ⓒMBC <나는 가수다> 화면 캡처

부활한 검열 잣대

대중음악 검열의 역사는 아픈 한국 현대사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신중현의 대마초 파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검열사는 군부독재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에 따르면 1975년 독재 정부가 대중가요 재심사를 실시해 그 한 해 동안만 223곡이 금지됐다. 민주화 이후 자유를 듬뿍 맛보고 자라난 젊은 세대는 현아의 (노래도 아닌) 춤 논란과 경상도 방언과 일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방송사의 검열 잣대에 분노 이전에 황당한 감정을 드러냈다.

지난 8월 방송 3사는 MC메타와 DJ렉스의 합작앨범 [엠시와 디제이] 수록곡 대부분을 방송불가 판정했다. 특히 경상도 방언으로 모든 랩을 만들어 돈을 좇는 음악관계자를 비판한 <무까끼하이>에 대해 KBS는 '일본어식 표현'이라는 이유로, MBC와 SBS는 비속어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방송에 부적합한 곡이라고 판정했다.

현아의 <버블 팝> 안무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데 더해 2PM의 <Hands Up>, 10cm의 <아메리카노>,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등이 모두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사전심의 과정에서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심의 기준의 자의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고, 청소년의 판단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JYJ의 신곡 <삐에로>와 문화예술을알리는소리가 발매한 <대한민국을 노래한다> 등이 KBS 가요심의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은 객관성을 상실한 자의적인 판단"이라며 "최근 3년간 부적격 사유를 분석한 결과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자의적이고 모호한 사유로 인한 부적격 판정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선 후 방송사 심의가 보다 엄격해졌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지난 2008년 이후 청소년 유해 매체 판정 사례는 갑자기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에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동방신기의 <주문-미로틱>의 가사가 논란이 됐고, 2009년에는 100곡이 넘는 노래가 청소년 유해 매체로 판정됐다. "국회부터 검열하라"는 농담 섞인 비판이 나온 까닭이다.

대중음악 검열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의 '학부모 음악 조사 센터(PMRC)' 설립이 될 것이다. 부시에 맞선 진보적 대통령으로 알려진 앨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설립을 주도했다는 점도 이야깃거리지만, 이 단체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것은 물론, 정치적 잣대로 대중음악을 재단한 악명을 떨쳤다는 점도 문제다. PMRC 출범 이후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하던 과격파 힙합 음악인들이 지하로 사라졌고 '청소년 유해'를 이유로 헤비메탈은 (그 유치한) '악마의 노래'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의 대중음악 검열이 이 정도로 우스워지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악몽을 떠올리게 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소년을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빈축을 산 정부의 행동 하나하나는, 대중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시선을 새삼 대중이 느끼게끔 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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