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중국-북한 적으로 돌리는 미래 원하나?

[정욱식 칼럼] 한미일 동맹 강화, 동북아 평화에 기여? '빛 좋은 개살구'

"올해를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과 공영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큰 장애 요소인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한국과 일본의 협력 강화,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중요한 이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

"우리는 한일 양국이 긍정적인 정신으로 50주년을 기리려는 노력을 환영한다. 우리는 역내 국가들의 강력하고 건설적인 관계가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고 그들의 이익은 물론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믿는다" (미국 국무부)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이해 한미일 세 나라가 내놓은 입장이다. 온도 차이가 있고 과거사 청산 수위 및 방식에 대한 이견은 남아 있지만, '미래로 가자'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일관계를 뒤에서 거중조정(居中調整, 국제분쟁을 국제기구나 국가 또는 개인 등 제3자의 권고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하면서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는 미국의 입장이 강하게 투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 뒤로 한일기본조약 비준시 사용된 병풍이 서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중요한 이웃이다. 그래서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은 양국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여기엔 대전제가 있다. '두 이웃이 친해지기 위해 다른 이웃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강력하게 희망해온 한일관계 개선은 한미일 3각 동맹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을 '공동의 주적'으로, 중국을 '공동의 잠재적인 적'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이는 한미일 협력 강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세 나라의 비전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5년과 2015년

50년 전 한일협정은 소련-중국-북한의 북방 3각 동맹에 대응해 한미일 남방 3각 동맹을 구축하려고 했던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한일협정 체결 이전부터 소련과 중국은 서로를 동맹이 아니라 적으로 보고 있었고, 북한은 '등거리 외교'로 중·소 분쟁을 이용하려고 했었다. 한일협정이 겨냥한 북방 3각 동맹은 적어도 그 시기엔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한일협정 체결 이후 한미일 3각 동맹 추진력이 크게 악화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오늘날엔 전략적 환경이 크게 달라져 있다. 미국의 주도 하에 한미일 3각 동맹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점은 50년 전과 유사하다. 그러나 50년 전에 중소 관계가 적대적이었다면, 오늘날 중·러 관계는 '준동맹'로까지 격상되고 있다. 이는 나토(NATO)의 동진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대한 중·러 양국의 맞대응의 성격이 짙다. 50년 전에 비해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궁핍해졌지만, 핵과 미사일이라는 전략 무기를 손에 넣고 있는 점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한미일 3각 동맹이 추진될수록,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선 '완충 지대'로서의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는 속성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난 50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북방 3각 동맹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아시아에서 신냉전의 출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에겐 한반도 분단과 동아시아 분단이라는 '이중 분단'의 질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관련 기사 : 한미일 3각 동맹, '이중 분단' 고착 위험 크다)

진짜 비전을 갖고 한일정상회담에 임하라

이제 관심의 초점은 한일정상회담 성사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일제 패망 70주년 연설에서 고노 담화 및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전망으로는 두 담화를 존중한다는 '간접 화법' 수준에서 '퉁'치고 넘어갈 공산이 커 보인다.

우려되는 점은 한일정상회담이 과거사 청산은 미봉책으로 끝나고 위험천만한 미래 비전에 대해서는 양국이 공유하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사 청산 부담과 미래의 전략적 불안을 뒷 세대에게 넘긴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지적을 기우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짜 미래 지향적인 의제를 가지고 한일정상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혀 새로운 시도도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초반 미국 및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탈냉전 프로세스에 두 나라의 지지와 협력, 그리고 동참을 요구했다. 미국과 일본의 대북 관계 개선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천명했다. 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토대였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관계 개선과 북·일 관계 개선을 견인했다.

비록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장과 북한의 핵 개발 재개로 그 빛이 발했지만, 이를 완성해야 할 책임은 후임 정부들에게 있다. 더구나 '이중 분단'이 고착화되고 있는 오늘날, 이를 시도해야 할 가치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한미일 3각 동맹이 아니라 한미일 평화외교 공조를 도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연기된 한미정상회담과 곧 있을 것으로 보이는 한일정상회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 <김대중 자서전>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피스메이커>가 바로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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