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주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돈은?

[함께 사는 돈 탐방기] 기본소득, 빈곤의 해결책일까

<프레시안>과 녹색당,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함께 사는 돈 탐방기'라는 공동기획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각자 생존'의 시대라고 합니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수준인 48.1%에 달하고, 체감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도 이런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이 기획에서는 우리 사회의 소득 실태에 대해 진단하고,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각자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관련기사 : [함께 사는 돈 탐방기]"청년들, 중동 가라?"…살벌한 대한민국)

나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바로가기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다닌 지도 꽤 되었다.

기본소득을 얘기하면, 부정적인 반응 중 하나는 이미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는데 왜 이런 제도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초생활수급자 당사자들은 기본소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했다.

주민 다수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로 생활하고 있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기본소득은 과연 지금의 기초생활수급제도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만남 당일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와 모퉁이를 돌자 빌딩 맞은편으로 동네 골목이 나타났다. 약속장소인 '동자동 사랑방'은 그 골목 어귀에 있었다. 뜨내기 티를 내고 서 있으려니 일면식도 없는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의 우건일 이사장이 먼저 알아보고는 동자동 사랑방의 공동주방 '식도락'으로 안내했다. '식도락'은 주민들이 모여 반찬 나눔도 하고 문화 활동, 제작 활동도 하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밝고 깨끗한 부엌과 큰 식탁이 있었다. 벽면은 일정과 책들로 빼곡했다. 자리를 찾은 주민분들은 거의 장년층 이상의 남성이었다. 모두 대화하기 좋게 둘러앉았다.

인간다운 생활은 수혜가 아닌 권리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라는 기본소득 강연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강연 내용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노인빈곤율은 48.1%에 달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지급액 수준이 낮고 부양의무제 등 까다로운 조건들이 병행되어 실질적인 수요를 채우기에는 한참 모자란 실정이다.(2013년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전체 인구 대비 2.6%인 130여만 명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심사 없이 일정한 돈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하승수 위원장은 기본소득 실현 가능성의 근거로 해외 사례들을 든 뒤, 한국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예컨대 현재 지급되고 있는 기초연금만 해도 비록 적은 금액에 노인 인구의 70%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복지정책이지만, 대선공약 당시에는 일종의 노인 기본소득 형태로 제안되었다. 즉, 한국 사회는 이미 더 높은 수준의 복지가 필요하며 서서히 복지 양과 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본소득은 복지 제도가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수혜’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로서 작동해야 한다는 관점의 전환을 제시한다. 서로 연결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으므로, 이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정부를 비롯한 누군가가 자격을 심사하는 것은 정당치 않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무력감을 선사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심사로 인한 사각지대 이야기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수급권에서 탈락시키는 부양의무제가 가장 큰 문제인 한편 수급권자인 주민들에게는 소득심사가 야기하는 ‘일’로부터의 배제가 또 괴로운 일이었다. 대부분 1인 가구인 쪽방촌 주민들은 수급권자가 될 경우 월 49만 8000원 정도를 받는다. 그중 21만 원은 주거비로 고정지출 된다. 남은 생활비는 29만 원가량. 주민 대부분 몸이 아프고 지병을 앓고 있어 약값이 추가로 드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기적인 노동을 통해 벌 수 있는 돈 월 20~30만 원은 절대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대부분 주민이 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일해서 벌어들인 돈은 '소득인정'이 되어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고스란히 깎이기 때문이다. 결국, 총소득에는 차이가 없다.

"국가가 자꾸 빈곤층을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요."

말주변이 없다던 한 주민분이 입을 여셨다. "생활비가 부족한 것도 힘들지만 소비활동에도 생산 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무력해지는 것이 더 괴롭습니다", "소득을 한정시켜놓으니 담배와 술만 벗 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 된다"는 것이다. 자활을 돕겠다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발적 노력을 담보로 잡아, 수급권자들을 월 49만 원이라는 틀에 한정된 삶의 양식 속에 가두는 모순적인 복지 제도인 셈이다.

빈곤층 외면하는 기초연금

'줬다 뺏는 기초연금'도 고령의 수급권자 주민들에게 큰 박탈감과 상처를 안긴 사건이었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을 만 65세 이상 인구의 70%에게 지급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빈곤층이거나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수급권자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당연히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정부는 수급권자들에게 20만 원을 기초연금 명목으로 지급한 뒤 중복 복지라며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20만 원을 삭감했다. 이는 노인빈곤문제의 해결이라는 정책 취지에도 어긋나거니와 수급권자들의 인격을 농락한 어이없는 처사였다. 주민들은 놀리는 것도 아니고 줬다가 뺏느니 안주느니만 못하다며 씁쓸함을 표했다.

자연히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학연, 지연, 비리, 정경유착, 산업지상주의 경향이 심하고 나랏돈을 자기 사업에 투자하듯 하니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쓸 돈이 없다", "법이 탈세나 비리는 엄벌하지 않는다"는 데 이어 "소득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세금을 걷지 못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

증세에 대한 논의의 종착지는 의외로 담배였다. "돈이 없어서 가족과의 관계, 지인들과의 교류가 단절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 가장 힘들다"는 한 주민분은 "활발하게 돌아다니기에는 척추협착증, 당뇨 등 지병이 있고, 그나마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건 담배"라며 담뱃값 인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이분에게 담배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저렴하고 대체 불가능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옹색하다"는 표현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이 증언에 따르면 담뱃값 인상은 곧 저소득층 증세였다. 실제로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저소득층의 흡연 행태와 관련 요인'(2013)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위치가 낮을수록 흡연율이 높다. 하승수 위원장은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소득세 수준이 낮고, 서민들로부터 쉽게 세금을 걷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본소득이 가능하기 위해서 세금에 대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힘으로 살아나가는 십시일반 공동체

고생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대화의 분위기는 밝았다. 주민분들의 낯이 밝았기 때문이다. 자리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했다.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매월 적게는 5000원부터 1~2만 원씩 보탠 돈으로 운영되는 자활공제협동조합이다. 2010년 2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일체의 정부 지원 없이 주민들의 힘만으로 2015년 현재 1억 원을 웃도는 출자금을 모았다. 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급할 때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인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조합 사무실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했다. 어버이날과 명절에 여는 마을 잔치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평소에는 공동주방에서 반찬을 나누고, 주말에 모여 건강에 대한 정보나 다른 지식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진다. 공동체의 활동을 설명하는 주민 조합원분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은 마을 공동체의 선도적인 사례로 언론이나 사례집을 통해서 외부에도 수차례 소개돼왔다. 하지만 빠르게 인용되는 사례에 비해 정책은 여전히 한 발 느리다. 우건일 이사장은 장례를 예로 들었다. 가족과 절연한 주민분들이 돌아가실 경우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행정상 돌아가신 뒤 몇 달 동안 영안실에 방치된 채로 가족과 연락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연락이 닿지 않으면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마을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살아있는 동안엔 부양의무제로 얽어매던 가족 중심 정책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단절시키고 있었다. '정상 가족'의 상을 강요하지 않는 정책 설계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이는 미래세대를 위해 필요한 관점이기도 하다.

기본소득, 함께하면 가능하다

다양한 주제들을 거쳐 대화의 초점은 다시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으로 모아졌다. 기초연금 문제에서 당사자들이 기초연금을 보편적인 노인 기본소득으로 확장시키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부터 기본소득 실현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120만여 명의 수급자들이 모이고 또 그 중 기초연금을 받았다 뺏겼던 30만 명을 대변하는 여론이 형성되면 정치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이다.

우건일 이사장은 기본소득에 대해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면서 "9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현되었듯, 또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위해 오랜 시간 강력하게 투쟁한 결과 저상버스나 지하철 엘리베이터 같은 변화를 끌어냈듯이 기본소득도 함께 뜻을 모으고 요구하면 언젠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더 나은 대안, 기본소득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그래서 기본소득은 현행 제도보다 나은 빈곤의 해결책일까? 나는 현재의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는 급여보다 높은 금액으로 기본소득이 보장될 수만 있다면, '그렇다'라고 생각한다(만약 더 낮다면 중복지급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우선 소득심사가 사라지므로 노동활동에 제약이 없다. 수급권 박탈의 염려가 없으므로 안정적 기반 위에서 자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가난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도구를 만들 자원이 주어지는 것이다.

전산화와 계약직 인력 투입을 통해 시도되는 맞춤형 복지는 비용도 많이 들뿐더러, 개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당사자보다 더 잘 해결할 수 없다. 외로움 해소를 위해 담배를 피울지, 운동을 할지, 일을 구할지, 철수를 만날지, 영희를 만날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지 공통적인 '사회적 수요'로 포착될만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자발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지원하는 것이 낫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예컨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혹 담배만 태우시는 건 아닐까? 이날 대화에서 드러난 주민분들의 바람은 할 수 있는 만큼 일 하고, 사람과 만나고, 더 건강한 식사를 하고, 십시일반 꾸린 공동체에서 배움과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본소득을 통해 개인에게 흘러들어 간 현금이 이런 욕망과 만난다면, 자신의 건강한 삶에 투자되는 동시에 공동체의 강화와 관계의 회복에 사용될 것이다. 그래서 이날 동자동 사랑방 공동주방에서 나는 ‘함께 사는 돈’으로서의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덧 - 당일 동자동 주민분들께 기초생활수급비를 대체할 적당한 기본소득의 금액을 물은 결과 30만 원부터 120만 원까지 다양한 응답이 나왔다. 가장 많이 나온 금액은 70~80만 원으로 평균은 77만 원이었다. 덧붙여진 말은 지병인 당뇨에 좋은 현미밥을 지어 먹고 싶다는 것, 책을 읽고 영화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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