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중동 가라?"…살벌한 대한민국

[함께 사는 돈 탐방기] '각자 생존'에서 '함께 살자'로

<프레시안>과 녹색당,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함께 사는 돈 탐방기'라는 공동기획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각자 생존'의 시대라고 합니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수준인 48.1%에 달하고, 체감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도 이런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이 기획에서는 우리 사회의 소득 실태에 대해 진단하고,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각자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작년 12월 어느 결혼식에 참석했다. 24살 청년들이 결혼하는 자리였다. 신랑과 신부 모두 대학을 스스로 그만두고, 농촌에서 협동조합 일을 하며 결혼까지 하게 된 경우였다. 한편으로는 축하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런 경우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넘어서서 5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내집마련, 인간관계)가 나오더니, 7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5포세대의 5포에 덧붙여 꿈과 희망까지 포기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부여, 윽박지르지 마라

그런데 대한민국의 상황은 참 살벌하다. 정부는 이런 청년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립을 못 하냐', '왜 취업이 안 되냐'고 윽박지르고 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중동 가서 돈 벌어와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정부는 대통령의 말을 받아 해외취업 촉진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대학을 윽박지르면서, 취업이 안 되는 학과는 구조조정을 시키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요즘 대학교수들을 만나면, '교수도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는 얘기를 한다. 취업을 못하는 게 대학 탓이냐는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청년들이 '중동'에 안 가기 때문도 아니고, 대학 탓도 아니다. 자동화, 정보화가 되면서 기존의 일자리들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존의 정치권과 정부관료들은 구태의연하게 '일자리 창출'에만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을 더욱 가혹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청년들만 살기 힘든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연령에 관계없이 살기가 팍팍하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의 상황이 가장 열악하다. '보수'는 지킬 것이 있어야 하는데, 절반의 노인들에게는 지킬 것이 없다.

OECD국가에서 한국 노인들처럼 불행한 존재는 없다. 노인자살률은 최고수준이다. 인구 10만 명당 81.9명에 달한다. 노인빈곤율은 노인자살률만큼 높다. 대한민국의 노인빈곤율은 49.6%에 달해 OECD 평균인 12.6%의 4배 가까이 된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처분소득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노인인구의 비율이 35.6%에 달한다(2013년 기준).

최근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뜨거웠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노인들 중에 국민연금을 받는 비율은 34.8%에 불과하다. 나머지 65.2%는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각지대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65세 이상 인구대비 국민연금 수급자 비율은 2020년에도 41.0%, 2030년에 50.2%에 그칠 예정이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유일한 사회안전망은 기초연금이다. 2015년에는 1인당 최고 20만2600원(부부합산의 경우에는 최고 32만4600원)이 지급된다. 모든 노인이 받는 게 아니고, 전체의 70%가 받는다. 이 기초연금은 그래도 도움이 된다. 만약 지금보다 금액을 올린다면, 노인빈곤 해소효과는 클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기초연금을 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

▲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 봉투. . 1년여 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은 복지 사각지대라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후에도 이 사건과 유사한 자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가난한 노인들을 기만하는 정부

그리고 진짜 가난한 노인들 중 상당수는 지금도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하는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은 '그림의 떡'이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만큼 그다음 달에 지급하는 수급비(49만8000원)에서 공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운동단체들은 '줬다가 뺏는' 기초연금이라면서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이들은 가난한 노인들을 ‘인간’으로 보고 존중하기보다는 관리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청년과 노인만 살기 힘든 것도 아니다. 40~50대들도 살아가기는 만만치 않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망하지는 않을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해고 바람이 불어 닥치지는 않을지, 지금 하는 사업이 앞으로 잘 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은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라는 불안이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 정치인들, 정부 관료들, 재벌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경제성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번 되돌아보자. 1992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00달러 수준이었다. 그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표방했다. 1만 달러만 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2014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000달러가 넘었다. 1992년보다 4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은 어떤가. 불평등은 심해지고, 청년들은 7포세대가 되었다. 노인의 절반이 빈곤에 시달린다. 자살률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면, 경제성장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다.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국가정책에서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하고, 시민들 각자도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각자 생존'의 사회가 유지된다면,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은 팍팍한 삶과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지구에는 다른 해결책을 모색해 온 사례들이 있다. 세계에서 청년들이 가장 자립을 빨리한다는 나라 중에 덴마크가 있다. 덴마크에서는 18~24세까지의 청년들 중에서 부모와 함께 집에서 사는 비율이 34%밖에 안 된다고 한다. 덴마크라는 국가에서 대학생의 학비가 무료인 것은 물론이고 상환조건 없이 매달 760유로를 장학금으로 준다고 한다.

대학가는 청년만 좋은 것도 아니다. 임금격차가 적고, 임금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어서 대학을 가지 않고도 경제적 자립을 하기 쉽다. 직장을 다니다가 잃게 되는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장기간(2년간) 지급하기 때문에 불안함이 덜하다.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자립'이 잘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청년에게 '혼자서 먹고 사는 걸 해결하는 게 '자립'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는 청년에게도 주거와 교육, 생활을 모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자립'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고 있다. 진정한 '자립'은 공동체의 뒷받침 속에서 가능하다.

ⓒ프레시안(최형락)

기본소득도 꿈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노인빈곤율이 1.6%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그 이유는 모든 노인에게 일정 기간 네덜란드에서 거주하기만 하면, 월 1079유로(2012년 기준)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지금 환율로도 130만 원이 넘는 돈이다.

덴마크든 네덜란드든 이런 제도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치제도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것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기본소득도 꿈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더 이상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자는 발상이다.

많은 사람이 기본소득을 얘기하면 재원에 대해 걱정하지만, 사실 재원은 얼마든지 마련할 방법이 있다. 토지, 천연자원, 공기, 물과 같은 자연적 공유재에서 나오는 수익을 환수해서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고, 많이 버는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시민에게 나눠주는 돈은 시민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배당금인 셈이다.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매년 주민에게 시민배당을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석유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어디에나 있는 토지는 대표적인 공유재이다. 금융시스템을 공유재로 보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부동산,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이 상당하다. 그런데 이런 소득에 대해서는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또한, 많이 가진 사람,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적게 납부하는 편이다. 부유세 같은 아이디어도 있고, 북유럽의 국가처럼 많이 버는 사람은 최고 60%까지 소득세를 내게 할 수도 있다. 법인세율도 지금보다 더 올릴 수 있다. 지금은 한해 사망자의 2% 남짓만 내는 상속세를 강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재원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한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부담률(48.6%)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 조세부담률(23.6%)의 딱 2배다. 만약 대한민국이 덴마크 수준으로 세금을 걷으면 1인당 월 60만 원씩을 지급하고도 남는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조세부담률 1위이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큰 불만 없이 세금을 내고 있다. 그리고 덴마크는 세계행복도 조사에서도 1위를 하는 국가이다. 세금을 많이 내면서도 불만이 없는 것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반부패지수에서 늘 최상위급의 청렴도와 투명성을 자랑한다.

물론 '현재'의 대한민국과 덴마크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대한민국은 조세부담률이 낮으면서도 조세저항은 큰 나라이다. 그 이유는 탈세가 심하고, 많이 가진 사람이 세금을 제대로 안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 손해보는 게 아닌가'라는 불신이 퍼져있다. 이것은 결국 잘못된 정치가 초래한 결과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고 정부가 신뢰를 회복한다면, 대한민국 시민들이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각자생존’의 사회를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이든 다른 방안이든 간에 재원마련이 근본적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 합의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원은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토론의 부족이고, 상상력의 부족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 전체가 '꿈'을 상실해 버렸다. 이래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무관심하고, 무관심하기에 더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함께 사는 돈'을 꿈꾸고 만들어보자

그래서 한번 길을 찾아보자. 각자의 현실에 관해 얘기하고,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자. 그리고 그것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돈에는 고리대금업자의 돈, 인간의 노동력과 영혼의 대가로 지급되는 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사는 '돈'도 있을 수 있다. 그 돈을 함께 찾고, 함께 만들어 보자.

그래서 <프레시안>과 녹색당이 공동기획해서 '함께사는 돈 탐방기'를 시작한다. 기본소득운동을 해 온 기본소득청'소'년 네트워크도 함께 한다. 이 탐방기를 통해, 여러 사람과 현장의 얘기들을 듣고, 기본소득을 포함해서 '함께 사는 돈'을 만들 대안들을 모색할 것이다. 많은 관심과 토론을 기대한다.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