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미국서 '골든타임' 허비하려나?

[정욱식 칼럼] 한미 정상회담, 시급한 현안 없다

한마디로 국가적 위기이다. 앞으로 1~2주가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콘트롤 타워가 없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확산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와중에 6월 14~19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여부가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적 위기에 처하고 있는 만큼 연기나 취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취소나 일정 변경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대통령의 방미는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게 맞다. 미국을 방문해야 할 시급하고도 중대한 사안은 거의 없는 반면에, 대한민국은 급격히 침몰 위기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 호'의 선장에 해당하는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다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회복불능 상태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 자칫 많은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도망간다'는 절망 어린 분노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이전부터 잡혀 있던 한미정상회담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게 외교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여길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미국 정부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충분히 양해를 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적 위기를 뒤로하고 정상회담을 강행해야 할 시급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압박과 제재 의지를 한층 강력하게 천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건 역효과만 낼 것이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터다. 그렇다고 대북정책 전환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오히려 한국에겐 한미정상회담이 외교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자리이다. 미국은 한일간의 협력 강화를 통한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과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측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얘기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메르스 확진 환자와 의심 환자, 그리고 격리 대상자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국민들의 공포심과 정부에 대한 분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합심해도 극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강행한다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이 위기를 극복하자'는 호소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건 대통령과 정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신뢰의 위기가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면, 메르스 대처뿐만 아니라 국정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모쪼록 박 대통령이 메르스 대처의 '골든타임'을 미국에서 허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전화위복의 리더십 구축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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