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박근혜의 '카트리나 모멘트'?

[기자의 눈] 총리는 없고, 부총리 출장, 대통령은 지방, 정무수석은 공석

박근혜 대통령은 2일 낮 시간 대부분을 전라남도 여수에서 보냈다. 재벌 기업이 후원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축사를 했다. 국무총리의 공석 일수는 이제 세는 것도 지친다. 총리 직무대행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해외 출장을 떠났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첫 환자가 나온(5월 20일) 이후 14일째 되는 날, 이 정부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초동 대처 미흡"으로 질타를 받았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책은 커녕 이날부터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맡게 됐다. 그런데 문 장관은 보건 전문가도 아니고, 경제 전문가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4시경 보도자료를 내고 부랴부랴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청와대 긴급 대책반'을 꾸렸다. 반장은 경제 전문가인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이다.

과연 콘트롤타워란 게 존재하는가?

지난 2003년 4월 29일, 국내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추정 환자가 처음 발생했다. 고건 당시 국무총리는 다음날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사스 관련자의 격리, 치료를 위해 사스 집단치료 전담병원 및 연수시설 등 공공시설을 이용한 격리시설을 시도마다 1개씩 조속한 시일내에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2015년 5월 11일, 첫 환자에게서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뒤 5월 20일 확진 때까지 정부는 손을 놓았다. 열흘 동안 격리 조치조차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2명이 사망하고, 3차 감염자 2명이 확인됐다. 감염성 질병 문제에 있어 초동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메르스 모멘트', 박근혜의 '카트리나 모멘트'가 될 것인가?

박 대통령은 첫 확진 환자 확인 이후 13일만에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고 말했다. 북한 언론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에 성공했다는 보도에 박 대통령은 성공했는지, 성공하지 않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긴급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현안을 점검했다. 지금과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전염병 변수에 비하면 북한 변수는 사실 '통제 가능'한 변수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 이렇게까지 미온적인 이유를 기자도 알 수가 없다. 북한 변수는 정치적으로 이득이고, 메르스 변수는 정치적으로 불리하니 그런 것인가?

지금 상황은 대통령이 "미흡하다"고 한마디 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심지어 3차 감염자가 나왔는데 보건당국은 "지역사회로 전파는 없다"고 변명같은 말을 내놓았다. 메르스 환자가 속출한 병원을 두고 "중소병원 규모라 감염 관리에 충실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책임 회피성 반응까지 보였다.

논란은 있지만 병원 이름 공개도 꺼리고 있는 보건복지부에 대해서는 '불순한' 의심마저 들 지경이다. 보건 정책 주무 장관이 경제학자 출신이어서 그런 것인가? 경제가 방역에 우선하는 것인가? 그런 보고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오죽할까.

이런 정부의 태도는 병원으로 하여금 환자를 기피하게 만들고, 환자로 하여금 병원을 기피하게 만든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썩 좋지 않은 결과를 낼 뿐이다.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오히려 다른 데에 있다. 국무총리 직무대행인 최경환 부총리는 이날 긴급관계장관 회의를 처음으로 열었는데,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악의적 유언비어나 괴담 유포자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2주만에 열린 '긴급' 회의 의제라는 게 저런 수준이다.

회의를 마친 최 부총리는 조태열 외교부 2차관과 함께, 3~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열리는 '2015년 OECD 각료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국제회의 참석까지 비판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콘트롤타워의 한 축은 공백 상태가 됐다.

복지부장관은 신뢰를 잃었고, 국무총리는 없다. 대통령이 이 사태를 직접 지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부는 느긋하다. 국회와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정무수석은 공석이다. 국회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지금 국회와의 관계는 최악이다.

세월호 참사 때 사라졌던 콘트롤타워가 지금 생겨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결국 입증을 해 냈다. 이 정부에는 콘트롤타워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관료들의 나라였고, 무능한 행정수반은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인데, 시민들은 '설마'하며 일말의 기대를 부여잡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아들 부시' 대통령이 9.11사태 관련 대응으로 인기를 구가하다 몰락한 계기는, 야당과의 싸움에 졌기 때문도, 정치를 못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카트리나 참사라는 '외생 변수'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무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정치 개혁을 부르짖고,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눈을 돌리라'며 고용 정책을 진두지휘하던 박 대통령의 정치 일정에, '메르스 사태'는 없었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에게 메르스 사태는, 부시의 '카트리나 모멘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몰락이 두려운 이유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유권자가 받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디 지금이라도 메르스 문제를 공무원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 이 사진은 출처 불명의 합성 사진이다. 카트리나 참사 사진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낚시를 즐기는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카트리나 참사 대응을 비꼰 것으로 과거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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