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이 선거제도보다 중요한가?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재보선에 정신 팔린 여야, 선거제도 논의는 뒷전

지난 몇 주 동안 거대 양당은 4.29 재보궐선거에 올인하고 있다. 특히 양당의 대표들은 자신들이 마치 후보라도 된 듯이 선거운동에 열심이다. 언론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보궐선거가 정치권이 이처럼 총력을 기울일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묻고 싶다. 도대체 이 4석의 선거결과가 우리 정치권의, 또 우리 생활의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 결과가 4:0으로 나오든지, 0:4 또는 2:2 등 그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그것이 정치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과거 2014년 7.30 재보궐선거의 결과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를 바꾼 것 말고는 변화를 가져온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정된 과반의석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던 새누리당의 뜻대로 되었지만, 과연 변한 것이 있었는가?

올해 4월 초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와 선거구를 조정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성완종 리스트' 논란에 의해 묻히고 있다.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을 처벌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고,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은 향후 수십 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중차대한 과제이다.

또한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않고는 그러한 부정부패의 청산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특정인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당의 대표들은 보궐선거보다 이 정개특위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선거구획정위를 독일처럼 상설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어제 열린 정개특위에서는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로 하고, 이 위원회의 제안을 아무도 수정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합의했으나, 이 기구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디에 소속시키며, 어떠한 역할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위원회의 상설화를 위해 행정자치부 산하의 독립기구로 두고, 그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계청장과 행정법원 판사, 그리고 5명의 전문가로 구성하기를 제안한다. 그 이유는 이번 선거구획정뿐만 아니라, 향후 인구변화에 따른 선거구의 조정 필요성에 대해 상시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지역구 국회의원, 오히려 줄여야 한다...왜?)

하지만 이들의 과제나 역할은 '선거구 조정'에만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선거제도의 개편이나 의원정수를 정하는 문제는 국민의 대표들이 결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개특위는 먼저 선거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최근의 동향을 보면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단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의원정수는 기존과 같이 특정 숫자로 고정될 수 없다. 초과의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처럼(지역구 299석+비례대표 299석) 기준이 되는 의석만 결정하면 된다. 독일의 의원 수가 한 번도 기준의석인 598명이 된 적이 없듯이, 우리도 기준의석을 300석으로 하더라도 권역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실제 의원정수는 320~340명으로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관련 기사 : 새누리 152석, 독일식 비례대표제 적용해보니...)

정개특위는 의석수의 결정에서 선거구 간 인구 격차를 1:2 이내로 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도 가능한 한 선거구 간 인구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일의 지역구 인구수가 약 27만 명인 점을 감안하여 우리도 보다 전향적으로 25만 명에 1개의 선거구를 설정하면, 지역구 200석과 비례대표 100석을 기준의석으로 설정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지역구들이 이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대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줄일 수 있겠냐는 논리로 그러한 방안을 무시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자신의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무슨 혁신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국민 정서를 이유로 의원 수를 확대하는 문제에 대체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이다. 상임위원회 당 의원 수를 독일과 비교하거나 부실한 예산심의, 국회의원의 기득권 축소 등을 감안할 때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국민에게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흔히 OECD 기준을 의원 수 확대의 주요 근거로 들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정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관련 기사 : 국회의원 수 줄이면 정치가 나아질까?)

비례대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다

일부 정개특위 위원은 물론 전문가들도 경우에 따라 비례대표의 축소 또는 심지어 폐지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그들의 논리는 대체로 비례대표의 후보선출 방식이 불투명하다거나,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의원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비례대표는 지역구 의원들과 달리 고생 없이 의원이 된다는 불만이나 비례대표를 선호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심지어 비례대표를 권력자의 전리품 정도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한편으로 옳은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제도운용을 잘못하고 있는 것을 제도가 잘못됐다고 하는 모양새이다. 마치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으니 정당정치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과 비슷하다. 당연히 당원들의 권한인데, 당원이 부족하니 당원들에게 공직후보 선출권을 줄 수 없다는 거대 양당의 논리도 이와 같은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지역구 후보들이 고생하는 이유는 지역의 정당조직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후보 개인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을 해서 당선된 의원은 그런 문제점들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지역의 정당이 활성화되면 경쟁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사이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독일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입후보가 가능하도록 허용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처럼 후보의 결정을 공천심사위원회를 통해 당 대표가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이를 허용하는 것은 오히려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원들이 공천권을 갖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독일처럼 공직 후보의 추천권을 정당의 당원이나 유권자가 갖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 된다. (☞관련 기사 : 친노·비노가 당권에 목숨거는 이유는) 더 이상 말로만 하는 공허한 정치혁신이 되지 않도록 이번 정개특위가 자신의 과제를 제대로 처리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의 매서운 눈초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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