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해고자 강웅표 씨는 박용성 회장이 중앙대 교수들에게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는 협박 이메일을 보내 사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12년 전 두산중공업에서 했던 '재벌 갑질'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용성 회장은 중앙대 교수, 학생들이 학사구조 개편안에 92.4%가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를 개최하자, 이런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학과제 폐지 등 대학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비대위를 화장실 비데로, 교수들을 '새머리'로 조롱하는 이메일도 보냈습니다.
2008년 6월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용성 회장은 '총장 직선제 폐지'와 '교수 성과급 연봉제' 도입을 강행했습니다. 2004년 서울대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헛소리"라고 말했던 그는 "중앙대 이름을 빼고 다 바꾸겠다"며 대학을 기업으로 만드는 일방적 구조조정을 강행했습니다.
올해에는 파업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학내에서 농성이나 시위를 하고 대자보를 붙일 때마다 한 사람당 100만 원씩 물어내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습니다. 학교를 비방하는 대자보를 붙여도 100만 원, 구호를 외쳐도 100만 원을 내라는 것입니다.
12년 전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벌어진 일
1982년 9월 한국중공업에 입사한 강웅표 씨는 노조를 만들고 민영화를 막기 위한 파업에 나섰다가 해고됐고, 노조의 투쟁으로 복직했습니다. 하지만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2003년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다 다시 해고됐는데, 12년 동안 복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3년 후면 정년퇴직 나이가 됩니다.
그는 12년 전인 2003년 2월 공장 안에서 발견한 회사의 문건과 수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노사문화 실행방안'이라는 문서에는 직원을 성향별로 분류해 '강성 조합 활동가 순치', '조합 활동가 주요 동향 파악', '종업원 신상관리를 통한 현장 통제력 확보', '조합 활동가 이력 관리' 등 노동조합을 깨기 위한 주도면밀한 방안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2002년 5월 수립한 '신노사문화 정립방안'은 2002년 조합 활동가 밀착관리 → 2003년 조합원과 비조합원 차등 관리 → 2004년 우호 합리적 집행부 결성이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직원들을 온건, 조합 추종, 강성, 초강성으로 분류해 "가정 방문해 부인으로 하여금 순화교육 요청", "위반 행위에 대한 채증과 징계"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조합 활동가 관리비 1억 원, BG 노무담당자(17명) 활동비 1억4000만 원, 회사 대의원 양성비(20명, 1인당 1000만 원) 2억 원, 선무활동비 3억4000만 원 등 2002년 한 해에만 11억5000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손해배상 가압류 앞세워 노동자 목줄 죈 두산
노조가 입수한 수첩에 담긴 내용들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금년도에는 노조를 잡아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하여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2001년 6월 20일 한○○ 상무)
"비밀은 지켜져야 한다. 간부들 이야기들을 노조에 흘려서는 안 된다."(2002년 6월 1일 김상갑 사장 주재회의, 조○○ 공장장)
"차주에는 더욱 노조를 압박하여야 하며 물리적으로 붙여야 한다. 합법, 불법 개의치 말고 밀어붙이자."(2002년 6월 1일 김상갑 사장 주재회의, 장○○ 전무)
수첩에는 2002년 1월 2일 박용성 회장이 임원 간담회에서 "2001년도에는 징계와 형사고발 등 원칙을 잘 지켰다"며 노조에 대한 탄압과 강경책을 치하하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새로운 노사문화를 정립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적혀 있었습니다.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은 2000년 12월 온갖 특혜 의혹 속에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2001년 3월 1124명을 명예퇴직으로 회사에서 쫓아냈습니다. 5월에는 소사장제를 도입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려고 했습니다. 노조는 3개월 동안 파업을 벌여 소사장제를 막아냈습니다.
그러자 두산중공업은 노무팀 인원을 3배로 늘리고 예산을 쏟아 부어 노조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2월 26일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기 위한 민주노총 파업에 동참한 조합원 201명을 징계했습니다. 50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으로 54명의 재산을 압류했습니다.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 유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두산"
1981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한 배달호 조합원은 2002년 파업으로 구속됐고, 재산과 임금이 가압류되어 있었습니다.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2002년 12월 26일 현장에 복귀한 그는 2003년 1월 9일 새벽 6시경, 일하던 보일러공장 앞에서 분신해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 가압류, 급여 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그에 앞서 2002년 겨울, 같은 보일러공장의 김건형 대의원은 조합원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다가 관리자들의 방해에 항의해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기도 했습니다. 배달호 열사의 분신에도 불구하고, 두산의 노조 깨기 시나리오는 계획대로 진행됐습니다. 두산중공업은 거대한 병영이었고, 수용소로 변해갔습니다.
286억 횡령해도 풀려나는 재벌
강웅표 씨는 2006년 7월 21일 서울고등법원에 있었습니다. 286억 원을 횡령하고 3000억 원 가까운 분식회계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의 항소심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와 동료들은 '형제의 난'으로 불린 두산그룹 비리 사태가 터진 2005년 7월부터 1년 동안, 법원과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법원에 박용성 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인재)는 두산그룹 박용오와 박용성 전 회장에 대해 "286억 원이라는 거액을 횡령해 경제 전반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했다"면서도 "국익에 기여한 바가 크다"며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형제의 난'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두산 회장직을 내려놓고, IOC 위원도 그만뒀습니다. 그러자 법원은 그에게 '재벌 정찰제 판결'을 내려줬습니다. 박용성은 조용히 두산중공업에 복귀했고, 중앙대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두산"…'재벌 갑질' 언제까지?
박용성 회장은 "최근 중앙대와 관련해 빚어진 사태에 대해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학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중앙대 이사장직과 두산중공업 회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사퇴 이유가 대학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중앙대학교 관계자는 "박 이사장이 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것이지, 두산그룹이 중앙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전했습니다. 박용성은 이사직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형제의 난' 때처럼 좀 쉬었다가 조용히 다시 온다는 뜻입니다.
중앙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의 막말 파문은 '대학판 조현아 사건'이라며 모욕과 협박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중앙대 캠퍼스 통합과 적십자간호대 인수 등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중앙대 특혜 외압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임대료 수입 203억 원을 법인 수입으로 처리한 횡령 혐의, 두산건설의 중앙대 건물 공사 독점 등 의혹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박용성이 2011년 중앙대 통합 승인 직전 이명박을 만나 캠퍼스 통합을 요청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학교 반대 활동을 하는 인간들을 교수로 보지 않는다. 사사건건 시비만 하는 악질 강성 노조로 본다." 박용성 씨가 중앙대에서 했다는 말입니다. 중앙대 교수와 학생들이 '박용성 갑질'에 저항하지 않고 침묵했다면 '대학판 조현아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용성의 조카인 두산중공업 박지원 부회장은 지난해 연봉 17억6000만 원을 챙겼습니다. 박용성은 등기 임원이 아니어서, 얼마를 가져갔는지는 모릅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483억 원의 적자를 냈고, 250여 명의 직원을 희망퇴직으로 쫓아냈습니다.
2002년 1000여 명을 넘지 않았던 비정규직은 12년 만에 3122명으로 늘어 비정규직 비율이 30%를 넘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1월 말부터 나이·직급·직종에 관계없이 사무직 사원 3200명 전체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고, 100여 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강성 노조'가 사라진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재벌의 '갑질'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12년 전, 배달호 열사가 남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두산'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강웅표 씨는 2007년 법원이 '정의로운 판결'을 내렸더라면, 박용성의 '갑질'은 중단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합니다. 이번에도 박용성은 시간이 지나 조용히 두산중공업과 중앙대학교에 복귀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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