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과 국민모임의 진짜 문제?

[주간 프레시안 뷰] "'모래알 정당' 확인해 준 문재인"

재보선이 치러지는 4월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이기 때문에, 이번 재보선은 올해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임에 분명합니다. 더불어 선거에 임하는 각 당의 자세와 대응능력을 통해 내년 총선 판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선거는 역시 새누리

우선 여당인 새누리당은 '역시 새누리'라는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새누리당은 천안함 5주기를 맞아 3월 내내 김무성 대표를 필두로 종북몰이를 시도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안보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고 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종북세력이 발목을 잡아서 그렇다'는 류의 주장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어터진 국수'론의 종북형 리모델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응은 싸늘했지요. 우선 통진당 해산 이후 종북 프레임이 정치의제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고 (이 점에서 통진당 해산을 분에 못 이겨 일사천리로 진행시킨 것이 되려 박근혜 정부에게 악재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둘째로 경제와 종북을 연결시키는 것이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역시 새누리당이었습니다. 종북이 통하지 않자 곧바로 '새줌마'를 들고 나온 것이지요. 당 대표를 포함해 후보자들이 모두 고무장갑을 끼고 빨간 앞치마를 둘렀습니다. 앞치마에는 '경제는 새누리'라는 표어가 쓰여 있었지만, 저에게 그것은 '선거는 새누리'로 보였습니다.

투표율이 30%대에 머무르는 재보궐 선거의 특성상, 보수적인 노년층에 더해 시장 바구니를 든 40-50대 주부층을 더하면 승산이 없지 않다는 계산이 엿보입니다. 만약 이것이 국내에서 가장 탄탄한 민간 싱크탱크 중 하나인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 연구소'의 조사와 분석에 기반을 둔 전략이라면 유의미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27년 동안 여당 후보를 당선시켜 준 적이 없는 '관악을'에서 이번에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야당의 분열 때문이 아니라, 그 분열의 국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포착한 새누리당의 전략적 유연성과 실행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현재의 야당에게 없는 것이지요.

정동영에 대한 비판, 적절치 않다

이번 4·29 재보선의 하이라이트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관악을' 출마일 것입니다. 광주의 천정배 전 의원은 암묵적으로 국민모임 신당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어쨌거나 형식상 무소속 후보이기 때문에, 설사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국민모임 신당' 입당이라는 또 한 국면이 남아있어서 당장 이번 재보선을 야당재편의 신호탄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동영 전 의장이 국민모임 신당 후보로 출마함으로써, 창당대회를 마치고 야당 교체를 들고 나온 국민모임 신당의 파괴력을 이제 직접 검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 전 의장의 출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소위 '배신자론'과 '철새 정치인',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먼저 당 의장과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당을 비판하면서 그 상대로 선거에 나오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판은 야당 내 정치세력간의 갈등과 지난 몇 년간 정 전 의장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노무현 정권의 창업공신이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초대 당 의장을 맡기도 했지만, 참여정부 후기에는 소위 친노 세력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고 여당의 대통령 후보임에도 사실상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청와대의 돌출적인 행동으로 고춧가루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정 전 의장에게 흔히 말하는 철새 정치인의 이미지를 덧씌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공천을 못 받았다고 당 의장과 대통령 후보가 탈당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는 비판은, 반대로 당 의장과 대통령 후보를 지낸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공천을 주지 않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비판과 차별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당은 결국 정 전의장의 복당을 받아들였습니다.

정 전 의장의 두 번째 탈당도, 지난 몇 년간 그가 일관되게 당의 우경화를 비판하고 진보적 사안이 걸린 현장에 나섰다는 사실을 통해 보면 크게 비판할 것이 못됩니다. 심지어 그는 지난 총선에서 사실상 당을 대표해서 강남에 출마했습니다. 그 정도의 희생을 감수한 사람에게 지금에 와서 당이 배신과 탈당을 운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정동영의 진짜 문제

▲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연합뉴스
국민모임 신당과 정동영 전 의장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사과하지 않아야 할 것들에 사과하고, 사과해야 할 것들에 사과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 전 의장은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서 참여정부가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았다는 점. 한미 FTA 등 반서민적 정책을 취한 점 등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과는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 공과가 정 전 의장보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세력, 현재의 문재인 대표에게 더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과는 진정성보다는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정치 쇼에 가깝습니다. 적게 책임질 사람이 크게 사과하면서 많이 책임질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 향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정 전 의장은 탈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정치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사과는 크게 틀렸습니다. 계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잘못됐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야당세력에서 계파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바로 정동영이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첫 계파는 '정동영계'였습니다. 열린우리당 시절 당 기구가 아니라 사실상 정동영의 사조직이 공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계파 없이 공천 없다'는 야당의 공식은 이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정 전 의장이 청와대의 눈 밖에 나면서 '친노 직계'가 당을 장악하기 전까지 정동영계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습니다. 공천을 대가로 줄세우기를 자행하고 당내 경선을 혼탁선거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결국 그 폐해가 현재의 계파정치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정 전 의장이 이제 와서 계파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책임을 자임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한 사과라면, '계파 정치는 내가 시작했고,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일 텐데, 이 정도의 사과를 하고도 정계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국민모임 신당의 진짜 문제

정 전 의장 문제와 더불어 국민모임 신당의 진짜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제목은 신당인데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지요.

정치에서 새로움의 핵심은 '사람'에 있습니다. 국민모임 신당은 현재의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노선에서 우경화되고, 대안 세력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계파정치의 폐해로 인한 인적 쇄신의 실패에 있습니다. 기실 열린우리당 이래 안철수 정도를 제외하고 야당에 의미 있는 새 인물이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수없이 선거에 지면서도 말이지요.

이것이야말로 국민모임 신당의 존재 이유입니다. 세간의 정치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국민모임 신당의 목표가 '야당 세력 교체'에 있지 '총선 승리'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당 교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국민모임 신당이 출마를 결정하는 수도권의 모든 지역에서 새정치연합은 스스로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세대교체, 세력교체에 실패한 현재의 제1야당에게는 이것이 응당한 대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는 파괴와 해체라는 필수적인 단계를 거친 후에 창조적 대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인데, 현재 국민모임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분들과 그 후보의 면면을 보면 여기에 과연 새로움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진보엘리트와 명망가들, 그리고 옛날 정치인들 외에 새로운 얼굴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기존의 대의정치에서 대표되지 못했던 사람들, 곧 희망을 잃은 젊은 세대와 빈곤층, 비정규직,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물론 앞으로 총선까지 1년 여의 시간이 남아 있고, 일단 개문발차 형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들 위주로 선거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보선 이후 국민모임 신당이 여전히 현재의 모습에 안주한다면 야당 세력 교체의 토대는 마련할 수 있을지 몰라도 스스로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국민모임 신당이 진정으로 새로워지려면, 새로운 인물, 새로운 세력을 발굴해서 그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현재의 창당주역들은 그 임무를 잘 완수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답이 없는 새정치민주연합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안보' 행보는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의 약점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이 새누리당의 안보 무능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떻습니까? 천안함 사건을 일으킬 수 있도록 북한에게 '퍼주기'한 것은 더 큰 안보 무능입니다.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킬 정도로 오만방자하게 만들어 준 것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입니다. 새누리당이 무능하다면 새정치연합은 무능할 뿐 아니라 나쁜 정부였습니다. 이런 시선을 가진 유권자에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안보행보는 어떻게 보일까요?

게다가 이러한 안보 행보를 당내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불편해 할 뿐 아니라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후자에 있습니다. 충분한 당내 합의 없이 추진된, 혹은 합의가 불가능한 사안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규율이 없는 정당, 실행력이 없는 정당, 모래알 정당, 계파 정당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문재인 개인의 이미지는 개선되었을지 모르지만, 당은 더욱 수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전방위적 종북몰이에서 금세 새줌마로 돌아섰습니다.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철회에 대해서도 방어전선을 확대하지 않고 무관심한 척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선거에 도움이 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의 홍준표 때리기는 재보선에서 실패할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태도처럼, 그건 그 동네 일입니다.

4월이 되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재보선 전략은 아직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엊그제 재보선 공약을 발표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새정치연합이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그것이 실현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를 회피하고 또 다시 임시방편의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면, 아마도 이 정당은 당분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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