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모임과 정동영 탈당은 야권분열인가?

[기고] 권노갑 상임고문과 새정치연합에게 보내는 답변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님, 안녕하십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정치를 가르치고 있는 손호철 교수라고 합니다. 저는 1970년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투신,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의 부정선거에 의해 석패한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의 대학생 선거참관인단으로 참가해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를 보이코트하라고 신민당을 찾아가 요구했다가 투옥된 일이 있습니다. 즉 권 고문이 모셔온 김 대통령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줄곧 다양한 현장에서 사회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김 대통령과 관련해 말씀드리자면 출옥 후에도 김 대통령을 열렬하게 추종하다가 1987년 김 대통령이 '대통령 욕심'때문에 김영삼과 분열해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3김 청산론'으로 돌아섰습니다. 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두 정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추진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항해 싸워야 했습니다. 이후에는 진보정당만이 한국정치의 희망이라고 생각해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의 상임의장을 맡아 분열된 진보정당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사태가 터졌고 이 문제에 대한 새정연의 새누리당과의 야합을 보면서 새정연은 더 이상 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2중대'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새정연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촉구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정치를 촉구하는 국민모임'(이하 국민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올 초에 쓴 <경향신문>의 마지막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이 새 정당은 신자자유주의의 극복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여 정의당, 노동당과 같은 기존의 진보정당만이 아니라, 저와 같이 기존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무당파 진보세력, 민주노총과 노동정치연대와 같은 노동세력, 나아가 정동영 전 장관으로 상징되는 새정연의 진보파가 하나로 합쳐져 일종의 '진보 빅텐트'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바로 가기 :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 그리고 갑자기 생겨난 건강상의 이유와 집안의 우환으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지만 국민모임이 추진하고 있는 신당추진위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 소개가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을 쓴 배경을 이해하셔야 할 것 같아 긴 소개를 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권 고문께서 저의 칼럼과 국민모임의 촉구에 답해 새정연 탈당과 국민모임 참여를 선언한 정동영 전 장관(그리고 새정연을 비판하며 탈당해 광주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천정배 전 장관)에 대해 "이치에도 맞지도 않고 명분도 없는 일"이라며 "야권분열을 일으킨다면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과거 권 고문에 대해 '낡은 3김정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가신그룹으로 비리에 연루된 '부패 정치인'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각종 혜택을 누리고도 종편에 나와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해 독설을 늘어놓고 그 덕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잘나가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서 최소한의 인간적 원칙을 지키고 있는 권 고문을 높게 평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신 발언은 충격이었습니다. 정 전 장관의 탈당과 국민모임 참여가 야권분열인가, 야권혁신인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야권분열'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김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해 온 권 고문의 입에서 야권분열 비판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은 1987년과 1995년입니다.

우선 1987년 양김의 분열입니다. 당시 김영삼 후보는 지금의 새정연처럼 세월호에 대해 새누리당(당시는 민정당)과 밀실합의 야합을 하는가 하면 국민적 분노를 산 연말정산법 개정에 대해 해당상임위원장으로 몇 분 만에 여당과 손잡고 졸속통과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출마를 선언하고 야권을 분열시켜 국민들이 6월항쟁을 통해 쟁취한 직선제개현의 성과를 TK 군사독재세력에게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군사정권의 종식은 5년 늦어졌고 지역주의는 전면화됐으며(부마항쟁에 보여주듯 1987년 양김의 분열과 3당통합 이전에는 호남과 부산경남은 민주화운동의 동지였습니다.) 민주화 세력은 분열됐고 국민들은 허무주의에 빠졌습니다.

1995년은 또 어떻습니까? 1992년 대선에서 김 대통령은 3당통합이라는 망국적인 반호남지역연합에 의해 패배한 뒤 정계를 떠났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호남과 함께 또 다른 민주화 세력의 근거지였던 부산 지역의 거물정치인으로 3당 통합을 따라가지 않은 이기택 씨가 당대표로 통합야당의 위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하며 민주당으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새정치국민희의라는 신당을 만들어 야권분열을 주도했습니다. 이에 저항해 제정구, 김원기, 노무현, 유인태, 원혜영, 김부겸과 같은 내로라 하는 개혁적 정치인들이 통합야당추진을 위해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들어 야인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권 고문이 당시 김 대통령에게 야권분열을 경고하고 통추에 참여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이 현재의 새정연처럼 민자당의 2중대라서 야권분열을 감수하고라도 신당창당을 했어야 했었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권 고문께 묻겠습니다. 1987년의 양김의 분열, 1995년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 현재의 국민모임 흐름 중 어느 것이 야권분열이고 어느 것이 야권혁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긴 말이 필요없이 1987년과 1995년에 비해 현재가 훨씬 더 명분이 있습니다. 비유해 이야기하자면, 좀 심하게 들리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두환 치하의 1985년 총선에서 '어용야당'이었던 민한당에 반대해 양김이 '야권분열'을 통해 '야권혁신'을 했던 신한당 창당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에 대한 심판이었던 2007년 대선 참패이후 민주당(새정연)의 행적을 보면 왜 그런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대선과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과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했고 이후 그것은 독으로 작용해 연이은 패배로 이어져 왔습니다. 2012년 대선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민주당을 혁신해 국정을 맡길만한 제대로 된 개혁정당임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컬럼을 통해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문 의원은 이해찬-박지원 야합 등 낡은 정치에 대한 혁신을 전혀 하지 못함으로써 질수 없는 대선을 지고 대통령 자리를 박근혜 후보에게 상납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집권 능력이 없는 무능의 극치였습니다.

박근혜 측이 당의 색깔까지 그토록 싫어하는 빨간 색으로 바꾸고 변신을 하고 있을 때 제 당 하나 바꾸는 척조차 하지 못하는 문재인 후보를 누가 찍겠습니까? 사실 새정연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어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만들어준 일차적인 책임은 지난 대선에서 혁신부족으로 정권을 내준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에게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민주당은 질수 없는 여러 선거를 계속 새누리당에 헌납해 왔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지적한 세월호와 연말정산 야합이 보여주듯이 새정연은 '새누리당의 2중대'로 변모했습니다. 각종 비리 투성이의 총리 후보자가 간신히 청문회를 통과하자 야당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도와주지 못해 가슴이 아팠다"며 총리와 부등켜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지경이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한마디로, 제1야당으로 여당을 견제하고 집권할 의지도, 능력도, 정책도 없는 것이 현재의 새정연입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지난달 2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이완구 총리의 예방에 인사말을 하다 울먹이자 이 총리가 우 원내대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함께 울먹이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들어 문재인 대표의 컨벤션효과와 박근혜 정부의 실정으로 그나마 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아니 이 같은 일시적인 지지율 상승에 도취되어 또 뼈를 깎는 혁신을 미루다가 다시 한 번 대권을 헌납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현실이 이러하거늘, 세월호의 유가족으로부터 쌍용차의 노동자들에 이르는 국민의 눈물을 외면하는 현재의 야권을 혁신해 국민의 논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정치를 복원하고 정권교체를 이끌어내려는 국민모임이 어떻게 야권분열입니까? 오히려 이 같은 야권혁신 움직임을 야권분열을 몰고 감으로써 희망이 없는 '2중대 야당'의 기득권 옹호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야권의 자살'을 방조하고 새누리당의 또 한 번의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요?

국민모임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기존 진보정당으로부터 정동영 전 장관에 이르는 다양한 진보적 정치세력을 모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함으로써 야권을 교체하고 이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따라서 일각에서 우려하듯이 '정동영당'으로 나가거나 정반대로 '도로 민주노동당'으로 나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정 전 장관의 정치생명에 대한 권 고문의 경고에 대해 답하는 것이 만에 하나라도 '국민모임=정동영당'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그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도대체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있기에 몇 가지 답하고자 합니다.
국민모임의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저와 국민모임의 부름에 응답해 새정연을 탈당한 '정동영의 정치생명'(세속적인 의미의)이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민모임의 성공을 자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새정연에 앉아있는 순간 정 전 장관의 정치생명은 이미 끝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 전 장관도 권 고문처럼 고문자리나 즐기거나 야권분열을 비판하고 있으면 상임고문 자리는 지키고 잘 하면 다음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정치인'이 아닙니다. 세월호와 연말정산 야합에 대해 침묵하면서 당의 대표가 '비리총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야당의 고문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정치생명이 유지되는 것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건 이미 '정치'가 아니며 '정치인'도 아닙니다. 사실 새정연은 '정치인'이 모인 '정당'이 아니라 '정치라는 직업을 가진 자영업자들의 연합체'에 불과합니다.

아닙니다. 권 고문이 의미하는 '정치인 정동영'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정치인 정동영'하면 대부분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까지 지낸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저는 과거 여러 칼럼에서 비판했듯이 '잘 나가던 정치인 정동영'은 잘한 것도 많지만 잘못한 것도 많은 '결점투성이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전장관이 2010년 현재의 민생파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문을 발표하고 여의도를 떠나 용산과 쌍용차, 세월호 등 가장 고통받는 민초 속으로 내려와 같이 하기 시작했을 때, 세속적인 의미의 '정치인 정동영'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눈물을 같이 하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새로운 정치인 정동영'이 새로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탄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본인의 변심에 의해, 아니면 객관적 조건에 의해 미완의 프로젝트로 끝날 수 있습니다.
권 고문님, 이제는 상당히 달라진 현실정치에 대한 섣부른 훈수보다는 1987년과 1995년 분열과 같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솔한 회고와 반성에 대한 책을 쓰셔서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아주는 것이 하셔야 할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권분열 운운하시기 전에 한 번 세월호 현장, 쌍용차 현장에 내려가 국민의 신음소리를 직접 듣고 국민의 눈물을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야권분열'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이는 권 고문만이 아니라 문재인 대표와 새정연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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