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대한민국, 특히 강원도 평창은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평창이 3번째 시도 끝에 드디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환영하며 강원도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회까지 3년이 남은 지금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환경파괴는 물론이고 예산, 사후활용계획 등의 문제로 인해 아직까지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가 ‘AGENDA 2020’을 발표함에 따라 평창동계올림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왜 IOC는 원칙을 깨뜨렸는가?
올림픽은 전통적으로 1도시 개최가 원칙이다. 월드컵의 명칭에는 국가 이름이 붙는 것과 달리 올림픽의 명칭에는 도시 이름이 붙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IOC는 지난 12월 'AGENDA 2020'을 발표하며 분산개최가 가능하다고 선언하였다. 같은 나라의 다른 도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까지 개최가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IOC는 왜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올림픽이라는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환경파괴와 재정악화다. 먼저 올림픽은 대규모 시설 공사로 인해 환경파괴를 필수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특히 동계올림픽의 경우 특성상 산지에서 진행되는 경기가 많아 훨씬 더 심각한 환경파괴를 가져온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가리왕산이다. 기존의 스키장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던 산을 파헤쳐 경기장을 만드는 경우는 근래 들어 가리왕산이 처음이다. 두 번째로 재정악화이다.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에는 항상 거대한 경제효과가 뒤따르고 이것이 곧 지역발전으로 이어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역대 올림픽 중 흑자를 기록한 올림픽은 1984년 LA올림픽이 유일하다.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림픽을 치른 나라들은 환경파괴와 재정 악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캐나다 밴쿠버는 5조 원의 적자를 남겼으며 2014년 개최지인 러시아 소치는 50조 원의 거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그 대부분이 적자로 남았다. 많은 나라가 올림픽과 같은 대형스포츠 경기를 유치해봤자 남는 것은 환경파괴와 빚더미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유치를 꺼리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독일 뮌헨과 스위스 생모리츠는 주민투표를 통해 유치 신청을 포기했고 노르웨이 오슬로는 의회 차원에서 유치를 포기했다. 이렇듯 올림픽 유치에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IOC에서 자구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분산개최다. 다른 도시에 이미 구성되어 있는 기존 경기장과 인프라를 활용하여 새로운 시설 건설에 따른 재정 부담을 한 도시에서 부담하지 않도록 해 올림픽 유치에 좀 더 많은 도시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단 3일을 위해 잘려나가는 500년 원시림
가리왕산은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으며 높이 1561미터로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수백 년 된 주목을 비롯하여 왕사스래나무, 분비나무, 마가목 등 우량한 희귀수목들과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도깨비 부채 등 희귀식물의 보고이다. 조선시대부터 국가에서 관리하며 높은 생물 다양성 가치를 인정받은 곳으로 2008년에 2475헥타르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해왔다. 하지만 2012년 6월 평창동계올림픽 활강 경기장 부지로 가리왕산이 결정되었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여러 대안지를 제시했지만 활강 경기장의 표고차가 800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하는 곳이 가리왕산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표고차 800미터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국제스키연맹(이하 FIS) 규약집에 명백하게 2 RUN에 대한 규정이 있다. 개최국의 지형 여건상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없다면 2번에 나누어 뛴 결과를 합산하여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굳이 가리왕산을 훼손하면서 경기장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스키장을 활용하여 충분히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 2 RUN 규정의 적용에 대해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원회)와 FIS는 2 RUN 규정은 올림픽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FIS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 규약집 어디에도 올림픽 경기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규정이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올림픽에는 2 RUN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쳐도, 지금은 새로운 대안이 생겼다. 분산개최를 통해 무주 활강 경기장, 일본 나가노 활강 경기장 등 기존 시설들을 보수하여 올림픽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환경파괴도 줄일 수 있고 예산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가리왕산에 활강경기장을 건설하는 비용만 1095억 원이고, 강원도 측에서는 복원비용도 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건설비용도 공사 과정에서 얼마나 증가할지 모르고 복원에 들어가는 시간과 훼손된 산림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단 3일간의 활강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 500년 원시림을 잘라내고 있는 것이 바로 평창동계올림픽의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강원도는 파산할 것
재정자립도 전국 17곳 중 15위, 부채 비율 17곳 중 4위. 이것이 강원도의 현실이다. 강원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1조6836억 원을 들여 알펜시아 리조트를 건설했다. 하지만 현재 9800억 원의 빚만 남은 채 이자만 하루에 1억 원 이상씩 지출하고 있다. 강원도는 알펜시아로 인한 빚을 제외하고도 2014년 기준 5800억 원의 부채를 지고 있으며,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향후 3년간 약 3000억 원의 지방채를 추가로 발행할 예정이다.
2018년이 되면 약 2조 원의 부채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강원도민의 세금과 국민의 세금에서 나가는 돈이다. 개·폐회식장을 포함한 7곳의 신규 경기장 건설에 7553억 원이 투입되지만 이 중 사후 활용이 확정된 곳은 단 2곳뿐이다. 이에 대해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방법을 찾아보고 안 되면 나중에 철거하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한 도를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 할 말인가? 6시간의 개·폐회식을 위해 1300억 원을 들여 새로 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묻고 싶다. 올림픽을 통해 국위선양을 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옛 이야기에 불과하다.
국내 비슷한 사례로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 게임을 들 수 있다. 13조 원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기존 시설물을 활용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경기장 건설에만 약 1조3000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결과는 1조 원이 넘는 빚더미였다. 결국 인천시는 공공요금 인상계획을 발표했다. 휘황찬란했던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자신들의 무책임한 행정을 결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강원도보다 훨씬 재정이 튼튼했던 인천시마저도 이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의 무분별한 계획에 따른 시설투자는 결국 강원도를 파산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강원도민들이,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지난 2월 10일~14일 사이에 일본의 지역경제 전문가인 에자와 마자오 씨가 녹색연합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에자와 마자오 씨는 '올림픽 필요 없는 사람들 네트' 대표이며 '올림픽 유치활동 교부금 반환소송 재판' 원고단 대표를 맡아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문제점에 대해서 꾸준히 활동했던 분이다. 당시 나가노 금융연구기관은 나가노 동계올림픽으로 1조5000억 엔의 비용이 들지만 2조3000억 엔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며 8000억 엔의 흑자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임이 곧 드러났다. 1985년 나가노 시의 빚은 400억 엔이었는데 올림픽을 개최한 1998년에는 1900억 엔으로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나가노 시는 17년 동안 단 300억 엔의 빚밖에 갚지 못한 채 여전히 1600억 엔이라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나가노 현의 경우는 1985년 부채는 4000억 엔이었으나 1998년 올림픽을 치른 후 무려 1조 엔이 늘어나 1조4000억 엔으로 증가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나가노 현은 나가노 시와는 다르게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었을까? 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부채가 1조6600억 엔으로 늘어났다. 부채 규모가 재정 규모에 비해 워낙 거대하다보니 신규 사업들을 진행하지 못하는데도 빚을 돌려막기에 급급해 점점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말하는 올림픽 유산을 보기 위해 현재 나가노를 찾는 사람은 없다. 나가노를 보면 평창이 어떤 길을 가야할지는 답이 나와 있는 셈이다.
분산개최가 정답이다
분산개최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분산개최는 있을 수 없다며 못을 박았다. 이미 착공이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매몰비용을 무시할 수 없고 각 경기마다 올림픽 이전 테스트 이벤트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시기상 늦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산개최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아직 신규 경기장들의 착공률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건설비용뿐만 아니라 이후 시설에 따라 철거, 복원하는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들인 비용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적게 든다. 또한 기존의 시설을 보수하는 것과 토목공사부터 시작하여 새로 시설을 건설하는 것 중 어느 것이 건설 기간이 짧겠는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최대한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하고 앞 다퉈 유치를 포기하려고 하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는 IOC의 분산개최 제안마저 거부한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고 했다. IOC에서도 분산개최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지금이야말로 적기인 것이다. 가리왕산에 토목공사가 들어가 복원 가능성이 더 낮아지기 전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하루 빨리 분산개최에 대한 논의테이블을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분산개최를 추진해야 한다.
분산개최를 통해 환경파괴와 재정부담을 줄이는 것이 강원도가 사는 길이고 평창동계올림픽이 사는 길이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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