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인'이다. 특히 한국의 중심인 '서울인'이었다가 변방의 인간이 되었기에 그 경험에서 오는 간극은 소외감, 박탈감, 때론 분노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강원도민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나는 경험적으로 동감한다.
사실 최근 전국의 지자체들이 스포츠메가이벤트를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국토의 불균형 발전 때문이다. 현실은 지긋지긋한데 방법은 없고, 그래서 결국 '하이 리스크'를 무릅쓰고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것만 같은) 메가이벤트 유치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모하게 덤벼드니 덤벼드는 족족 망할 수밖에 없었다. '대박' 노리다가 모두 '쪽박'만 찼다. 사실 이 문제는 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최 3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평창동계올림픽을 놓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따져 물어야 할 것들이 있다.
조직위의 적반하장
조양호 평창조직위 위원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천재지변이 없는 한 분산개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분산개최를 논의하는 것은 국민 혼란을 부르고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온 국민이 염원했다던 올림픽을 준비하는데 국민적 혼란이 일어나고 국제적 신뢰도가 떨어질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과연 누구 때문일까. 경기장 재배치를 주장하는 학자, 시민단체, 언론사들 때문인가? 아니면 개최 확정 후 4년이 지나도록 빙상장 설계도도 확정짓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스노우보드와 프리스타일 경기장도 어디로 정하느냐를 가지고 지금도 오락가락하며, 개폐막식장도 애초 알펜시아에서 강릉으로, 그리고 또다시 인구 4000명의 횡계리에 1000억 원 들여 새로 짓겠다고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논란을 키운 조직위 때문인가?
말은 바로 하자. 결국 분산개최 이야기가 나오자 강원도의회는 분산개최하면 올림픽을 반납해 버리겠다며 '깽판 불사'의 자세로 나왔고, 언론에서는 이대로 가면 "200% 실패," "대를 이어 빚 갚아야" 등의 질책이 잇따르는 이 '천지창조'급 혼란의 와중에, 새로 지은 스키점프 경기장이 알고 보니 선수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해 지난 달 열려야 했던 동계체전 스키점프를 취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이 모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조직위 말고 도대체 누구 잘못인가. 국민 잘못인가?
천재지변? 혈세낭비는 우습나?
나는 '분산개최는 늦었다'고 주장하는 평창조직위를 향해 욕이라도 날리고 싶다. 평창이 올림픽 유치에 나선 것이 2000년이다. 무려 15년 전이다. 평창은 2003년 첫 도전에 이어 2007년 두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하고 2011년에 드디어 그 꿈을 이룬다. 세 번째에야 성공했으니 그만큼 준비는 오래했을 터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무려 15년을 준비한 것이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말이다.
그리고 평창에게는 귀한 교훈을 준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2002년 부산과 2014년 인천에서의 아시안게임, 2012년 여수엑스포, 2013년 충주조정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전남 영암의 F-1 자동차경주 등 숱한 대형 이벤트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전 과정을 샅샅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이벤트 모두 폐막 후 지자체에 엄청난 빚더미를 안겼다. 엄청난 혈세 뿐 아니라 국가의 행정력까지 낭비된,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사례들이었다. 그런데 올림픽은 이들 대회보다 20배에서 100배가 큰 행사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의 이러한 참담하고도 안타까운 결과 평창조직위에겐 금과옥조가 되었어야 하는데 조직위는 이러한 사례들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도, 배우지도 못한 것이다.
이렇게 게으르고 무능한 것마저도 참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 사람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인 이유가 따로 있다. 평창 측은 경기장 재배치 문제만 나오면 "이젠 너무 늦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작년 12월 IOC가 분산개최를 허락한 이후 올해 들어서야 전문가 및 시민단체들이 분산개최(또는 경기장 재배치)를 요구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개최비용 절감을 위한 기존 경기장 활용, 이를 위한 경기장 재배치 등은 수년 전부터 있어왔던 주장이다.
2007년부터 경고했다. 이제까지 뭐했나!
동계올림픽의 경제효과를 60조 원이라고 떠들고 다니기에 하도 기가 막혀서 내가 올림픽 등 스포츠메가이벤트의 경제효과에 대한 실상을 알리는 칼럼을 처음으로 <프레시안>에 게재한 때가 2007년이다. 나 외에도 해운대해수욕장의 모래알만큼 많은 전문가와 기자들이 올림픽의 허와 실을 알렸고 폐막 후 빚더미에 올라앉지 않으려면 기존 경기장 활용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충고했다. 또 이를 위해 IOC와 협상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 협상가능하다고 다양한 지면과 토론회를 통해 제안했다. 그런데 조직위는 무려 8년 동안이나 이러한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제안들을 모조리 무시해왔다.
가리왕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직위는 스키 활강슬로프 재배치 주장도 너무 늦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가리왕산 문제도 최근에야 등장한 것일까. 아니다. 평창이 2차 도전을 준비하던 시기, 그러니까 무려 5년 전인 2010년에 이미 문제제기가 있었다. 당시 유치위원회가 가리왕산을 활강경기장으로 결정하자 녹색연합 등은 조선시대 왕실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이후 500년간 보호되어 온 가리왕산을 단 사흘간의 행사를 위해 깎아낼 수는 없다며 대체 슬로프 지정을 요구한 바 있다. 무주 이야기는 그때부터 나왔다. 알아보니 가까운 용평스키장에서도 기술적으로 표고차 문제를 해결하면 할 수 있다고 한다.
가리왕산을 '도둑벌목' 한 자 누구인가
가리왕산이 문제가 되자 동계올림픽추진본부 측은 벌목에 대한 최종적 인허가가 나기도 전인 작년 8월 시공사 측에 빨리 벌목을 시작하라고 독촉을 해 무단으로 불법벌목에 독촉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결국 이들이 원했던 것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버티다가 일을 되돌릴 수 없도록 분탕질을 쳐버리는 것 아니었을까.
이들이 한심(하거나 뻔뻔)스러운 이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창 측은 예산낭비와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 실속 있는 올림픽 준비를 위해 IOC와 협상을 벌일 책임이 있었다. 일례로 일본의 동경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준비를 하면서 열 개 가까운 경기장을 재배치해 1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절약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때도 요트경기는 서울 인근에 새 경기장을 짓지 않고 부산 해운대에 지었다.) 그러나 평창조직위는 아무런 협상을 하지 않았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렇게 버티는 조직위를 보다 못해 작년 녹색연합이 FIS의 규정에서 투런 규정 및 표고차 750미터 등 예외규정을 찾아내 이를 알려주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조직위는 이에 대해 '협상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평창조직위가 이제까지 허송세월하는 동안에도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끊임없이 올림픽을 공부하고 경고했을 뿐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하고 조직위가 찾아야 할 경기규정까지 대신 찾아 알려줬음에도 이들은 정착 '올림픽 개최준비'는 하지 않고 국고예산 따내기에만 혈안이 됐었고 토목공사 벌이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하는 소리가 "이젠 너무 늦었다"이다. 나도 한 마디 하겠다. "그 입 다물라!"
15년 준비한 '아수라장 올림픽'
올림픽 개최는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가 규모에서 올림픽 개최는 그 비용을 온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 엄청난 국가 예산 수십조 원을 쓰겠다면서 이제까지 해놓은 것은 들여다보니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그런데 최근 한 언론사가 남·녀 아이스하키장, 가리왕산 활강장, 피겨·쇼트트랙 빙상장 등 4곳만 옮겨도 공사비만 3658억 원 줄일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했음에도 조직위는 이를 단박에 퇴자를 놓았다. 그 뻔뻔스러움은 앞으로 이들이 낭비할 국고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다.
얼마전 한 강원도 관계자는 "어쩌다 올림픽 혹은 올림픽 정신이 음모의 틀에 침식당하게 된 것일까. 또한 올림픽 유치가 주는 무형의 자산은 어디로 갔는가"며 한탄했다. 그런 것 가지고 안타까워할 필요 없다. 오랜 시간 IOC에 세뇌 당해서 나오는 증상일 뿐이니 염려 말라. 올림픽정신, 그런 거 없다. 올림픽 전문가인 나도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그게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무형의 자산? 아무리 뒤져 봐도 빚더미 외엔 '유형의 자산'을 찾을 수 없게 되자 IOC가 만들어낸 말장난이다. '무형의 자산'은 아마도 조직위 측이 컨설팅을 많이 구했을 스포츠마케팅 전공자들이 할 말 없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거시기'한 것이다.
IOC는 언어조작 집단이다. IOC는 원래 그렇게 존경할 만한 집단이 아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집단도 아니다.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은 극도의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오죽하면 히틀러가 쿠베르탱을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겠는가. 세계평화? 쿠베르탱의 이상은 유럽 백인국가들 간의 평화였다. 또 그는 여성혐오자였다. 그래서 초기 올림픽 대회는 여성의 올림픽 출전이 금지했었다. 올림픽 역사는 정치와 테러와 보복의 역사였고 억압과 독재를 합리화 하는 수단이었으며 지금은 자본의 저질스러운 돈벌이 공간으로 전락했다. 지금의 IOC는 자기 자본은 한 푼도 없이 개최권을 가지고 국가 간 경쟁을 붙여 그것으로 돈을 벌어먹고 다니는 나라마다 칙사 대접을 받고 사는 집단이다. 봉이 김선달들의 모임이라 보면 된다.
올림픽 정신이나 무형의 가치를 떠들어 대는 것이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자 개풀 뜯어먹는 소리이다. 세계평화? 올림픽이 없는 게 차라리 세계가 평안하다.
지금 '개콘' 찍나
지금 조직위가 일하는 자세는 한 마디로 자기 돈 아니니까 막 하겠다는 것 같다. 한마디로 '니 돈이니까 정신'이다. 개최준비 15년에 13조 원을 쓰면서 지금 설계도도, 경기장도 확정 못하고 폐막 후 1000억 원 넘게 들어간 경기장을 그대로 쓸지 아니면 또 1000억 원을 들여 해체할지도 결정 못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지금 '개콘' 찍나.
이제까지 조직위가 해온 짓을 보니 계속 끝까지 밀어붙여 분산개최 없이 갈 듯하다. 나도 그 정도의 뻔뻔함에는 두 손 들었다. 그러나 수십조 원의 혈세낭비, 막대한 경기장 관리운영비와 폐막 이후에 불어 닥칠 '포스트올림픽슬럼프'는 "분산개최는 없다"고 못 박은 박근혜 대통령, 최문순 도지사,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평창동계올림픽은 역사상 유래 없이 관중석이 텅 빈 가운데 진행된 올림픽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이 내가 분산개최를 주장한 또 다른 이유다. 대구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부산과 인천의 아시안게임도 모두 관중동원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런 대도시들도 관중동원에 실패해 텅 빈 관중석을 전세계에 드러내 보였는데 강원도에서 벌어지는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강원도민들이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은가. 한국에서는 평소에 하지도 않고 룰도 모르는 게 동계 스포츠다. 부산, 대구, 인천 모두 중고등학생들까지 동원했지만 이것으로도 턱없이 부족해 거의 '무관중 경기' 수준이었다. 그래서 언론이 그냥 망신도 아니고 '대망신'이라고 했던 것이다. 군대를 동원하면 몰라도 이 문제만큼은 분산개최 아니면 답 없다. 싫으면 말고.
강원도민들은 최근 분산개최 말만 나오면 조직위 앞으로 분뇨를 실은 트럭을 몰고 가서 시위를 하고 분신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국가정책을 여론만으로 결정해서야 되겠는가. 강원도민들이 원하는 것은 뻔하다. 사회기반시설이다. 광역교통망 국책사업은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강원도민을 다독이고 경기장들은 재배치하는 것이 체면도 차리고 실속도 차리는 유일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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