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이 중재한 우크라이나 평화, 지속될까?

[주간 프레시안 뷰]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짜 배경

우크라이나 내전 종식을 위한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 간의 평화협상이 12일 오전(현지시각), 17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타결됐습니다. 15일 자정을 기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동부 분리주의 반군 간의 교전 행위를 전면 중지하며, 양측은 2주일 내에(2월 28일까지) 전선에 배치된 중화기들을 50~100킬로미터(km) 후방으로 후진 배치한다는 것이 휴전 합의의 골자입니다. 우크라이나 군은 현 전선을, 동부 반군은 지난해 9월 휴전 협정 당시의 전선을 기준으로 해서 100밀리미터(mm) 이상의 대포는 50km, 다연장로켓포는 70km, 미사일 등 장거리 중화기는 100km 이상 후방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전협정의 이행 여부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감독하기로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교전 당사자인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지도자 알렉산드르 자카르첸코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지도자 이고르 플로트니츠키도 회담 장소인 벨라루스 민스크에 도착해 이 같은 협정 내용을 추인했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4월 이후 54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우크라이나 내전은 일단 봉합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해 9월 5일의 '민스크 평화 협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전례가 있는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유로 한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어 우크라이나 내전의 앞날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교전이 가장 치열한 데발트세베 일대에서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기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주 '주간 프레시안 뷰'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평화 협상은 독일 메르켈 총리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간신히 성사됐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6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한 데 이어, 9일에는 워싱턴으로 건너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무려 4시간의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1일에는 벨라루스에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푸틴, 올랑드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 내전 종식 방안을 논의했습니다.(하단 '우크라이나 사태' 일지 참조)

메르켈 총리가 이토록 긴박하게 움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내전이 미·러 간 군사 대결로 치닫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1월 말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올해 들어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나토 국가들의 국경 부근을 43차례나 근접 비행하는 등 서방과 러시아 간 군사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무기 지원이 단행될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국제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경우 러시아와 독일 등 서유럽 관계도 악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에너지를 비롯한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도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 최대 경제 강국인 독일로서는 이중의 피해를 입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메르켈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군사적 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 차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유럽의 평화와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 확대를 원하는 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발판으로 푸틴 정권을 약화 내지는 붕괴시키길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도 서방과 러시아 간에는 중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등 서방측은 지난 해 3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과 동부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을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이 탈냉전 이후 은밀한 공작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을 시도해왔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2004년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권을 세운 이른바 '오렌지 혁명', 그리고 지난 2월 친러시아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망명의 배후에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방의 진보적 언론인, 지식인들도 이러한 러시아의 관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진보적 영화감독이자 독립 언론인 올리버 스톤은 지난해 12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제의 근원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이 아니라 '미국의 우크라이나 개입'이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모스크바에 망명 중인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장시간 인터뷰를 한 그는 야누코비치 망명 원인이 된 이른바 '마이단 학살'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마이단 학살'은 지난해 2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반정부 시위대 저격으로 경찰 14명을 포함해 총 88명이 사망한 사건을 말합니다. 야누코비치는 이 사건 직후 다음 날, 돌연 모스크바로 망명했고 정권은 친서방 정치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당시 서방 언론들은 저격범의 배후가 야누코비치 정권이라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그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톤은 이미 2월 21일 야당 정치인 및 유럽연합 3개 국가 외무장관들에게 조기 총선을 통한 권력 이양을 약속한 야누코비치가 시위대를 저격할 이유가 있었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지난 2002년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일시 실각을 불러온 쿠데타나 지난해 초 후임 마두로 정권 타도를 노린 폭력사태의 배후에는 CIA를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의 은밀한 개입이 있었다며 '마이단 학살'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그의 관측이 지나치게 음모론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보다 큰 그림을 보라'며 미국 정보기관과 우크라이나 극우 세력의 유착은 2차 대전에 이를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2차 대전 당시부터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파시스트 및 극우 세력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 지난 1월 1일 올리버 스톤 감독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미지. ⓒ올리버 스톤
"미국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관한 큰 그림을 보려면 초대 미 국방장관이자 대소 강경파였던 제임스 포레스탈이 1949년 우크라이나의 극우 세력들로 '나이팅게일'이라는 이름의 유격대를 창설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유격대의 모체는 1941년 나치가 만든 민병대였으며 이들은 당시 소련 영토를 헤집고 다니면서 우크라이나 독립에 반대하는 러시아인, 유대인, 폴란드인 수천 명을 살해했다.

1949년부터 5년간 CIA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특공대를 우크라이나에 침투시켰는데, 이는 미국 특공대가 캐나다나 멕시코에 침투하는 것과 똑같은 중대한 주권 침해 행위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교두보로 삼아 러시아를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냉전 2.0은 치명적 양상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사실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알든 모르든, 가장 큰 피해는 이들이 입고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 페이스북)

한마디로,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미 정보기관과 우크라이나 극우 세력의 합작에 의한 민주 정부 전복 공작이라는 게 올리버 스톤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일부 서방언론도 야누코비치 정부 전복의 배후에 극우 세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 29일 영국 언론 <가디언>은 "반정부 시위 및 정부청사 공격의 중심에는 극우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있다"면서 특히 극우 정당 '스보보다(자유)'를 지목했습니다.

대부분의 서방언론들은 '스보보다'가 소수 세력에 불과하다면서 그 영향력을 깎아내리고 있지만, 실상은 이와 다릅니다. '스보보다'는 2012년 총선에서 득표율 10.45퍼센트(%)로 국회 의석 450석 중 36석을 차지했습니다. 친서방 세력이 우세한 서부 일부 지역에서는 득표율 40%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2월 야누코비치 망명 직후 구성된 임시 정부에서 부총리와 교육부, 농업부, 환경부 장관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결코 소수 세력이 아니라는 얘기죠.

더욱 중요한 것은 '스보보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2차 대전 당시 나치 편에서 대소(大蘇) 전쟁을 벌였던 파시스트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2차 대전 당시 '갈리시아'로 불리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나치 친위대(SS)가 지배했습니다. 당시 SS는 전원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1사단을 SS 직속의 14사단으로 개편해 대소 전쟁에 동원했습니다. '갈리시아 사단'으로 불리는 이들 우크라이나 파시스트들은 철저한 반공 및 반유대주의자들로 우크라이나에서만 유대인 8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들은 유고슬라비아의 반나치 빨치산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2차 대전의 전쟁 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이들은 '범죄 조직'으로 지목될 정도였습니다.

(☞ The Dark Side of the Ukraine Revolt)

2차 대전이 끝난 후, 이들 극우 세력은 미 정보기관의 비호 아래 미국 등 서방으로 망명했습니다. 다가올 소련과의 대결에서 이들을 반공 전선의 첨병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죠. '스보보다'의 모체는 1920년대에 결성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기구(OUN)'라는 조직입니다. 미국은 OUN을 비롯해 루마니아의 '강철 수비대(Iron Guard)', 헝가리의 '애로우 크로스(Arrow Cross)' 등 1920~30년대에 태어난 동유럽 파시스트 조직의 조직원 수만 명을 미국 등 서방으로 탈출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대소 항쟁에 동원합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반카스트로 쿠바인들을 카스트로 정부 전복에 활용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2차 대전 종전을 전후로 미 정보기관과 나치 세력 간의 은밀한 반소 협력은 꽤 알려진 편이지만, 동유럽 파시스트 세력과의 유착 실상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1991년 러스 벨란트라는 분이 <구(舊)나치, 신(新)우파, 공화당>이라는 책을 통해 동유럽 파시스트 세력과 미 공화당 간의 유착 실상을 밝히면서 비로소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벨란트에 따르면, 미국은 아이젠하워 정부 때부터 이들을 대소 선전 및 침투 공작에 활용했으며, 국내 선거에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동유럽계 유권자들의 표를 모으기 위한 것이었죠. 특히 닉슨은 이들을 공화당 조직의 정식 멤버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아가 이들의 나치 부역 혐의를 밝혀내기 위한 미국 조사기관의 수사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벨란트의 책이 나온 직후 당시 부시 정부는 이들과의 연계를 부인했지만, 이들의 과거 나치 협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냉전이 종식된 후 이들은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으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과거의 조직을 복원했습니다. 앞에 말한 OUN의 창시자인 스테판 반데라를 국부(國父)로 모시고 있다는군요. 우크라이나의 파시스트 세력은 유럽 다른 나라의 극우 정당들과도 연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 유럽에서 불고 있는 신나치 등 극우 세력의 부활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반공 투쟁을 위해 파시스트 세력을 비호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미국의 반러시아 계획이 포기되지 않는 한, 유럽의 극우 바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Seven Decades of Nazi Collaboration: America’s Dirty Little Ukraine Secret
An interview with Russ Bellant, author of “Old Nazis, the New Right, and the Republican Party.”)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일지

△ 2013. 11. 30
빅터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유럽연합(EU) 가입 철회로 수도 키예프에서 반정부 시위 시작됨

△ 2014. 2. 20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서 제복을 입은 정체 불명의 저격수들이 시위대 및 경찰들을 저격. 이틀간 경찰관 14명을 비롯해 88명 사망함.(마이단 학살) 70년만의 최악 유혈사태

△ 2. 22
친러시아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 모스크바로 망명. 반정부 시위대 지도자와 야당 정치인들, 총선 통해 새 정부 구성키로 합의

△ 2. 27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의 친러시아 민병대 지방정부 청사 점거

3. 16
크림반도 주민투표. 97% 찬성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벗어나 러시아에 합병하기로 결정.

△ 4. 6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주민,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방정부 청사 점거하고 주민투표를 통한 독립국가 건설 결정

△ 4. 15
우크라이나 정부, 동부 친러시아 반군 겨냥한 ‘반테러 작전’ 개시

△ 5. 11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주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주민투표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 선언

△ 6. 7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에 취임

△ 6. 27
우크라이나, 유럽연합에 가입

△ 7. 17
말레이시아 민간 여객기 MH117,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미사일에 피격, 탑승객 298명 전원 사망

△ 7. 30
미국과 유럽연합,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발표

△ 8. 22
트럭 100대 분의 러시아 지원물자 동부 우크라이나 반군 측에 전달됨.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측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

△ 9. 5
우크라이나 정부와 동부 반군,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휴전협정(민스크 협정) 서명

△ 9. 12
미국, 러시아 석유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

△ 10. 12
푸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주둔 중이던 수천명의 러시아 병사 철수 명령

△ 10. 31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재개

△ 11. 3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역 자체 선거 통해 지도자 선출. 도네츠크 주에서는 알렉산데르 자카셴코(38)가, 루한스크 주에서는 그레고리 플로트니스키가 선출됨. 우크라이나 정부와 체크, 폴란드, 헝가리 등은 불법선거로 무효라고 주장

△ 12. 1
푸틴, 터키 방문. 유럽연합의 반대로 불가리아 경유가 좌절된 가스관 프로젝트 사우스 스트림의 경유지를 터키로 바꿈

△ 2015. 1. 12
반군, 대정부 공세 재개. 전략적 요충지인 도네츠크 공항 장악

△ 2. 6
메르켈 독일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모스크바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

△ 2. 8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 화상 회담

△ 2. 9
메르켈 워싱턴 방문 오바마 대통령과 4시간 동안 회담. 4개국 실무자 베를린에서 실무협상

△ 2. 11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등 4개국 정상 민스크에서 휴전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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