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연말정산'에 분노하나?

[해설] 진보 지식인과 야당의 엇박자, 뜯어보니…

'13월의 보너스'로 불렸던 연말정산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2013년 말 이뤄진 세제 개편의 내용이 이번에 처음 적용되면서 '13월의 세금폭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여당은 연 소득 5500만 원 이상은 '증세' 효과가 있지만, 연 소득 3500만 원에서 5500만 원 사이의 세금은 이전과 변하지 않고, 3500만 원 이하는 오히려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실제 연말정산이 시작되니, 연 소득 5500만 원 미만의 사람들도 2013년에 비해 세금을 더 내는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은 "서민 증세"라며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진보' 성향의 전문가들도 현재의 소득세법 개정 방향이 옳다고 밝히는 등 전선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분노하는 것일까?

연말정산, 진짜 '서민 세금폭탄'인가?

연말정산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야당이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친기업·친부자'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서민들만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재정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두둔하고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인 오건호 박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건호 박사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핵심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건 기존의 역진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세금 절감 방식을 하후상박적으로 재조정한 것이기 때문에 전향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세법 개정으로) 두 가지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공제의 역진성을 바로잡아 중상위 계층 이상자부터 소득세를 누진적으로 더 내게 했고, 이 과정에서 연간 9000억 원 정도 증세가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바뀐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와 진짜 서민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는 방향이라는 얘기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도 "입만 열면 '부자감세 철회'를 외치던 사람들이 부자감세를 철회하여 상위 계층 세금이 늘자 '서민증세'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헌호 소장은 "이게 서민 증세면 MB 정부의 소득세 감세도 부자감세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

"세수 추계는 정확하지 않고, '연중 원천징수 줄여 경기 활성화' 정책도 안이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격하게 분노하는 것일까? 처음 논란은 정부의 세수 추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데서 시작됐다. 정부 주장과 달리 저소득 근로자도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다자녀가구, 미혼 가구의 경우 연 소득이 적은데도 세금이 2013년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납세자연맹은 "다른 공제가 없는 연봉 2360만 원에서 3800만 원 사이의 미혼 직장인은 최고 17만 원이 증세되고, 작년에 자녀가 출생한 연봉 5000만 원의 직장인은 31만 원 증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6세 이하 자녀가 2명 이상 있거나 부양가족공제를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도 외벌이보다 증세가 많이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이 단체는 덧붙였다.

▲납세자연맹이 지난해 8월 정부의 세수추계 오류 검증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주장과 이 단체의 예측이 다른 이유는 기획재정부 시뮬레이션이 소득계층별 평균값 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20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오류를 사실상 인정했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기획재정부는 평균값만 보고 연 5000만 원 수입의 가구는 평균 5만 원이 늘어난다고 발표했지만, 개별 가구로 보면 20만 원이 느는 가구도 있을 수 있다"며 "국민들의 조세 감정을 생각한다면 (이런 내용을) 미리미리 정부에서 설명했다면 조금은 더 저항이 줄어들 수 있었을텐데 지금 세제 행정이 너무 투박한 감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연중 원천징수를 적게 하고 연말정산에서 안 걷었던 세금을 다 징수하도록 바꾼 것도 '체감 증세' 효과의 한 원인이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근거로 이같은 정책을 도입했지만, "안이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연중 원천징수를 적게해 그 돈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정책을 추진한 경제관료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꼬집었다.

담뱃세 오르고 주민세·자동차세·공공요금까지 줄줄이 인상 예정…'체감 증세' 근거 있다

'체감 증세' 효과가 나타나는 또다른 원인은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 외에도 담뱃세, 공공요금 등이 연초에 인상됐거나 인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2000원 담뱃세가 인상된 데 이어, 정부는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도 추진 중이다.

공공요금 인상도 눈 앞에 닥쳐 있다. 서울시와 인천시, 대구시 등이 지하철과 버스 요금 인상을 검토 중이다. 상하수도 요금도 인상 움직임이 있고 정부는 고속도로통행료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공공요금의 인상은 당연히 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바뀐 근로소득세법은 '부자 증세'의 측면이 크다"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세금은 단순히 근로소득세만이 아니기 때문에 분노가 확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석현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도 이런 점을 감안해 "1월 담뱃세 인상, 2월 연말정산 폭탄, 3-4월 이사철에는 전월세폭등이 예정돼 있다"며 "여기에 주민세, 자동차세까지 올린다고 하니 정부는 서민의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당초 정책을 내던진 것이냐"고 비판했다.

정부여당 비난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소득세법도 담뱃세 인상도 다 합의해줘 놓고…

정부 여당을 비난하는 새정치민주연합도 사실 분노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담뱃세 인상부터 이번 소득세법 개정안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두 '동의'해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야당 간사인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일 "예산하고 부수되기 때문에 12월 31일 타결되지 않으면 이른바 '국정 마비'가 예상돼 어쩔 수 없이 합의해준 것"이라며 "정부가 다수로 밀어붙이니까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해서도 홍 의원은 "국회법을 이용해 저희와 상의도 없이 그냥 담뱃세 인상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국회를 보이콧 하더라도 정부 여당쪽의 주장이 반영된 정부 예산안이 자동 부의되는 국회 선진화법 조항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단 얘기다.

그러나 그 문제의 국회법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법이다. 스스로 통과시킨 법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우스운 모양새인 것이다.

담뱃세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면, 양보의 댓가로 얻어내는 것이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기력했다. 스스로 담뱃세 인상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법인세 인상' 요구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홍헌호 소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은) 담뱃세 인상으로 5조 원 이상의 재원이 확보된다면 이 중에서 최소한 1조~2조 원은 저소득층 서민들 복지재원이 되도록 여야 합의를 이끌어 냈어야 한다"며 "그러나 지방정부 전시행정과 의료계 요구가 중요했던 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담뱃세 인상을 양보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연말정산은 1000 사람의 피요, 기업에 깎아준 세금은 만 백성의 기름"(김경협 의원)이라며 비난 목소리를 높이며, 뒤늦게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소란을 떨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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