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텔레비전에서는 어린이집에서 폭행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유통기한 지난 재료로 어린이집 급식을 제공했다는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소식을 듣는 부모들은 불안하다. 그럼에도 집에서 아이를 키울 게 아닌 한 뾰족한 수는 없다. 기껏해야 어린이집에 CCTV를 더 많이 달자는 제안 정도나 떠올릴 뿐이다.
여기, 조금 다르게 접근한 부모들이 있다. '부모들이 직접 힘을 합쳐 어린이집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 부모들이다. 시작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내일어린이집'에서부터였다. 내일어린이집은 내일신문사·내일여성센터의 직장 보육시설로 출발했다가 민간어린이집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던 부모들은 2012년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집 주인이 임대 연장을 불허하는 바람에 석 달 안에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하면 어린이집 문을 닫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15년 가까이 내일어린이집을 운영해 온 문광애 원장(53)은 주변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고는 더는 어린이집을 못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부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이대로 각자 새 어린이집을 구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몇몇 부모가 조심스럽게 공동육아 방식을 제안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양승미 씨(39)는 "나 말고도 많은 부모들이 공동육아에 대한 로망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에는 특별한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민간 어린이집이라고는 하지만 문광애 원장의 어린이집 운영 방식 자체가 워낙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다. 문 원장은 부모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곤 했다. 점심 때 들르면 밥 먹고 가라고 부모들 밥까지 챙겨줄 정도였다. 부모들이 예고없이 방문하는 것을 꺼리는 일반 어린이집과는 달라도 크게 달랐다. 이 과정에서 부모들도 일반 어린이집보다는 훨씬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대로 헤어지기는 서로가 너무 아쉬웠다.
임대료가 뭐기에…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기 싫었던 부모들의 '결단'
그런데 본격적으로 알아본즉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새로 생겨난 데가 없었다. 1994년 서울 마포구에 최초의 공동육아 시설인 '우리어린이집'이 생긴 이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한동안 젊은 부모들의 '로망'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어린이집은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자는 협동의 교육 철학을 확산시킨 것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도시 속 마을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성미산마을(서울 마포구)이나 삼각산 재미난마을(서울 도봉구) 모두 시작은 공동육아였다. 성미산마을 원주민 격인 박흥섭 씨는 "공동육아를 하다 보니 부모들이 하나 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됐고, 살다 보니 필요한 것들이 이것저것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공동육아 하듯 자연스럽게 힘을 합쳐 생협을 만들게 되고, 반찬가게·식당, 마을카페를 잇달아 만들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방과후 학교, 대안학교도 하나씩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모태가 됐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명맥이 2000년대 들어 끊기다시피 한 것이다. 이송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총장에 따르면, 부동산 부담이 가장 큰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임차료는 공동육아 초기부터 부모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세금 빼고 집 팔아' 출자금을 마련했다는 눈물 겨운 사연이 당시에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땅값·집값이 수직상승하면서부터는 상황이 더 열악해졌다. 임차도 힘겨운 판에 어린이집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어버렸다. 세대도 달라졌다. 이른바 386세대를 지나 그 아래로 부모세대가 바뀌면서 공동체의 방식으로 뭔가를 조직한다는 데 부담을 느끼는 듯한 경향이 강해졌다고 이 총장은 말했다.
그 사이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법적 호칭은 '부모협동어린이집'으로 바뀌었다. 2005년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되면서 '보호자 11인 이상이 조합을 결성하여 설치·운영하는 어린이집'을 통틀어 부모협동어린이집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단, 모든 부모협동어린이집이 공동육아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11명 이상이 돈을 모아 시설을 설립했으되, 어린이집 운영 과정에까지 부모가 적극 참여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달리 운영은 고용된 인력에 맡겨 버리는 '귀족형' 부모협동어린이집도 있다.
공동육아, 아니 부모협동어린이집의 이같은 현황을 알고 난 부모들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집값 비싼 서울에서 돈 없는 부모들이 과연 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그냥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삼각산 재미난마을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꿈꾸는 어린이집)을 만들어 자녀를 키운 경험이 있는 이상훈 씨(삼각산 재미난학교 교장)는 "결국 매우 간절한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더라"고 말했다. 절박한 동기가 있어야만 협동과 공동체 방식으로 뭔가를 해 보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있더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내일어린이집 부모들은 성공의 충분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키우는 것보다 부모에게 절박한 일은 없는 셈이었으니까.
일단 이들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부모협동어린이집을 만들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무렵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돼 여기저기서 협동조합을 만들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자극이 됐다. 때마침 행운도 따랐다. 서울시에서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업체에 공간임대보증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기에 2012년 말 '혹시나' 하고 사업 신청서를 내봤는데, 여기에 덜컥 선정이 된 것이다. 총 지원비는 1억 원. 비록 5년 뒤 상환해야 하는 돈이기는 하지만, 이로써 어린이집을 만들 때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공간임대 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풀리게 됐다.
마을주민과의 결합이 만들어낸 '뜻밖의 시너지'
다만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마음이 맞는 사람을 더 끌어 모을 필요가 있었다. 부모협동어린이집에 동참하겠다고 뜻을 모은 내일어린이집 학부모는 모두 4쌍. 문광애 원장을 합친다 해도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이에 이들이 주목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협동조합 조합원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로만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성미산마을이나 삼각산 재미난마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어린이집은 잘만 자리 잡으면 마을 생태계의 구심이 될 수 있을 터였다. 2011년부터 서대문구에 생겨난 마을 모임인 '서대문희망네트워크'. '서대문사람숲' 등에 가입해 있던 양승미씨 등은 이들 네트워크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 주민들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도움을 청했다. 주민들은 이들이 내민 손을 흔쾌히 맞잡았다. 서대문구에서 10년 넘게 임산부 요가 교실 등을 운영했다는 김복남 씨(52)는 "내 아이들은 다 컸지만 지역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 아이를 믿고 맡길 데가 없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바로 옆 마포구가 마을 생태계를 이뤄가며 북적대는 것과 비교하며 느낀 아쉬움도 있었다.
"마포구가 서대문구에서 가깝다 보니 오히려 서대문 주민 스스로 이런 생태계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성미산마을이 부러우면 그 동네로 이사 가는 식이었다."
이렇게 결합한 부모와 주민들은 2013년 1월 마침내 서대문부모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에 협동조합 설립 신고를 마쳤다(설립 당시 명칭은 안산부모협동조합).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시작해 필요에 따라 방과 후 학교 등을 만들어가던 기존 방식과 달리 처음부터 마을이 중심이 돼 보육·교육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로써 서대문구에 사는 주민들이 힘을 합쳐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을'을 만들어가겠다는 지향도 더 분명해졌다. 어린이집은 협동조합이 만든 첫 사업체가 된 셈이다.
지역사회와의 결합은 예상치 못한 위력을 발휘했다. 구청이 어린이집 인가를 내주지 않아 부모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특히 그랬다. 이들이 애초에 어린이집 부지로 구한 것은 명지대 인근의 한 가정집이었다. 마당 있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부모들은 구청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고 집 주인에게 계약금 천만 원을 지불했다. 그 사이 다른 사람에게 집터를 뺏길까 마음이 급했던 탓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어린이집으로 인가할 수 없다고 구청이 최종 통보를 해온 것이다. 큰길 건너편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행법상 반경 50m 이내에 위험시설이 있으면 어린이집 인가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점찍은 건물에서 주유소까지 거리는 48m. '불과 2m 때문에 여기서 모든 일이 끝나는 건가' 싶어 눈앞이 아찔하더라고 당시 어린이집 설립 준비위원장이었던 김현숙 씨(45)는 회고했다. '담당 공무원이 진작 현장 실사를 한번만 나와줬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싶어 행정당국이 야속한 마음도 컸다.
더 큰 문제는 잔금 치를 날이 불과 나흘 뒤라는 사실이었다. 어린이집 인가를 받지 못하면 약속된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나흘 안에 잔금 90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계약금 1000만 원을 통으로 떼일 처지였다. 다급했던 이들은 마을 조합원들에게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SOS를 청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것 밖에 없어 미안하다"라며 100만 원, 200만 원을 보내온 사람부터 선뜻 2000만 원을 송금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언제 돈을 되돌려 받을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돈' 9000만 원이 사흘 만에 기적처럼 모금된 것이다. 이렇게 건진 명지대 인근 건물은 오늘날 '거북골 마을 사랑방'이라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 한 켠에 마을기업도 몇 군데 입주해 있다.
산 넘어 산, 협동조합 설립은 그저 시작일 뿐
간신히 위기를 넘긴 부모들은 어린이집 설립 요건에 맞춰 연희동에 새 대지를 마련했다. 그러고도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협동조합 설립 후 초대 이사장을 맡게 된 양승미 씨는 "터전만 마련하고 나면 '고생 끝'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행정 절차가 계속 꼬이면서 하마터면 개원 자체가 무산될 뻔했던 것. 협동조합 설립과 어린이집 인가 절차를 동시에 밟아야 하는 상황 또한 '일찍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구청 담당 공무원들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부서, 저 부서로 가 보라며 부모들을 뺑뺑이 돌리기 일쑤였다. 시설 점검을 받는데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속출했다. 도면을 검토한 공무원이 건물 외부로 난 계단을 보고 소방 대피시설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기에 거금을 들여 간이 사다리를 구매했더니, 현장에 실사 나온 공무원은 "기존 계단을 그대로 써도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사다리가 무용지물이 되는 식이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실의에 빠진 부모 조합원들을 다독여 세워준 것이 마을사람들이었다고 양승미 이사장은 말한다.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는 자신감도 생기고 조합원 사이도 더 끈끈해졌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15일 열 네 가구로 출발한 어린이집 이름은 ‘콩세알’. 농부가 콩을 심을 때 새와 벌레 몫까지 3알을 심는다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콩세알어린이집은 기존 공동육아 어린이집과는 '닮은 듯 다르다'고 조합 측은 설명했다. 일단 출자금 부담을 대폭 낮췄다. 부모 조합원 출자금은 2계좌 이상, 부모 아닌 일반 조합원 출자금은 1계좌 이상이다(1계좌=100만 원). 정부의 무상보육 실시에 따라 보육료는 무료. 대신 협동조합 운영비 등으로 쓰이는 조합비를 월 20만 원씩 내야 한다. 어쩌면 부담스러운 액수일 수 있겠지만 일반 어린이집에서 흔히 요구하는 특별활동·현장학습비 따위와 달리 투명한 운용을 보장하고 미래 투자에 쓰이는 돈이라는 점에서 조합비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조합 측은 설명한다.
기존 공동육아 어린이집처럼 100% 유기농 식단만을 고집한다거나 일일 야외수업을 필수로 하지도 않는다고 양승미 이사장은 말했다. 좀 더 느슨하게, 그럼으로써 부모들이 좀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의 문턱을 낮추려 했다는 것이다. 양씨는 무엇보다 "부모들이 꿈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라고 답했다. 공동육아건 뭐건 괜찮다고 소문난 어린이집에만 보내면 아이가 뭔가 달라지고 행복한 아이로 자랄 거라는 환상부터 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교사를 만난다 해도 관건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다른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관계를 만들어가고, 마을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실제로 이들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부모 스스로도 달라지게 되더라고 말한다. '애만 맡기면 되는' 일반 보육시설과 달리 콩세알어린이집은 부모가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주일에 두 번 직접 어린이집 청소도 해야 하고, 일일교사로 자원봉사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합원은 협동조합 산하 소위원회(운영소위원회·재정소위원회·시설소위원회·교육소위원회·홍보소위원회) 중 하나에 의무적으로 속해 활동을 해야 한다. 자녀를 1년 이상 어린이집에 보낸 조합원은 이사를 반드시 한 번 이상 역임하도록 한다는 의무 규정도 있다. 그럼에도 조합원 박태환 씨는 협동조합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 이데올로기' 대신 다른 선택지도 있음을 몸으로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녀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뿔뿔이 흩어져 있던 부모들이 협동조합이라는 우산 아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해해 가며, 서로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간다는 점"이 놀라웠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부모 스스로 자신의 아이들을 온전히 키워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진정한 자립은 경쟁이 아닌 연대를 통해 이뤄지더라'는 것 또한 이 과정에서 얻게 된 새로운 깨달음이다.
'협동의 경험을 나눕니다', 컨설팅 사업에 뛰어든 부모들
2014년 9월 서대문부모협동조합은 콩세알어린이집에 이어 두 번째 사업체를 선보였다. '교육컨설팅사업부 새움'이 그것이다. 이들이 새움을 만들려는 첫 번째 이유는 재정난 타개를 위해서다. 콩세알어린이집 개원 이후 부모 조합원들은 처음에 매달 10만 원씩 내던 조합비를 15만 원에서 다시 20만 원씩 내는 것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인상한 바 있다. 조금씩 커져가는 적자 폭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원아 수를 늘리면 상황이 개선되겠으나 보육의 질을 높이자고 모인 부모들이 그럴 수는 없었다. 이에 따라 "적자 해소 방안으로 교사 인건비를 깎을 것이냐, 부모 조합비를 올릴 것이냐 두 가지를 안건에 붙여야 했다"라고 장주영 조합원은 회고했다. 이를 두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여러 차례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교사들의 임금 수준을 적정하게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어떤 부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문턱 낮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자는 게 콩세알어린이집의 설립 취지이기도 했다. "돈 많고 여유도 있는 부모라면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집 문제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은 돈 없는 부모일수록 열악한 환경의 어린이집을 만날 확률이 높지 않나. 이런 처지에 있는 부모들도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 있게끔 협동을 통해 문제를 풀어보려고 서대문부모협동조합을 만들었던 것인데, 부모 부담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구조가 되다 보니 고민스러웠다"라고 양승미 이사장은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2년 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축적한 의사소통의 경험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만장일치 방식으로 논란을 정리했다. 부모들이 고통스럽기는 하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인 보육의 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행 교사 인건비를 유지하고 조합비를 올리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다만 이렇게 조합비를 올려도 적자를 100% 해소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전망이 제기되자 새로운 수익사업을 벌여보기로 결의하고, 그 일환으로 새움을 설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움은 향후 부모협동어린이집을 만들거나 운영 중인 부모들을 상대로 전문 컨설팅 작업을 벌이려 한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요즘 많은데, 이를 전문적으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 거의 없다는데서 착안한 사업이다. "하다못해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만 되풀이하지 않아도 초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양승미 이사장은 말했다. 이렇게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사업이기는 하지만 새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또 한 뼘 성장하게 되더라고 그녀는 말했다. 특히 육아 때문에 하던 일을 그만둔 경력 단절 여성들이 함께 모여 뭔가를 도모하면서 '아, 우리가 나름 대단한 사람이었지?'라는 존재 확인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서대문부모협동조합을 보고 "결국 정부 지원이 있었기에 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서울처럼 집값·땅값 부담이 높은 지역에서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이 생겨나려면 시설지원금 내지 공간지원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병호 한양대 교수는 지역사회 공공시설 중 노는 시설을 공동육아협동조합에 우선 빌려주는 방식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공익 신탁'을 설리해 지역 주민의 필요에 맞는 공간을 임대하는 방식, 또는 금천구·노원구에서 최근 실험 중인 것처럼 구립 어린이집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거나 협동조합에 위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 지원은 여러 성공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어린이집 설립 초기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현숙 씨는 "일을 진행하면 할수록 사람이 모여 관계를 다져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더라는 판단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정부 지원이 독이 되기도 한다. 회계연도별로 일이 집행된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정부 지원사업 특성상 아직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밀어붙이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 사업이 삐걱대더라는 것이다. 결국 양승미 이사장 말마따나 서로가 '지지고 볶으면서' 신뢰의 관계를 쌓아가고, 이 과정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해야만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2년 간 이들이 얻은 교훈이다.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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