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사과하라"…'침묵'의 압구정아파트

[현장] 경비노동자 故 이만수 씨 추모대회…유족 "장례식장이라도 와줬으면"

올해로 9년째 경비일을 하고 있는 이모(68) 씨는 현재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그에겐 입주민의 지속적인 모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사망한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고(故) 이만수(53) 씨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역시 9년간 '경비'로 일하면서, "15층 건물의 옥상에서 몇 번이나 아래를 내려다 볼 만큼" 참담한 일이 많았다고 했다.

1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바닥에 스트로폼을 깔고 새우잠을 자야하는 생활이 고단해서만은 아니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입주민들의 모욕과 하대다.

"제가 근무하는 아파트에 50대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3개월 가까이 인사를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고요. 아마 그 사람은 경비원 나부랭이가 하는 인사 정도는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저도 언제부터인가 인사를 안 했는데, 최근 '어이, 이거 봐'라고 저를 부르더니, '왜 요즘엔 인사하지 않느냐'고 따지더라고요. 저도 참기 힘들어서 '그동안 선생이 계속 무시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자신은 눈으로 인사를 한거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인사를 계속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최근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논의 중이다. "다시는, 억울하게 분신한 이 씨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전태일 열사 44주기를 맞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9일 오전,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이 분신한 경비노동자 이만수 씨 추모대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전태일 열사 44주기를 맞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9일 오전,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앞. 분신한 경비 노동자 이만수 씨의 영정 사진이 줄지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향했다.

입주민의 지속적인 모욕과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이 씨는 지난달 7일 아파트단지 안 주차장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했고, 이틀 전 상태가 악화돼 끝내 숨을 거뒀다. (☞관련 기사 : 입주민 모욕에 분신한 아파트 경비원, 끝내 사망)

하지만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나도록 가해 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의 사과 표명은 없었다. 오히려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며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씨의 아내 유모 씨는 "아직도 억울하다"면서 "지금이라도 장례식장에 와서 사과해 달라. 그래야 남편이 마음 편하게 떠난다"고 했다. 남편의 상을 치르느라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그는 음성 메시지로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 씨는 "남편은 갔지만, 남아 있는 동료들이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잘 지내 달라. 그 분들이 요구한대로 고용 안정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100세 시대에 65세 정년이 무슨 대단한 요구인가. 경비 노동자가 사람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 씨의 아들 역시 편지글을 통해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아빠가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며 "이곳에서 받았던 상처와 괴로움을 모두 털어내고 천국에서 아무 걱정없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사과해 달라" 호소에도…"경비들 다 없애버려!" 항의하는 주민

아파트단지 건너편에서 열린 집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분향을 위해 아파트단지 안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유 씨가 분신한 주차장이었다.

"가해자는 사과하라!", "노동 인권 보장하라!"

공휴일의 낮 시간이지만, 마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아파트 단지는 조용했다. 스피커 소리와 집회 참석자들의 구호가 크게 울려퍼졌지만, 입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먼 발치에서 집회 참석자들을 바라보던 동료 경비원들은 조용히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집회 참석자들이 이 씨가 분신한 현장인 신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주민들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사무실 옆에 마련된 간이 분향소에서 참석자들이 이 씨의 영정 앞에 분향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일부 '적극적인' 주민도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입주자대표자회의 사무실 옆에 마련된 간이 분향소에서 분향을 시작하자, 한 50대 주민이 흥분한 표정으로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경비들 다 없애버려! 주민들한테 이러는데 경비들 다 필요없으니까, 다들 없애버려!"

이 항의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또 다른 경비 노동자는 아무 말도 없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만수 씨의 발인은 10일 오전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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