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376조 원 규모의 ‘2015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규모가 올해 보다 5.7%(20조 원) 늘어났다. 나는 이 수치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하던 그대로이며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심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인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다. 불거져 나온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해 임기응변적인 미봉책을 들이대는 식이었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려는 어떤 획기적인 기획은 전혀 없었고, 이명박 정부가 하던 방식 그대로 국정을 그럭저럭 운영할 뿐이다. 그래서 세간에 떠도는 “현 정권은 이명박 정권의 제2기 정부”라는 비판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2015년도 예산안’에서 중요한 것들
2015년도 예산안 규모가 376조 원이고 전년 대비 5.7% 늘어났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2015년도 예산안’과 관련하여 검토해봐야 할 중요한 것들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균형인지, 아니면 재정적자인지가 중요한다. 둘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적자라면 그 이유가 정부예산의 과다한 지출 계획 때문인지, 아니면 세입구조의 문제로 인한 세수의 부족 때문인지가 중요한다. 셋째, 재정적자의 이유가 세입의 부족 때문이라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져봐야 한다.
첫째, ‘2015년도 예산안’은 세입보다 세출이 많은 재정적자이다. 내년도 재정적자는 33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의 부채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내년도 국가채무는 올해(527조 원)보다 43조 1천억 원이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내년도 570조 1천억 원에 이어, 2016년 615조 5천억 원, 2017년 659조 4천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로는, 올해 35.1%, 내년 35.7%, 2016년 36.4%, 그리고 2017년에는 36.7%나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써 정권 출범 초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20%대로 낮추겠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의 목표는 이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둘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적자인 것은 정부의 과다한 재정지출 계획 때문이 아니다.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보다 5.7%(20조 원) 늘어났을 뿐이다. 예산증가율 5.7%는 경상GDP 증가율 6.1%에 비해 낮은 것이다. 즉, 예산증가율 5.7% 그 자체는 결코 과다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늘어난 예산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의 경우처럼 기존 프로그램의 성숙에 따른 자연증가에 기인한 것들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역동적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로 가기 위한 획기적이고 구조적인 공적 투자를 감행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저출산·고령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도드라진 문제점들을 미봉하는 데 전전긍긍하면서 최소한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셋째, 그렇다면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적자인 이유는 ‘세입의 부족’ 때문임에 틀림이 없다. 3년 연속 기대했던 세수조차 제대로 걷히지 않는 상태에서 적자로 편성된 국가재정으로 인해 국가부채가 누적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세입 부족’의 원인은 무엇인가? 현 정부의 세수확충 방안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줄곧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해왔다. 이 말은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사실상 파기하면서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복지를 실천하는 데 드는 재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현 정부가 제시했던 대안은 두 가지였는데, 비과세·감면제도의 개선과 지하경제 양성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실패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복지후진국에 머물 것인가?
우리나라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양극화가 극적으로 심해졌다. 15년 사이에 상대빈곤율은 8%에서 16%로 증가했고, 중산층의 비율은 74%에서 64%로 줄었다. 최근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소득상위 10% 인구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간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48%에 이어 OECD 국가들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이렇게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민생은 만성적으로 불안해졌다. 보편적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가운데, 일자리와 노동시장은 불안정해졌고, 전반적으로 가계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안정적 경제성장에 문제가 생겼다. 이것은 성장주의와 저열한 분배수준을 특징으로 하는 복지후진국의 한계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은 9~10% 수준이다. OECD 국가들 평균인 21%에 한참 못 미친다. 독일이나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의 25~30%에 비하면 1/3 수준이다. 이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복지후진국임에 틀림이 없다.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왜 이렇게 낮을까? 간단하다. 우리 국민들이 세금을 적게 내서 그렇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는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복지후진국이다. 이건 그냥 복지만 후진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사회공공성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부분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사회공공성의 수준이 낮은 정치공동체 대한민국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이대로 살 것인가!
단계적으로 우리사회의 공공성 수준을 높여나가려면, 그래서 언젠가는 유럽의 공공성 높은 선진 복지국가 수준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19~20% 수준이다. 이는 OECD 국가들 평균인 25%에 비해 최소 GDP의 5%포인트 이상 우리가 세금을 덜 내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명목GDP가 1400조 원을 넘었으니, GDP의 5%면 70조 원이다. 우리는 작년에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세금을 최소한 70조 원 이상을 덜 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5~26% 수준이다. 조세부담에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 등의 사회보장 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평균보다 9%포인트 정도 낮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공공성 수준이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공공성 수준이 낮은 복지후진국에서 성장과 분배가 유기적으로 함께 발전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공공성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는 국민부담률을 높일 때에만 가능해진다. 국민부담률을 높인다는 것은 지금보다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더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대선 때 여야 대선후보들은 앞 다투어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복지국가의 핵심적 특성인 사회공공성을 높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적자재정을 편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크게 모자라기 때문에 복지국가 대선공약 대부분은 축소되거나 파기되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공공성 수준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야 거대 정치세력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가장 비난받아야 할 정치세력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치측근들이다. ‘정직한 정치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국민을 속인 것은 가장 저열한 정치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줄·푸·세'를 들고 나왔다. 경선 패배 이후 정치적 어려움을 겪던 박 대통령이 정치적 해법으로 들고 나온 것은 한국형 복지국가였다. “내 아버지의 꿈을 복지국가였다”는 말은 그의 정치적 색깔 전환의 상징적 언어였다. 실제로 힘을 잃어가던 수구보수의 한나라당을 '좌클릭'하여 새누리당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전면에 내걸고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집권에 성공한 후, 박근혜 정권은 이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애초의 모습인 '줄·푸·세'로 회귀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것이다. 이는 사과로 끝날 성격의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집권 정치세력이다. 지난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내건 정당도 새누리당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내걸었던 대선공약을 폐기하거나 거의 지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1야당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폐기하거나 후퇴시키며 정치적 퇴행을 반복하는 동안, 제1야당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큰 시장, 작은 정부’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면서 추가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처를 더 많이 확보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자유를 보다 강조하고 사회공공성의 영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행동을 조직하려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이념과 가치이자, 동시에 그들이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보수적 지지계층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와 집권여당이 대선공약을 파기하면서 '줄·푸·세' 노선으로 회귀한 것은 집권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 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에 다름 아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정치적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저들의 거짓 정치행태가 대한민국 정치를 희화화한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집권여당은 시장의 자유 확대를 위해 감세와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이념과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지지기반인 자본과 상위계층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하나의 축인 만큼, '줄·푸·세' 노선 그 자체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노선의 하나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제1야당이다.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인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국민을 속였던 지난 시기에 제1야당은 무엇을 했는가? 정부여당이 “증세 없는 복지”라는 한심한 거짓말을 국정의 방향으로 제시하며 지내온 그 시기에 제1야당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제1야당은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소수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개별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하나하나 파기하던 그 시기에 제1야당은 정치 공학적 이슈에만 매몰된 채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복지국가 공약은 죽어갔고, 정치 불신은 더 심해졌다.
나는 야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대안세력으로서의 신뢰와 책임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때문에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복지재원 문제이다. 야당은 당시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며 기선을 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각종 복지공약을 담은 애드벌룬만 띄워놓고는 숨어버렸다.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어떻게 집행하겠다는 구상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경제민주화를 꺼내놓았다. 그런데 제1야당이 당시 왜 보편적 복지를 가급적 뒤로 숨기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경제민주화는 규제가 중심이므로 돈이 드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와 달리, 정치적 부담이 없는 호재라고 여겼을 것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제1야당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재원 문제를 꺼내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지금의 제1야당에도 지배적인 견해로 존재한다. 제1야당에는 두 부류의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한 부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조세부담율과 사회보장 기여율을 대폭 높이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 부류의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중도적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복지를 지금보다 더 늘리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우리나라가 대폭 증세를 감행함으로써 유럽식의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것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다른 부류의 정치인들은 비록 그 수가 적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이들 정치인들도 대다수는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선거에서 표가 떨어진다는 정치공학적인 계산을 앞세우는 속성이 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대개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인데, 이들 중의 상당수도 증세정치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1야당은 증세정치를 전면에 내세우기를 꺼려했던 것이고, 사실상 정부여당의 대선공약 파기의 정치를 방관했던 것이다.
복지국가 증세정치: 적대적 공생의 양당정치를 파괴해야
담뱃세와 주민세는 대표적인 간접세로 소득 역진적인 조세항목이다. 이번 간접세 증세 조치는 “증세 없는 복지”를 국정기조로 삼던 정부여당이 계속되는 정부재정의 적자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꼼수로 내놓은 작품이다. 이것이 꼼수에 불과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것도 증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세금부담이 늘어나면 그것이 증세이다.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것만이 증세라는 정부여당의 엉터리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담뱃세와 주민세를 인상하는 이런 식의 증세로는 조세정의만 해칠 뿐, 재정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GDP의 20%에도 못 미쳐서 OECD 평균에 비해 GDP의 5%포인트 이상 미달이다. 단계적으로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과 국민부담으로 나아가려면, 직접세에 누진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득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득불평등의 나라이다.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고, 내수경제를 살려냄으로써 ‘소득 주도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누진적으로 올려야 한다. 대기업과 고소득자가 더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재원으로 복지국가에 투자하여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튼튼해지고, 그래서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중산층도 늘어날 것이다. 결국, 중산층까지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우리도 머지않아 OECD 국가들 평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당정치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할 의사가 없거나,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여당은 ‘보수적 자유주의’ 이념과 정치적 지지기반의 성격 때문에 현재의 경제 질서와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현실정치에서 이들의 힘은 압도적으로 크다. 한편, 제1야당은 세간의 이야기처럼 “정치 자영업자들의 모임”에 가깝다.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같은 정당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다양한 성향의 ‘정치적 개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모여든 곳이 제1야당이다. 이들은 증세정치와 같은 위험한 도박을 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굳이 정치 자영업자들이 이런 골치 아픈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에 재선되기 위해서는 정부여당과 정치 공학적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적대적 공생을 일삼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지역주의에도 의탁할 수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크게 불거졌지만 지금의 정당정치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앞으로 복지국가정치와 증세정치가 제대로 공론화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이 제1야당이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실질적 의미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제1야당이다. 적대적 공생의 양당제를 본질적으로 파탄내야 하는데, 우리사회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힘든 점이 있더라도 지금의 제1야당을 심판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심판은 최근 일련의 선거정치 과정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법이다.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은 적대적 공생체제인 현재의 양당체제이며, 등장해야 할 새로운 것은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거대한 항해를 시작했다. 복지국가 증세정치는 하나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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