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자 정상회담을 준비하자

[정욱식 칼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동북아, 한국의 역할은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만큼 식상한 표현이지만, 동시에 동북아 정세가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동북아 정세에는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합집산이나 합종연횡이라는 표현도 잘 맞지 않는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특징을 두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미국은 한국에 '과거는 잊자'고 하지만, 중국은 '역사를 잊지 말자'고 한다. 여기에는 일본 우경화의 두 축, 즉 역사적 우경화와 군사적 우경화를 보는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미국은 두 가지를 별개라고 주장하면서 전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환영 일색이다. 집단적 자위권이 대표적이다. 반면 중국은 두 가지 움직임을 한 묶음으로 본다. 중국에 일본의 역사 미화 움직임은 군사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인 셈이다.

이러한 미·중 양국의 인식 차이는 일본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확연히 갈린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구하면서 한미일 3각 동맹을 핵심으로 삼고자 한다. 그래서 일본에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도발적인 언행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고 한국에는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속삭인다. 그런데 이게 잘 통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아베 정권에게 역사 부정과 군사적 우경화는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몰역사적 언행이 기승을 부릴수록 한국인의 반일 감정도 커진다.

▲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이 틈을 헤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7월 4일 서울대 특강에서 과거 한중 두 나라가 일본의 침략에 함께 맞선 사례를 열거했다.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돌 기념행사를 내년에 함께 열자'고 제안했다. 역사 문제를 근거로 한국이 미·일 동맹으로 기우는 것을 차단하자고 하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그런데 이것도 잘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의 제안에 침묵으로 답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각의 결정을 내린 날, 하와이에서는 사상 최초로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가 열렸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일본의 역사적 우경화에 대해서는 각을 세우고 있지만, 군사적 우경화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잡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일 비판의 수위를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사실상 양해하는 등 한미일 3각 군사 공조 움직임에 은밀하고도 깊숙이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불일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줄타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슬아슬해질 것이다.

한반도의 북쪽을 상대로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의 발단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아베 신조 총리가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북 압박과 제재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환영하고 있다. 시진핑 방한 직전에 열린 북·일 교섭이 베이징에서 열린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중국 정부가 아베 신조의 정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는 북·일 관계 개선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안정과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년에 6자 정상회담 개최를 목표로 세우고 지금부터 분위기 조성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 로드맵을 짜보면 이렇다. 우선 인천 아시아 게임을 전후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자. 북한의 제안을 일축만 할 것이 아니라 만나서 상호 조율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11월에는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가 중국에서 열린다. 이 회의에는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정상들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이를 전후해 6자회담의 문을 열고 2015년을 공동으로 기획할 수 있는 역사적 안목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한중일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올해 하반기를 잘 보내면 2015년 6자 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될 것이다.

* 지난 연재 모아 보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