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으로 '제2의 세월호 선장'을 막겠다고?

[시민정치시평] 학생은 수동적인 '교화'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발상은 때때로 너무도 심오하고 창의적이어서 나 같은 보통 시민의 사고나 상상 범위를 확연하게 초월하곤 한다. 세월호 대참사 직후 몇몇 의원들이 학교 수영 교육을 강화할 방안을 찾는 심포지엄을 연다며 법석을 떨던 일이 대표적인 예다. 안타깝게도 이 행사는 취소되었다지만, 세월호 대참사가 학생들의 수영 실력이 모자란 데에도 그 탓이 있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이번에는 의원들이 세월호 이준석 선장 같은 사람이 다시는 안 나오게 만들겠다며 이른바 '이준석 방지법'을 발의했다. 대표 발의자는 곧 국회의장이 될 정의화 의원이고, 선거 국면이라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던 지난 5월 26일, 여야를 초월하여 무려 102명의 의원이 함께 발의했다. 별칭도 그렇지만, 법안의 정식 이름이 정말 눈에 띄게 특별하다. 사뭇 비장하게도 '인성교육진흥법안'이란다.

그러나 이 법안은 세월호 대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졸속 법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1년도 넘게 나름대로 의견도 수렴하고 깊게 토론하고 연구도 했단다. 우연히도 세월호 대참사가 터지니 이를 대중적 지지를 얻을 좋은 계기로 삼자 싶어 '이준석 방지법'이라는 별칭을 붙여 법안을 발의하게 된 것 뿐이다. 탁월한 선견지명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로서는 의원들의 이번 법안 발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마저 나온다. 딱 이런 때, 꼭 이런 식으로 명명되어서 발의되는 것 자체가 이 법안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국가의 무능이나 자신들 같은 권력자들이나 정치인들의 탐욕과 부패는 덮어둔 채, 국민들의 인성이 피폐해서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났다고 여기고 국민들에 대한 인성교육을 통해 '제2의 이준석'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 국민들이 대부분 이준석 선장 같은 파렴치한이라도 되는 듯 여기고, 그래서 적어도 다음 세대부터는 좀 더 착한 국민들로 만들어야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하겠다고 나서더니 국회는 '국민 개조'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국민들, 특히 미래 세대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게 됐다.

얼핏 취지만 보면 근사해 보인다. 청소년들에게 공부만 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을 실질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공식적인 국가 기구도 만들고 예산도 배정하며, 실행해야 할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겠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과 같은 핵심 가치와 덕목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지식 및 의사소통 능력이나 갈등 해결 능력 같은 핵심 역량을 가르친단다. 무척 그럴 듯 해 보인다. 단지 새누리당 의원들만이 아니라, 원혜영, 유기홍 같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중견 정치인들, 심지어 서기호 정의당 의원까지 발의에 동참한 것은 이런 근사한 취지에 흠뻑 공감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라. 국가가 나서 인성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국가가 주도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또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를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이 지닌 내면의 바르고 건전함의 잣대도 국가가 정하고 인간다운 성품의 기준도 국가가 마련하여 교육하겠다고 한다.

얼핏 보더라도 '제2의 국민교육헌장'이 아닌가? 또 하나의 '바르게 살기 운동'을 하자는 게 아닌가? 새누리당 의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나 진보를 내세우는 정의당 의원마저 동참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교육에서 '제2의 유신 시대'를 앞장서 만들자고 나서냐는 말이다.

세월호 대참사에서 가장 참담했던 사실은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승무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며 자신들만 탈출을 시도했고 그 방송만 곧이곧대로 믿고 가만히 있었던 수많은 어린 학생들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일일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습관만을 몸에 익힌 기성세대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체제와 질서에 대한 일방적인 순응만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 현실의 가장 추악한 단면이 그대로 반영된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앞장서 바로 이런 장면을 계속해서 더욱 심화시켜 확대 재생산시키자고 나서고 있으니, 분통이 터져서 못살겠다.

인성교육이나 가치교육을 하지말자는 게 아니다. 제2의 이준석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교화'의 대상으로 전제하고서, 국가가 나서서 또 국가가 정하는 틀 안에서 인성교육을 하자고 하니 문제다. 세월호 대참사를 낳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교육 논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그것을 계속해서 더 강화하자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진짜로 제2의 세월호를 막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

한국의 지배적인 교육 패러다임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 일반을 지배하고 있는 반민주적, 반시민적 문화의 배경 위에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입신출세주의와 능력주의만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이 아이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했다.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더 많은 인권과 행복을 누리며 더 자주적이고 더 독립적인, 그러면서 시민적 책무와 연대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민주적 시민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국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내어야 제2의 세월호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렇다. 인성교육이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이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기본법에 으뜸으로 명시된 대로 청소년들이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과 가치와 태도를 함양하게 하는 일을 민주공화국 공교육체제의 가장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참여할 줄 아는 시민, 상황을 판단하고 토론에 참가하는 데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유 능력을 보일 줄 아는 시민, 좁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매몰되지 않고 공동선을 고민하고 헤아릴 줄 아는 시민,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함께 그에 따른 책무도 질 줄 아는 시민, 의견과 지향과 취향이 다른 동료 시민들을 관용하고 존중할 줄 아는 시민, 바로 이런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오직 이런 시민들의 공화국만이 우리 사회를 '세월호 이후'로 이끌 수 있다.

국가주의적-권위주의적 인성교육과 구분되는 이 '시민적 덕성'과 '민주적 시민성'을 위한 교육의 요체는 청소년 개개인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존중하면서 모든 종류의 교화(또는 의식화) 교육을 거부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특정한 도덕과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인격적 불가침성과 인간적 존엄성을 인정한 위에서 그들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자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육은 무엇보다도 학교 전체가 민주시민 양성을 위해 민주적으로 구조화되어야 하고 교사들 간의 관계에서나 교사-학생 간 관계에서 그리고 학생들끼리의 관계에서 민주적인 문화가 확립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인성교육진흥법안 발의를 이끈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이나 동참했던 많은 의원들의 선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발의된 그대로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 선의는 결국 이 민주주의 시대에 터무니없게도, 저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도입했던 방식의 전체주의적 '수신(修身)' 교육을 부활시키는 결과만을 낳게 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대안이 있음을 알지 못한 탓이라 믿는다. 지금이라도 그 선의를 인정받으려면 발의된 법안을 폐기하고 '민주시민교육진흥법안'으로 대체하길 바란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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