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약 '돌봄교실', 왜 엉망이 됐나?

[제안] 학부모가 내놓는 돌봄교실 개혁안

초등학교 돌봄교실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원하는 학생을 모두 받기로 하면서 전국의 6000개에 이르는 초등학교는 지금도 야단법석이다. 학부모들은 졸속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이처럼 질타를 받자 교육부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3월말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무소식이다. 그래서 돌봄교실을 이용하는 학부모로서 그동안 보고겪은 경험을 토대로 몇가지 대책을 제안한다. 

교장의 잘못된 판단 누구에게 호소하나

내 아이 학교에서 지난해까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 한분이 손주를 찾으러 학교에 온다. 무릎에 관절염이 있었던 할머니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어려워 이층에 있는 돌봄교실에까지 가지 못했다. 그래서 돌봄교실이 바라보이는 운동장에서 위층을 향해 손주 이름을 불렀다. 돌봄교사가 못듣는 경우에는 여러번 불러야 했다. 

필자는 아이를 찾으러갈 때마다 이 딱한 할머니를 마주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교장과 면담하는 기회에 이렇게 제안했다. 할머니도 휴대폰이 있을테니 돌봄교사에게 전화해서 아이를 내려보내도록 하자고.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란다. 돌봄교실에서 귀가시 부모 동행 규정을 근거로 들며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 교문이 아니라 반드시 돌봄교실 문 앞에서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런 장면을 지켜봐야했다. 

필자는 지난달에야 교육부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방과후학교지원과의 담당자는 학부모가 아이를 교실에서 데려가느냐 교문에서 데려가느냐 하는 것은 학교장 재량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돌봄교실 담당 연구자는 낮시간에는 혼자서 집에 보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는 '2014 돌봄교실 길라잡이' 집필에 참여한 사람이다. 이로서 원칙운운은 교장의 자의적인 해석임이 드러났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교장이 교육자적 양심이 있다면 마땅히 그 할머니에게 사과해야 한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일이 6000개의 학교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학부모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는가. 

교육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봄교실 민원담당관제'를 내놓았다. 학교의 책임하에 돌봄교실 민원이 발생하면 원스톱으로 해결한다는 취지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 확인해보니 그 담당관이 바로 교장과 교감이라고 한다. 학부모가 학교장에게 그의 잘못을 지적해서 시정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이를 맡긴 죄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학교장 외에도 지역교육지원청의 초등교육지원과장이 민원담당관으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필자 거주지역 교육청의 과장에게 전화해보니 자신이 담당관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허울뿐인 눈속임 제도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생각으로는 '돌봄교실 콜센터'가 어떨까 한다. 세자리의 전화번호를 부여하고 전국의 학부모가 다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 

어린이집과 돌봄교실을 비교하면...

필자의 개인 경험이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전 5년간 보냈던 구립 어린이집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우리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데 대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박봉임에도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헌신이 주요 이유겠지만, 필자에게는 다른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구립 어린이집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원장이 곤란해진다. 자칫 자신의 재산인 운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반면에 모범적으로 잘 운영하면 "서울형 어린이집" 지정같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돌봄교실은 정반대이다. 우리 아이 학교는 학기초에 40여 명이 신청을 했는데 한달도 안돼 10여 명이 포기했다. 정부의 준비 미비가 주원인이지만 그 과정에 돌봄교사들의 미필적 고의도 작용했을 것이다. 학원에 가는 학생은 부모가 데려다 줘야 한다는 등 이런 저런 금지사항을 전해듣고 단념한 학부모가 적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심지어 학부모에게 '갑질'하는 돌봄교사도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린이집은 아이가 늘어나야 원장의 수입이 올라가지만 돌봄교실은 신청학생이 줄어들면 교사가 편해진다. 이런 구조를 무시한 채 제시하는 어떤 정책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교사 일인당 일정숫자 이상의 어린이를 맡게 되면 인센티브나 수당으로 보상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시에 돌봄교사들의 이기주의를 제어하는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에듀-케어 논란이 혼돈의 중심

이런 현상적인 문제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근본문제가 있다. 돌봄교실의 정체성을 둘러싼 혼선이 그것이다. 돌봄교실 설립목표는 교육일까 보육일까. 소위 '에듀-케어' 논란이다. 학부모들은 누구나 방과후학교는 교육이고 돌봄교실은 보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부와 시교육청은 돌봄교실을 방과후학교의 연장으로 규정해놓았다. 현장의 요구와 엇갈린 정책은 필시 이런 나쁜 일로 귀결된다.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사교육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돌봄교실이므로 학원에 가는 버스에 태워주는 서비스는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부모는 직장에서 택시타고 와서 아이를 학원버스에 태워줘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다.  

교육부의 난감한 입장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학교 구내에 설치돼있는 시설인데 교육이 아니라 보육으로 규정하게 되면 자기들이 맡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처럼 지자체가 맡아서 운영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또는 다른 부처로 운영권을 이관하자는 말도 들린다. 보건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 여성가족부의 방과후아카데미등도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어 중복논란이 나오고 있다. 장소는 학교 돌봄교실로 통합하되 운영은 복지부나 여가부가 담당하자는 주장은 이런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혼돈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조건이 불확실한 가운데 교육부가 돌봄교실의 목표를 사교육비 경감으로 설정한 것이 성급했다. 결국 여론에 떠밀려 "안심하고 양육할 수 있는 여건 조성"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미봉책이다. 한줄로 요약하면, 돌봄교실의 목표를 성급하게 교육으로 설정했다가 엉거주춤하며 보육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문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정책토론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그 결과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으로 정리해주어야 한다. 

돌봄교실 개혁을 위한 창의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돌봄교실 개혁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다양한 대안이 나와서 풍성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초등학교 정규교사가 돌봄교실 교사로 나서는 것은 어떨까. 중고등 교사는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늦게까지 일해야 하지만 초등교사는 상대적으로 근무시간이 짧다. 이들에게 수당을 충분히 주어서 번갈아가며 맡도록 하는 건 어떨까.  

돌봄교실 학부모회가 돌봄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지방의 초등학교에는 학부모가 운영주체로 나선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교육청에서 '돌봄교실 학부모회 활성화 공문'을 일선학교에 보내야 한다. 학부모회가 없는 학교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전면적 무상돌봄교실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제도라고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하므로 혼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해답은 학부모와 국민들이 참여하여 창의적인 논의를 꽃피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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