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재승인 점수, 심사 참여한 나도 황당"

[인터뷰] 한 심사위원의 토로…"채점표, 떳떳하면 공개해야"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채널 2기의 문을 열어줬다. 몇 가지 조건이 붙긴 했지만 결론은 '재승인'이다.

기막힌 반전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더 놀라웠다. 각 종편은 합격 기준보다 적게는 34점, 많게는 77점을 뛰어넘으며 무사히 재승인 문턱을 넘었다.

야당 방통위원들은 방통위 측에 채점표를 요구했다. 과연 심사가 제대로 된 건지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데이터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들려온 답변은 "심사위원들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어 안 된다","5월 중에 백서가 발간되니 그때 확인하라"였다. 19일 전체회의에 나온 여당 방통위원들은 의결만을 재촉했다. 결국 야당 방통위원들은 회의실 퇴장으로 '묻지마 재승인'에 항의를 표했다.

채점에 참가한 한 심사위원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사에 참가한 당사자로서 당혹스러움을 토로했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점수도, 채점표 공개를 꺼리는 방통위와 여당 태도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세부 채점표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승인 심사 결과를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결국 심사위원회 구성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합숙 심사 과정 등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심사위원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

"떳떳하다면 채점표 공개 안 할 이유 없다"

프레시안 : 방통위원들에게 심사 채점표 등 세부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논란이다. 공개할 수 없는 근거는 무엇인가? 심사위원들은 이에 대해 고지 받았나?

심사위원: 방통위에서 심사위원들에게 특별히 안내하지는 않았다. 공개한다, 안 한다, 그런 설명 자체가 없었다. 결과 공개를 안 하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지상파 심사에서도 관례적으로 공개를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종편 심사 결과 공개는 왜 안 된다는 건가. 이해가 안 된다. 특히 의결 끝나고 나서 공개하겠다는 건 상식적으로 정말 웃긴 얘기다. 다 끝나고 보여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심사가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봐야 의결을 할지 안 할지 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론 지금이라도 세부 채점표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사위원들이 떳떳하게 제대로 채점을 했다면 공개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종합편성채널 로고 모음

프레시안 : 채점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 심사위원들의 4박 5일 합숙 과정을 소개해달라.

심사위원 : 철저히 개별 심사였다. 원칙이 그랬다. 각자 심사 자료를 보고, 스스로 판단해 점수를 매겼다. 각자 심사표를 배부받았는데, 각 항목별로 (점수를 넣을 공간이) 나뉘어 있다. 거기에 점수를 쓰고 옆에 사인을 해서 방통위 사무국에 넘겼다. 누가 어떤 점수를 줬는지는 전혀 모른다. 심사위원마다 책상도 따로 썼다. 개인적으로 식사할 때, 이동할 때 빼고 얘기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토의나 논의도 없었다.

합숙 기간 중 하루는 종편 관계자들을 불러 청문을 했다. 한 방송사마다 단행본 분량으로 4~5권씩 제출하는데, 읽다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을 직접 질문해서 설명을 들었다. 나머지 기간은 각자 심사 자료를 보고 채점하는 시간이었다. 오전부터 밤 늦게까지 자료를 봤는데, 보다가 보충자료를 요구하면 거기서 파견 나온 (방통위) 직원들이 필요한 자료를 가져다줬다. 그런 과정으로 4박 5일을 거의 다 썼다.

프레시안 : 심사위원장이 심사위원들 채점 과정에 관여하는 일은 없었나?

심사위원 : 심사위원장뿐 아니라 방통위에서도 압력을 가하거나 어떤 언질을 주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방통위가 채점 과정에서 외형적인 공정성을 위한 노력은 많이 했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심사위원장이나 다른 심사위원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하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다.

"심사위, 적어도 방통위 구성비 '3대 2'라도 맞춰야"

프레시안 :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나. 그간 종편을 두고 나왔던 지적들에 비해 점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심사안을 만들었던 어느 인사가 "생각보다 높게 나와 놀랐다"고 했다.

심사위원 : 나도 놀랐다. 놀란 것보다 황당했다. 나도 심사를 한 사람이지만, 그런 점수가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당연히 종편이 재승인을 받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허탈하고 황당했다. 특히 '방송의 공적 책임·공공성·공익성의 실현가능성' 항목에서 4개사(JTBC·채널A·TV조선·뉴스Y) 모두 기준점을 넘었다는 얘기를 듣곤 무력감마저 느껴졌다.

문제는 심사위원들의 채점 과정이 아니다. 심사위원단 구성이 문제였다. 개별 항목 점수는 15명 중 심사위원장 몫, 최고·최저 점수를 뺀 나머지 점수들의 평균을 낸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개별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점수가 개개인의 판단에 달려있다. 심사위원 구성이 그만큼 중요해진단 얘기다. 그런데 이번 심사위원 15명 중 야당 추천은 3명밖에 없었다. 심사위 구성 자체가 너무 편파적으로 돼 있으니 그런 점수가 나온 것이다. 사실 심사위가 구성된 순간부터 예상한 결과였지만, 결과가 나오면서 심사위 구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번 심사위에 들어간 각 심사위원이 편향적인 인사들이었다는 말인가.

심사위원 : 내가 심사위원 한 분 한 분에 대해 평가할 순 없다. 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심사위 구성이 편파적이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다음 재승인 심사는 2017년,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다. 심사위 편파 구성 논란이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심사위원 : 지금 방통위가 여야 3대 2 구조다. 야당 방통위원들이 3대 2 구조에서도 맥을 못 췄다. 그런데 심사위는 15명 중 3명이었으니 야당 추천 인사들의 영향력을 기대하긴 더 어렵다. 동수로 구성되지 않는 이상 편파 논란이 그대로 갈 것이다. 여야 간에 타협을 하든 관련법을 만들든, 적어도 방통위처럼, 심사위 구성이 비교적 공정하게 되도록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 심사 결과를 놓고 봤을 때, 평가 방식에서 또 어떤 문제들이 두드러졌나.

심사위원 :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한 정량평가에 비해 심사위원의 재량과 판단에 의한 정성평가 비중이 너무 크다. 배점이 70인 항목이 있다고 하면, 정량평가에선 70의 몇 % 이하로는 점수를 주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정성평가에선 70점 가운데 몇 점이든 심사위원이 알아서 줄 수 있다. 그러니 심사위원에 따라 점수가 크게 갈리는 것이다.

또, 제재 건수가 재승인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감점 항목의 배점을 올려야 한다. 이번에 '시정명령의 횟수와 시정명령에 대한 불이행 사례' 감점이 너무 적어서 이 항목이 유명무실했다. 이런 부분들을 방통위에서 다시 손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JTBC·채널A·TV조선 등 종편 3사와, 뉴스Y는 생명을 연장했다. 어쨌거나 미디어 생태계에 적어도 2017년까지는 존재한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나온 문제점에 대해 방송사 차원의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은가.

심사위원 : 종편은 종합편성프로그램이다. 이름에 비하면 시사보도프로그램 편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비중을 낮춰야 한다. 그리고 종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방송 출연자가 막말·편파 발언 등을 하면 자체적으로 검증 시스템을 돌려서 해당 출연자를 퇴출시켜야 한다. 사업계획서에는 그런 기구를 다 만들었다고 하는데,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고쳐지지 않으면 종편은 앞으로도 막말·저질 방송이라는 얘기를 계속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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