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 무효 판결에 법정 '울음바다'

'긴박한 경영상 위기' 입증 실패, '회계 조작' 인정…사측 "상고할 것"

서울고등법원이 1심을 뒤집고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해고는 근로기준법상 부당 해고이며 따라서 '무효'라고 판결했다. 24명의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렸고, 쌍용차는 "인정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상고 의지를 밝혔다.

7일 서울고법 민사 2부(부장판사 조해현)는 쌍용차 해고자 153명이 2010년 11월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980명을 정리해고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었다는 판단 결과다.

재판부는 "당시 쌍용차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나 구조적이고 계속적인 재무 건전성 등의 위기는 분명한 상황이 아니었고, 인원 감축 규모와 관련한 자료도 뚜렷하지 않다"며 "이 사건 정리해고는 근로기준법상 유효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다 읽은 후 "재판은 승패를 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며 "이를 위해 각자 기여할 몫이 무언인지 성찰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앞으로 대법원 재판까지 갈 수도 있을 텐데 부디 그때까지 잘 인내하길 바라고, 그 기간이 길지 않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는 불인정, '회계 조작'은 사실상 전부 인정

이렇듯 1심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게 된 데는, 재판부가 노조 측의 '쌍용차 회계 조작' 주장을 사실상 전부 인정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앞서 지난해 6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이하 지부)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은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위해 유형자산 손상차손 5176억 원을 부풀렸다'며 회계 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추가 물증을 제시했다.

회계 감사 조서 작성을 맡았던 안진 회계법인과 쌍용차가, 장부가액은 실제보다 과다 계산하고 순 매각가액과 공용자산의 사용가치는 누락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파산을 '기획'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작성된 회계 감사 조서는 법정에 제출돼 2646명(총인원의 36%)에 대한 구조조정의 핵심 논거로 활용됐다. (☞관련 기사 보기 : 쌍용차, 정리해고 위한 회계 조작 의혹 물증 또 나와)

노조 측은 이번 항소심에서 이러한 회계 조작 정황과 근거를 주요하게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며 "과다 계상에 따라 작성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한 피고의 판단(재무건전성 위기)이 적정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쌍용차지부는 판결 직후 낸 성명에서 "쌍용차와 안진회계법인의 범죄 행위가 인정됐다"며 "검찰과 금융감독원, 정치권은 이와 관련해 책임 있는 추가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재작년 5월 열린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 범국민대회 모습. 이날은 22번째 희생자의 49재 다음날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법정 울음바다…"진실의 문 열어준 재판부에 감사"

5년에 걸친 '부당 해고'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법정은 울음바다가 됐다.

승소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지난 5년간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전국을 떠돌며 노숙‧농성, 단식, 190일 간의 철탑 고공 농성 등을 해왔다"며 "승소 취지로 읽어나가는 재판부의 판결을 들으며 눈물만 나왔고 귀를 의심했다"고 말했다.

해고자 측 법정 대리인이었던 권영국 변호사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승소를 확신하지 못했다"며 "법원이 회계 조작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없었음을 인정한 것은, 앞으로도 많은 사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쌍용차지부는 이날 판결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며 "정치적 문제까지 엮인 사안임에도 법의 눈으로 끝까지 진실의 문을 열어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노동계와 시민 단체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번 판결이 기업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정리해고 관례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쌍용차는 이번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여 해고 노동자 복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 또한 논평을 내고 "오랜 세월 이어진 사회적 갈등이 이번 판결로 해소되길 바란다"며 "남아 있는 손배‧가압류와 공권력 남용 등의 과제 역시 사회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지난 2009년 77일간 옥쇄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등이 46억여 원 쌍용차와 경찰에 손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 쌍용차 파업 노동자에게 46억 배상 판결, "사법부마저… ")

▲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이 지난해 10월 14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쌍용차 "정리해고 복직, 아직 결정된 것 없다…상고할 것"

쌍용차는 이날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7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경영 위기에 내몰린 기업에 '회생'을 허락하지 않은 잘못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쌍용차는 2009년 회생이냐 청산이냐는 갈림길 위에 있었는데, 인제 와서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결하는 것은 당시에 청산밖에 답이 없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감정인으로 선임한 서울대 회계학과 교수 역시 손상차손이 합리적으로 계산됐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상고하겠다"라고 말했다.

해고 무효 판결과 쌍용차 측의 해고자 복직 계획은 무관하다고도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앞서 밝혔던 대로, 티에프 팀을 통해 신차 생산을 위해 필요한 인력 규모와 투입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희망퇴직자 안에 정리해고자도 포함된다. 다만, 실제 필요 인력 이상을 다 복직 대상에 올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쌍용차는 지난 2009년 4월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발표했으며 노동자들은 이에 반발해 평택 공장 등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극한 노사 대립 끝에 159명이 정리해고 됐으며 455명이 무급 휴직, 1904명이 희망 퇴직했다. 이 가운데 무급 휴직자들은 지난해 4월 현장에 복귀했지만 정리 해고자들은 여전히 복귀하지 못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쌍용차 이유일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증인으로 출석, "복직을 위한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해, 8.6 합의서에 명시된 희망퇴직자를 중심으로 복직 시기와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며 정리해고자들에 대해선 "해고 무효 소송의 사법부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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