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급식 외주…엄마들 '분노'

노조 "환자 안전 위해 어린이병원 식당 직영해야"

"병원에서 나오는 밥이라 믿었는데…."

서울대병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23일,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서유진(가명) 씨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아들의 휠체어를 끌고 소아암 병동을 나서던 서 씨는 "어린이병원 식사가 외주업체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수술을 받고 면역력이 떨어진 아들은 폐렴에 걸려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입원했고, 서 씨는 지난달부터 한 달 넘게 병원에서 숙식을 했다. 그는 "일반 식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특식 신청서가 나와서 신청했더니 너무 허접했다"며 "식빵 두 장에 잼, 스프, 계란이 있는 샌드위치 가격이 8000원이었고, 자장면에도 야채가 양파밖에 없었다"고 했다.

서 씨는 "똑같은 암에 걸려도 어른 환자에게는 본원이 직영 식사를 제공하고, 어린이병원이라고 외주 식사를 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병원이 직접 만드는 줄 알고 믿었는데, 식사가 외주라고 공고라도 했으면 (소아암 환자) 엄마들 반응이 좀 달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이병원 오븐 더러워도 모른다?"

서울대병원 본원 식당이 직영인 것과는 달리, 어린이병원 식당은 2000년부터 외주화됐다. "면역력과 체력이 약한 어린이 환자 식사를 외주화하면 치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노조의 주장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환자 식사를 맡고 있는 외주업체는 LG아워홈이다.

24일로 파업 이틀째를 맞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는 2013년 임금단체협상 의료 공공성 관련 주요 요구로 '어린이병원 환자 식사 직영 전환'을 내걸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병원이 관리하는 것이라고는 어린이병원 식당에 영양사 한 명을 파견한 것이 전부"라며 "외부 위탁하면 병원이 일상적인 관리를 할 수 없고,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조속하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최근 본원이 직영하는 식당의 오븐이 고장 나서 어린이병원 오븐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어린이병원 오븐이 너무 더러워서 쓰기 힘들었다"는 근거를 들었다. 이마저 '오븐 고장'이라는 돌발 상황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실태였다는 것이다.

▲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발견한 어린이병원 오븐. 서울대병원노조는 "오븐이 지저분해서 쓸 수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병원 측은 "상식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서울대병원분회 제공

"병원식 외주화, 환자 한 명당 하루 1860원 손해"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은 "어린이병원 식당은 경영상의(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고려해서 외주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어린이병원에서 환자 식사를 외주 운영하는 것은 환자 안전과 비용 측면에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은 환자 식사를 직영하는 병원에 하루 1860원씩 추가 수가(지원금)를 지급한다. 노조는 "외주화로 어린이 환자에게 하루 1860원만큼 더 질 낮은 식사를 제공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입원 환자 식당을 직접 운영할 때 건강보험공단이 한 끼당 수가 620원을 추가로 제공한다. ⓒ보건복지부

노조는 "건강보험 수가 가산 지급을 고려하면 외주화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도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노조가 직영 운영할 때와 외주 운영할 때 비용 차이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으나, 병원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린이 환자 보호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뇌혈관 수술을 받은 8살 손자를 데리고 대구에서 서울대병원까지 올라온 임옥경(63) 씨는 "내내 모르다가 오늘에야 (위탁인 걸) 알았다"며 "재료를 어떤 걸 쓰는지 모르겠고 반찬이 맛이 없는데, 병원이 자체로 하면 좀 안 낫겠느냐"고 말했다.

서유진 씨는 "외주 업체가 원가를 줄이려고 할 텐데 어떤 재료가 쓰이는지 궁금하고, 입찰 과정에서 로비 같은 게 있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분회가 지난 7월 어린이병원 환자 보호자 53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6%(48명)가 외주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 86.8%(46명)가 "문제의 책임이 병원에 있다"고 답했으며, 83.0%(44명)가 "직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대병원분회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은 "외주를 줬다고 해서 외주업체에 전적으로 맡기지는 않고, (병원도) 관리 감독을 하고 있다"며 "안전 문제도 감안해서 외주를 줬다"고 말했다. 오븐이 지저분했다는 노조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확인은 못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외주와 직영 식당의 운영 비용을 공개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비용 문제 때문에 외주를 준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며 거절했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은 "백혈병 등 암 환자에게는 특히 병원이 안전 관리를 하면서 무균식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서울대병원은 국립대병원이라 그나마 문제가 알려졌다"며 "보건복지부가 대형 병원 전반의 식당, 시설 등 병원 내 외주화·안전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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