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조직문화가 기관사 자살원인…서울시 책임은?"

기관사 건강검진 결과 "자살 위험군, 무려 33명"

1년 6개월동안 한 사업장의 특정 직군에서 세 명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 정 모 씨의 사망 원인이 '직무상 스트레스'와 '강압적 조직문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기춘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이날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 일부로 정 씨의 '경제적 사정'을 들고, 지하철 기관사의 근무 환경에 대한 해결책으로 '완전 무인화'를 제시하는 등 논란을 예고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기획
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②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③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
④ 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
⑤ 업무 관련 스트레스로 기관사 자살, 산재 아니다?
⑥ 어느 기관사의 죽음…진단서 없어 산재 아니다?

"강압적 조직 문화가 기관사 자살 원인…서울시는 책임 없나"

기관사들의 자살은 직무스트레스와 관련이 높다는 것은 각종 역학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황선웅 기관사의 경우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산재로 인정을 받은 적이 있다. 어두컴컴한 지하환경, 장시간의 운전과 불규칙한 생활에 따른 피로, 시간에 대한 강박 등은 직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이는 고질적 문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직장내 강압적 조직 문화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2013년 건강검진 결과에서 지적했듯이 직장내 상사 동료와의 갈등인 '관계갈등', 정해진 규정에 따라야만 하는 '직무 자율성',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인 '보상 부적절'이 물리적 환경 못지않게 자살사고에 높은 영향을 준다"며 "도시철도의 조직 문화, 관리자들의 행패가 기관사 자살에 주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이날 공개한 올해 임시 건강 검진 결과, 검진을 수행한 카톨릭대학교병원은 "자살사고를 낮추기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 직무경험의 문제를 넘어 직무자율, 관계갈등, 보상부적절 등의 직무스트레스 요인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시 최적근무위원회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조직 문화에 대해 "일부 부서는 업무량 때문에 혹은 평가방식 때문에 기피부서가 되어 있으면서도, 업무량에 대한 혹은 평가 체계에 대한 모순과 문제점은 나서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적도 있다. 이같은 문제점이 있는 대표적인 직군이 승무직(기관사)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 원인을 두고 '직무 스트레스'와 '강압적 조직 문화'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 사진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사업장인 서울도시철도공사(5.6.7.8호선)과 관계없다. ⓒ연합뉴스

노조는 "우리는 1년 6개월전 고(故) 이재민 기관사의 죽음에서 책임자 처벌을 통한 인적쇄신을 요구했었다. 9개월 전 고(故) 황선웅 기관사의 죽음 앞에 책임자 처벌, 조직문화 쇄신을 다짐하며 싸워왔다"며 "하지만 기관사를 대하는 관리자들, 상급자들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故) 정 기관사의 죽음으로 돌아왔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김기춘 사장과 이희순 운영본부장은 재발방지를 위한 2월 7일 노사합의사항의 절반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윗물이 썩었는데 아랫물이 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관사들은 현장의 소장과 하급 관리자들의 낡은 조직문화와 인격적인 모독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어 "서울시도 세 분의 죽음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시는 기관사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책임자 처벌, 인적 쇄신 문제는 외면했다"며 "그렇게 기관사들의 요구를,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다보니 인권운동가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 아래에서 3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 명의 기관사 목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올해 임시 건강 검진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기관사(자살사고군)는 980명 중 3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자살 생각'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한 결과다. 이번에 숨진 정 씨도 4년 전부터 신경질환으로 고통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황선웅 기관사와 비슷한 사례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도시철도공사는 만성적인 죽음의 사업장이 되어버렸다. 내일 당장 또 다른 기관사의 자살소식을 듣는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김기춘 사장 '경제 사정' 원인으로 돌려 논란 예고

이날 국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지하철 기관사 자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는 민주당 김현 의원읠 질문에 박원순 시장은 "중대한 문제"라며 "이번 사건을 보면 어떤 변명도 하기 힘들다고 보고 전면적으로 (조치 상황 등을) 검토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직접 전동차를 탄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있으면 공황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여러 조치 취한다고 했는데 사고가 난 것을 보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기춘 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죄송하다"면서도 "기관사들 힘들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보고 가면 세월이 지나면 정신이 피폐해진다. (프랑스) 파리가 완전 자동화로 가는 것도 그런 이유"라면서 '지하철 무인화'의 논리를 내세워 논란을 예고했다. 파리는 일부 노선의 경우 무인 지하철을 운영한다.

김 사장은 "더구나 공사 구조 합리화 과정을 거치면서 실질적인 기관사 수입이 1년에 400~500만 원 줄었다. 지방에 비해 보수가 적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 보니, 재태크에 신경 쓰다 보니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번 자살 사건의 원인 일부를 기관사 개인의 '경제적 문제'로 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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