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 발표 연기…왜?

민주당, 절차적 문제제기하며 보고 무산시켜

정부가 향후 5년간 대북정책의 뼈대가 될 '제2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국회에 보고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보고를 거부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7일 2013년 국정감사 이후 처음 열리는 국회 외통위 상임위원회에 확정된 기본계획을 보고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기본계획을 보고하려 한다며 이를 순연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외통위 민주당 간사 심재권 의원은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는 예산이 수반되는 기본계획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면서 현 상황에서 보고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또 "헌법 89조에도 국정 기본계획은 국무회의 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계획은 국무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았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예산 문제는 당연히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이는 오늘 보고 이후 해도 된다"고 대응했다. 또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안에 국무회의 심의가 아니라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심의를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2007년 1차 기본계획을 세웠을 때는 국무회의 심의를 받았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음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2007년) 당시 외통위 보고 이전에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보고를 거쳐서 1차 기본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면서 이번 2차계획이 졸속처리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당시에는 국회에도 (1차계획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통일부 장차관이나 실국장이 국회에 와서 설명한 적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야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여당은 보고를 순연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였고 결국 다음 상임위 때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야당이 절차상의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통일부의 보고를 무산시켰지만, 실제로는10.4 공동선언의 주요 내용이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이번 계획에 누락되어 있는 등 내용 상의 문제가 보고를 순연시킨 주요 이유인 것으로 관측된다.


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 어떤 내용이길래?

정부가 이날 국회에 보고하려 했던 기본계획의 10대 세부 과제는 크게 남북관계 발전과 실질적 통일준비로 나누어져 있다. 남북관계 발전에는 ▲ 남북 당국 간 대화 추진 및 합의 이행 제도화 ▲ 인도적 문제 해결 ▲ 호혜적 교류협력 확대·심화 ▲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 북핵문제 해결 등의 과제가 포함됐다. 실질적 통일준비 분야에는 ▲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추진 ▲ 북한이탈주민 맞춤형 정착지원 ▲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통일교육 ▲ 평화통일을 위한 역량 강화 ▲ 통일외교를 통한 국제적 통일 공감대 확산 등으로 구성돼있다.

지난 2007년 11월 수립됐던 1차 기본계획과 비교해 이번 계획에는 '실질적 통일준비'라는 새로운 과제가 대거 추가됐다. 1차 계획에는 ▲ 한반도 비핵화 실현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 남북경제공동체 초기단계 진입 ▲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 교류 ▲ 인도적 문제 해결 ▲ 남북관계 법적·제도적 기반 조성 ▲ 대북정책 협력 강화 등이 주요 과제로 꼽혀 통일 준비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또 이번 계획에는 2007년 10.4선언 합의 내용 중 하나였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이 제외됐다. 지난 9월 말 계획의 초안이 공개된 바 있는데, 당시 초안에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이 빠져 있어, 현 정부가 10.4선언 이행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5년 사이에 남북관계의 상황 변화도 있었고 기본계획이라는 성격상 사업을 따로 명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기존 합의를 준수한다는 것이 들어가 있고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을 하면서 해나가겠다고 밝혔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10.4선언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는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10.4선언뿐만 아니라 기존 남북 간 합의를 준수하는 것은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남북 합의가 현실적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구체적 사업을 명시해서 이행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계획에 세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상당수 붙어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남북 교류와 관련된 항목에서 '남북관계 상황이 진전됨에 따라' 라는 조건이 다수 달려있다. 예를 들어 남북 경제 분야 사업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점진적으로' 협력 확대한다고 규정돼 있다. 인도적 지원 사업 역시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당국차원의 지원을 '검토'한다고 나와 있다.

정부가 대부분의 남북 교류협력에 남북관계 상황을 조건으로 달았지만 정작 남북관계 상황을 어떻게 진전시킬지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거나 이끌어가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아 다소 수동적인 계획이라고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 당국자는 남북관계가 예측하기 힘든 '가변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기본 계획에 대해 "5년 사이에 남북관계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면 그것에 따라 교류협력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기본계획에 세부적인 추진 계획이 빠져있다는 것에 대해 이 당국자는 "기본계획 이후에 연도별 시행계획을 별도로 수립한다"며 "그 계획에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핵심 공약인 DMZ 세계 평화공원 조성은 단일사업임에도 이번 기본계획에 포함됐다. 계획에는 "남북협의와 함께 미·중·유엔 등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 국제 규범과 절차에 맞게 추진"한다고 나와 있으며 이를 시행하는 데에 있어 별다른 조건도 달지 않아 다른 대북 교류협력사업 계획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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