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의 덩샤오핑 꿈꾸나?

[정욱식의 평화만들기] 북한군 30만 명 감축이 시사하는 점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로 6월 28일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를 냈다. 지난 12일로 준비호 3호를 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뽑은 뉴스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흐름으로서의 뉴스', '지식으로서의 뉴스'를 추구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 조합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유료인 콘텐츠다. <주간 프레시안 뷰>를 보고자 하는 독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7월 한 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지난 12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에 실린 글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이번 주 여러분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뉴스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주목한 뉴스가 하나 있었는데요. 일본의 아사히 TV의 민영 계열사인 <ANN>이 북한군 관계자를 인용해 30만 명의 병력을 감축키로 했다는 보도를 했더군요.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주목할 만합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간추린 소식부터 전해드릴게요. 먼저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관계 소식입니다. 남북한은 10일 개성공단에서 제2차 당국 간 실무회담을 열어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남측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피해에 관한 북한의 책임 인정과 재발 방지 확약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측은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된 데에는 남측의 책임이 크다며 우선 정상화부터 하자고 맞섰습니다. 결국 15일 3차 실무회담을 열기로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회담을 오는 17일,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회담은 19일 개최할 것을 제의했는데요. 남측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은 수용하되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은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두 회담 모두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남북 양측의 기 싸움이 정도를 벗어난 느낌입니다.

NLL 파동도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변인이 10일 성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을 뜯어보면 북한 군부의 입장을, 그것도 없는 내용까지 덧붙여서 너무나도 충실히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국방부는 국정원을 거들고 있고요. 한마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게 맞다'는 것인데요. 조직 안보와 정략적 목적에 눈이 멀어도 너무 먼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 <프레시안>을 통해 집중 조명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연합뉴스>가 인용한 <ANN>이 보도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현재 북한군은 119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장교 5만 명, 사병 25만 명 등 30만 명을 줄여 경제 부문으로 이동시키라고 했답니다. 특히 이는 최고사령부의 명령이고, 6월 10일 자로 명령이 하달돼 8월 말까지 완료하라고 했다는군요.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日민방 "北, 병력 30만 줄여 경제부문 배치")

이와 관련해 7월 12일 현재까지 북한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는 상태이고 우리 군 당국은 관련 첩보가 없다며 사실 확인 중이라는 반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보도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이 병력 감축을 비롯한 재래식 군축에 나설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선군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일 수 있지만, 김정은의 북한은 핵보유를 통해 이게 가능해졌다고 믿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북한이 올해 3월 31일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발표하고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추인했을 때부터 잉태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병진노선의 참다운 우월성은 국방비를 추가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북한은 작년 6월 29일 자 <로동신문>을 통해서도 "선군정치로 국력이 다져진 조건에서 이제 경제 강국의 용마루에 올라서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핵 무력'이라는 강력한 억제력을 갖게 되어 안보 문제를 해결하게 된 만큼, 이제는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여 경제건설에 집중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 북한 김정은(왼쪽)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그럼 북한의 이러한 노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기실 '핵을 가졌으니 군비 부담을 줄여 경제발전에 매진하자'는 생각은 다른 핵보유국 지도자들도 많이들 했던 생각입니다. 세계 최초로 핵보유국 지도자가 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폭등한 군비 부담을 핵전력 강화를 통해 줄여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의 군사비는 반등하게 됩니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뉴 룩(New Look)'을 주창했습니다.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핵 능력은 강화하면서 재래식 군사력은 크게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아이젠하워도 퇴임하면서 군산복합체의 과도한 영향력을 경계하는 연설을 담겼습니다. 소련의 흐루쇼프도 "군비 부담 때문에 못 살겠다"며 핵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키고 재래식 군축을 시도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핵무기 보유가 군비 감축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2년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를 보면 5대 핵보유국들은 세계 군비지출의 1위부터 5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핵보유국인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의 순위도 각각 8위, 17위, 33위입니다. 경제 후진국이자 인도라는 강대국과 맞서고 있는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 이후 14년 만에 자국 화폐 기준으로 군사비가 무려 4배나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후진국 가운데 핵무장 이후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1964년과 1967년에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실험, 그리고 60년대 후반에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중국은 이를 '양탄일성(兩彈一星)'이라고 부르면서 국력 신장의 원천이었다고 간주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양탄일성을 보유한 후 1980년대 말까지 군비지출을 억제해 경제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가장 부러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흥미로운 점은 중화권의 한 언론이 이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10일 둬웨이(多維)라는 매체는 북한의 군 병력 감축 소식에 주목하고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중국의 개혁·개방의 기수인 덩샤오핑(鄧小平)이 되려고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것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전략과 비슷한 것이고, 김정은 체제가 군 감축에 나서고 있는 것은 "덩사오핑 시대 군사 감축 정책과 비슷하다"는 거죠. 그리고는 "북한이 중국과 같이 개혁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김정은 군 감축, '中 덩샤오핑 따라 개혁'…中 둬웨이)

그렇다면 김정은은 핵보유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요? 일단 관건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대외 환경의 개선 여부입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 급격한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숙적이었던 미국·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라는 대외적인 환경 변화가 주요했습니다. 이들 나라와의 관계 개선은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재정적·기술적 지원과 무역 특혜를 수반했으니까요. 하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핵 보유를 고수하는 한 경제 발전에 필요한 대외적 환경 조성은 어렵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실제로 재래식 군축에 성공해 군비를 경제발전에 투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이와 관련해 병력 감축 소식과 함께 김정은이 경제통인 박봉주를 총리로 기용하면서 내각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데요. 이것이 북한 경제를 질식시키고 있는 제2경제위원회(국방공업 담당)의 개혁과 맞물린다면 경제발전에 필요한 내부 자원을 일부 조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북한은 외화난, 에너지난, 식량난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고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도 날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부적인 개혁조치만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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