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매, 집주인은 '폭탄' 세입자는 '유탄'

[현장] 매물만 넘치는 경매 법정 가보니…

오전 9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5계 경매법정. 경매가 시작되기 30분 전이지만 이미 법정 복도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모두가 경매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2금융권 대출영업 실장부터 경매정보 무료 이용권과 부동산 투자 무료강의 전단을 뿌리는 50대 여성까지. 부동산 관련 '꾼'들의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10여 명이 부동산 경매 전문 강사에게 경매 절차에 관한 '팁'을 듣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강사는 이날 경매 물건이 몇 건 나왔는지, 경매 신청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유의점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인천에 사는 박명숙(가명·53) 씨는 "요즘 경매 물건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매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왔다"며 "지금은 이래저래 공부하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부부동반으로 경매법정을 찾은 이기영(가명·37) 씨도 "틈틈이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부동산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며 "그간 보아온 쓸 만한 부동산이 얼마에 팔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불황기 때 호황인 사업 중 하나가 경매 사업이다. 300석 규모의 경매법정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처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한 사람들은 좌석 뒤편에 서서 경매 과정을 지켜봤다. 부동산 전문업체 직원부터 백발노인, 20대 여성, 아이와 함께 온 30대 여성까지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서울 송파구 잠실2단지 상가 내 공인중개업소에 내걸린 '급매매' 매물표. ⓒ연합뉴스

넘쳐나는 경매 물건, 하지만 낙찰 물건은 적어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주택이 경매에 나오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수도권에서 경매에 나온 아파트는 모두 2842건으로 월간 기준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202건)보다 29% 늘어난 수준이다.

1월 2406건이던 아파트 경매 건수는 2월 2455건, 3월 2750건 등 지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영향으로 지난달 단독주택 등을 포함한 전체 경매물건 수도 올 들어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경매 전문가들은 하우스푸어가 이자 상환과 원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계 경매법정에 나온 경매물건도 같은 이유였다. 경매에 나온 물건은 61건. 이 중 제2금융권이 채권자인 경우는 29건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그간 쌓인 부채로 은행권 대출이 힘드니 제2금융권으로 대출을 갈아탔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지면서 집을 경매에 내놓게 된 케이스다.

하지만 이날 경매가 진행된 물건은 단 10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51건엔 신청조차 없었다.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경매 물건이 많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건 맞지만, 이것이 입찰 참여와 연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라 선뜻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약 6개월간 전국 아파트 경매 응찰자 수는 4만1719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6만281명에 비해 30.1%나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복되는 유찰, 결국 낙찰돼도 빚 청산 어려워

매물이 많은데 낙찰되는 물건이 없다는 건 유찰되는 물건이 많다는 의미다.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가와 부동산 불황기가 그 이유다. 문제는 유찰되는 횟수가 많을수록 가격은 내려간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84m²)는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 10억5000만 원보다 24% 낮은 7억9235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아파트가 경매시장에서 8억 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4년 이후 8년 만이다. 매매가가 최고 14억 원까지 치솟았던 2006년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평균 낙찰가는 감정가의 78% 선이지만 이 수치는 지속해서 내려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평균 낙찰가율은 77.2%로 작년 동기 대비 84.8%에 비해 7.6%포인트 떨어졌다.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이날 진행된 경매 낙찰가는 이보다도 더 낮았다. 성북구에 있는 빌라는 세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절반 수준에서 낙찰됐고 동작구에 있는 빌라도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64% 수준에서 인수자가 나타났다. 다른 매물도 대동소이했다.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빌라의 경우, 이번에 유찰돼 다음 달에 다시 경매에 나온다. 4차례 유찰돼 입찰예정가는 감정가의 41%다.

▲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이 아파트가 경매로 나와 7억 대에 팔렸다. ⓒ연합뉴스

집주인의 무리한 대출, 유탄 맞는 세입자들

유찰이 반복되면 가격이 내려가 나중에 낙찰된다 해도 가옥주 빚은 청산되기 어려워진다. 이날 유찰된 것 중에는 그런 조짐을 보이는 물건이 상당수 있었다. 경매에 나온 61건의 물건 중 유찰된 물건은 50건이었다.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는 최저입찰가가 8억4000만 원, 즉 아파트의 총부채가 8억4000만 원이지만 이날 유찰되면서 아파트는 다음 달 경매로 넘어갔다. 이렇게 되면 입찰예정가는 감정가의 64%인 6억7200만 원이 된다. 결국, 경매로 집이 넘어가도 1억이 넘는 부채가 남는다.

낙찰가가 내려갈 경우, 고통은 세입자에게도 전가된다. 팔리는 금액보다 빚이 더 많으면, 채권자 후순위에 있는 세입자의 보증금이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유찰된 강남구 대치동 빌라의 경우, 빚을 청산하려면 집이 4억4800만 원에 팔려야 한다. 하지만 두 차례 유찰돼 다음 달 경매에선 3억5840만 원으로 입찰예정가가 정해졌다.

이 가격대로 낙찰되면 이 집에서 살고 있던 세입자 A씨의 보증금 3000만 원은 고스란히 날아 간다. 채권자 국민은행 대출금액이 4억2000만 원이기 때문이다.

성북구에 있는 빌라도 마찬가지다. 쌓인 빚을 다 갚으려면 빌라가 23억2200만 원에 팔려야 하지만 이 가격은 유찰됐다. 자연히 입찰예정가는 64%인 17억8669만 원으로 내려갔다. 이 금액에 팔리면 여기에 전세 들어 살던 B씨의 전세금 2억 원은 사라진다.

한몫 잡아보겠다고 무리하게 대출받아 투자한 부동산이 자신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손해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입자나 하우스푸어에 관한 구제 방안보다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해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빚에 허덕이는 구조임에도 또다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종용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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