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을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시켜서야…"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ㆍ⑤] 공급구조 공공적 개편해야

지난 1일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만 4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섯 살 생일을 마음껏 축하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태동한 이 제도가 지닌 선한 취지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제도 이용자 처지에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심각하다. 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은 기본적인 노동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그냥 버릴 수는 없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 제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좋은 제도는 왜 '애물단지'가 됐을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놓인 현실은 정치권에서 구호로만 떠도는 복지 담론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프레시안>은 일선에서 복지 업무를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의 현실을 짚으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
"깨물리고 따귀 맞으며 밤샘 근무 한 대가가 125만원"
"반신불수 할아버지 목욕시켜드리는데 갑자기…"
"치매 어머니 안고 뛰어내리고 싶지만…"
"요양보호사들, 옷 갈아입을 때 보면 파스 도배"

얼마 전 오래간만에 인권위로부터 반가운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적용을 받아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의 인권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권고안이었다. 그동안 인권위원장이 보여 온 퇴행적 행동에 비추어볼 때 이번 결정만으로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요양보호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적절한 권고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만하다. 이처럼 이전 정부의 인권위와는 달리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권적 상황에 대하여 애써 외면해왔던 인권위가 요양보호사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만 보더라도 요양보호사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양보호사의 처절한 인권 상황이 발생한 데에는 구조적으로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사회문화적 환경과 어르신의 돌봄 문제를 가족 복지나 잔여적 방법으로 해결하면서 문제를 감추어왔던 과거의 잔재가 두껍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르신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노동의 질도 담보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장기요양에 대한 좀 더 과감한 개혁이 요구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부는 그러한 길을 따르지 않고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손쉬운 길만을 선택해왔다. 그렇지만, 그 길은 시작만 순탄할 뿐 시간이 갈수록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길이다. 지금 그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도, 그리고 요양보호사도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공급구조의 공공성에서 문제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장기요양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고 서비스 공급기관에 얼마나 나누어줄 것인가를 고민했지, 서비스의 공급이 어떠한 절차와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공급기관과 서비스 제공 인력은 어느 수준의 질을 확보해야 하고 어느 수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다른 부문과 연계를 어떻게 확보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지역사회 자원들과 통합적 접근을 가능하게 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즉,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대표되는 재원조달의 공공성만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공급구조의 공공성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재원은 공공이 담당하지만, 공급은 시장 기능에 맡겨버리는 악수(惡手)를 두게 되었다.

그 파장은 신속하게 그리고 매우 파괴적으로 나타났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재원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상황에서 공급을 시장에 맡기게 되자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다른 부문과 달리 요양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억제되고 서비스에 대한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기 어려운 장기요양의 특성과 맞물려 공급기관의 극단적 이윤 논리가 서비스의 질 저하와 노동권의 악화로 나타났다. 더욱이 이를 감시하고 감독할 만한 기제가 전혀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2011년 10월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리는 가운데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인권 상황 외면하던 '현병철 인권위'조차 개선 권고

요약해보면, 장기요양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구조에 대한 공공적 개입 자체를 포기한 결과가 지금의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 악화, 인권 침해, 서 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 당연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공급구조의 전면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지는 과정부터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무정부상태다. 돌봄에 대한 가치가 저하되어 있고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에 맞는 서비스를 평가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보육 등에 비해서 욕구가 매우 억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논리로 등급만 판정하고 나서 등급에 따라서 알아서 시장에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하는 것은 완전한 방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건강보험공단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노인돌봄서비스센터를 만들어 해당 지역에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분들의 욕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각각의 욕구에 맞는 케어플랜(care plan)을 수립하여 적절한 장기요양 서비스 공급기관 및 지역사회 보건복지 자원에 의뢰하여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나 가족들이 좀 더 접근하기 용이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격한 기준과 조건을 통과한 공급기관 중에서 접근성을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선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공급기관이 끼워 팔기, 본인부담 할인을 통한 유인과 질 낮은 서비스의 제공 문제, 요양보호사에게 환자 호객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는 행위 등이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케어플랜에 기초하여 욕구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어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급기관도 안정적인 서비스 공급량을 확보할 수 있어서 요양보호사 등의 고용 안정과 안정적인 근로 환경의 구축도 가능할 수 있다. 또한, 공급기관이 불필요한 영업행위를 하지 않고 서비스 공급에만 신경을 집중할 수 있어서 질적 향상도 꾀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러한 노인돌봄서비스센터 등에 공급기관에 대한 평가와 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이에 근거하여 부실하고 질이 낮은 공급기관, 요양보호사에게 적절한 근로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공급기관을 퇴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공급기관도 지금처럼 신청이 아니라 지자체장의 허가로 공급을 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급기관의 소유형태를 포함한 거버넌스(governance) 문제도 개혁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처럼 공공적 성격이 강한 사회서비스 분야에 진출한 개인 또는 법인의 공공성이 약한 나라도 드물다. 한마디로 자영업자 의식이 강하다. '내가 돈을 들여서 기관을 만들었는데 왜 내가 마음대로 운영할 수 없느냐'는 공급기관의 항변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적 관점이 부재한가를 보여준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개인이든 법인이든 사회서비스 분야에 진출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통의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책무성을 스스로 떠안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공공적 성격이 강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사회적 책무성은 시장의 사적인 거래 과정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성과 비견하여 훨씬 더 강한 사회적 기준과 엄격성을 요구받게 된다. 만약 그것이 억울하다고 느낀다면 그 개인이나 법인은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없는 함량 미달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시민사회 또는 지역사회의 역량이 성장해온 선진외국의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의 상황이 선진외국과 같이 지역사회 역량이 강하지 못하다면, 지역사회 역량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거나 상대적으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개인에게 공급기관 개설 자격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공급구조의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요양보호사의 근로조건과 임금수준, 고용 불안정성 등이 모두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측면만 보더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가나 지불보상 방법 등에 요양보호사의 근로조건 등을 연동시키는 방안 등의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공급구조의 개혁이 없다면 시장의 실패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는 요양보호사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해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공급구조 전면 개혁해 공공성 확보해야

몇 년 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 보건복지부 관계자와 벌인 토론이 생각난다. 현재와 같이 공급구조에 대한 계획 없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면 공급기관의 무분별한 증가와 경쟁의 심화, 서비스의 질 저하, 요양보호사의 노동권 제약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비판을 보건복지부 관계자에게 제기한 적이 있다. 그 관계자는 갑자기 몇 년 사이에 문제가 크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지금은 공급이 확대될 때이기 때문에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부작용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불과 5년이 되지 않은 시점인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그때 그 관계자가 얼마나 나이브(naive)한 생각을 가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값비싼 교훈이다. 그때 만약 신경을 조금만 썼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상당 부분 예방할 수도 있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중요한 갈림길에 와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면적인 공급구조의 개혁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여전히 시장이라는 공허한 신자유주의 논리를 입에 달고 현실을 외면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답은 자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오직 정부 관계자나 사회적 가치를 개인의 탐욕에 종속시키는 일부 공급자만 그 답을 못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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