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통큰' 고기만 찾는 당신, 공장식 축산의 '공범자'

[구제역 126일의 반성③] 소비자 변화 없인 밀집축산 못 바꾼다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사태가 126일 만에 마무리됐다. 3일 충남 홍성군을 끝으로 전국에 내려졌던 가축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됐다. 무너졌던 축산업은 재정비에 나섰고, 키우던 가축을 잃은 축산농가도 힘겨운 새 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넉달여 간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사태가 마침내 종식을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숙제는 남았다. 100일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가축 347만 마리가 땅 속에 묻히고 피해액만 3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가축 질병의 확산을 부채질한 국내 축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상황. 막대한 피해만큼이나 큰 교훈을 남겼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축산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단해 봤다. '구제역 126일의 반성' 시리즈는 총 4회에 걸쳐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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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
가축 찍어내는 '동물 공장', 구제역 '부메랑'으로
☞ 2편 : 비록 소는 잃었지만…외양간은 고치자!


구제역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주요 일간지 광고면에 일제히 파격적인 가격의 미국산 소갈비 광고가 실렸다. 100g에 1250원, 이른바 '통큰 갈비'였다. 이미 '통큰 치킨' 사건으로 한 차례 파문을 일으켰던 롯데마트가, 이번엔 값싼 갈비로 낙담에 빠진 한우농가의 가슴에 '통 크게' 불을 지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마트 측은 언론과 누리꾼들의 빈축을 샀지만, 평가야 어찌됐든 갈비는 무서운 속도로 팔려 나갔다. 행사 시작 나흘 만에 준비한 물량 250톤(80만 명 분)이 거의 다 소진됐다.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롯데마트에 이어 지난 3월엔 홈플러스가 1000원 짜리 생닭을 내놔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이름하여 '착한 생닭'. 병아리 한 마리의 원가가 800원이라는 점으로 미뤄 볼 때, 가뜩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추운 겨울을 보낸 양계농가의 입장에선 이름처럼 '착한' 가격은 아니었던 셈이다.

▲ 과연 '착한' 닭일까? 지난달 24일 1000원짜리 '착한 생닭'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소비자들. ⓒ연합뉴스

이렇듯 대형 유통업체의 저가 육류 공세 뒤엔 어김없이 더 싼 가격을 찾아 지갑을 여닫는 소비자들이 있었다. 업체들이야 이런 가격 후려치기를 '소비자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구제역과 AI 사태로 기반 자체가 흔들린 축산농가들은 "이런 식의 유통 구조가 계속되는 한 밀집 축산은 필연"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제역·AI 사태의 '범인'으로 가축 질병의 창궐을 낳은 이른바 '공장식 밀집 축산(Factory Farming)'이 거론되지만, 무조건 더 싼 고기만을 찾는 소비 패턴이 계속되는 한 생산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밀집 축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장식 축산, 생산자와 소비자의 '암묵적 합의'

따지고 보면 밀집 사육은 한국인의 늘어난 육류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1990년 19.9kg이던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0년 후인 2000년 32.0kg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육류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욕망과 이윤 창출을 위한 생산자 사이의 '암묵적 합의'가 가축 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진 것.

값싼 고기만을 찾는 현재의 유통구조 안에선 친환경 축산이 농가의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국내 축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사육두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친환경 축산은 농민들에게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경기 이천에서 만난 한 양돈 농장주는 "친환경 축산이 좋다는 걸 몰라서 안 하는게 아니다"라며 "안 그래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누가 손해 보며 친환경 축산을 하겠나. 더 잘 키웠으면 더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게 맞는 것인데, 현재 소비문화 자체가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 '공장식'으로 불리는 밀집 축산은 이번 구제역과 AI 사태의 '진범'으로 지목되지만, 축산업자들은 유통과 소비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밀집 축산을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축산농들의 푸념처럼, 대형기업이 지배하는 현재의 유통구조 안에선 '제 값 주고 먹기'조차 요원한 실정이다. 지난달 홈플러스가 1000원짜리 생닭을 내놓으며 저가 행렬에 동참하자, 보다 못한 축산농가들은 성명을 발표해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FTA, AI 등으로 양계농가의 한숨이 깊어져 가는데 대형마트들은 생산비 이하로 닭고기를 판매해 생산자들을 사면초가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며 "원가 이하의 미끼 상품으로 양계농가와 소비자를 우롱하고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친환경 축산, 소비자가 지갑 열 때 가능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 친환경 농축산물이 각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도시에 거주하는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2%가 '축산농가의 동물 사육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고, 이들 중 78%는 '돈을 더 주고서라도 동물복지형 축산물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쇠고기의 경우 35.5%, 돼지고기는 38%, 닭고기는 41.1%, 우유는 86.1%, 계란은 135.8%나 값을 더 지불한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매대 앞에서 지갑을 연 소비자의 선택은 달랐다. 계란은 '비싸도 친환경 식품이라면 사겠다'는 의지가 가장 높았던 품목이지만, 실제 대형마트들의 친환경 계란 매출은 전체 계란 매출의 10%대에 그치고 있다.

소비량이 적다보니, 생산 자체도 미미하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축산물 가운데 유기농·무항생제 축산물을 포함한 친환경 축산물의 비율은 8%에 불과하다. 그 중 유기농 축산물만 따지고 본다면 그 비율은 0.025%에 불과한 실정이다.

▲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키워지는 돼지. 가축 질병에 취약한 이들 돼지는 소비자들의 건강에도 좋을 리 없다.

정부도 친환경 축산물 유통과 소비 촉진을 위해 다양한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친환경 축산에 관한 인증제는 △유기농 축산물 인증(항생제·호르몬제가 포함되지 않은 유기농 사료만 먹은 축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항생제가 포함된 사료를 먹지 않은 축산물) △환경친화 축산농장 인증(밀집사육 지양한 동물복지형 농가)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축산물의 생산·가공을 위생적으로 관리) 등 4가지로, 인증 농가 역시 2010년 현재 6265곳에 이른다.

문제는 친환경 식품임을 구별하는 유일한 지표인 이들 인증제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낮다는 것이다. 주로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주부 김모(53) 씨는 "삼겹살을 살 때 HACCP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몇번 봤지만, 친환경 인증 식품인 줄은 몰랐다"며 "주로 국내산 중 저렴한 걸 이용하다보니 신경쓰지 못한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맞대면? 도농연대의 놀라운 '실험'

이런 상황에서 농촌공동체와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도농연대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맞대고, 잘 키운 고기를 제 값 주고 먹자는 취지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가톨릭농민회에선 '자급 퇴비 마련을 위한 암송아지 보내기 운동'을 몇 년째 진행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이 아닌 '전통 방식'으로 소를 키우고, 생산자가 안전하게 키운 소를 도시와 농촌이 함께 나누는 운동이다.

안동가톨릭농민회의 경우, 농가가 도시의 성당이나 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암송아지 입식 자금으로 2~3마리의 송아지를 구입해 전통 방식으로 키운다. 유전자조작(GMO) 배합사료 대신 무농약 볏집, 쌀겨, 옥수수대 등 농업부산물로 만든 안전한 자가 사료를 먹이고, 소를 키우며 나오는 소똥을 발효시켜 우량 퇴비를 만든다. 이 퇴비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이 받아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쓰인다. 이렇게 생산된 쇠고기와 농산물은 도농결연을 통해 지원을 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고, 암소가 낳은 송아지와 질 좋은 축분 퇴비는 농가의 소득이 된다.

이 방식으로 한우 30마리를 키우고 있는 안동가톨릭농민회 이상식 전 회장은 지난 1월 열린 '지속가능한 축산 방향 모색 토론회' 자리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쇠고기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각종 항생제, 성장호르몬으로 오염된 다국적 농기업의 수입 사료를 먹고 대규모로 키워진 소"라며 "오염된 수입 사료를 먹고 자란 쇠고기가 소비자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공감이 안전한 농산물을 만드는 '도농협력형 유기순환 생산체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씨는 "농민 입장에서 유기농을 하는 것은 소득 감소 등 여러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그렇게 힘든 과정을 뚫고 생산된 농축산물을 사주는 대상이 있지 않으면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민우회생협 역시 지난해부터 '암소수내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내'란 예부터 내려오는 상호부조활동을 지칭하는데, 생협 조합원들이 이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여성 농민에게 암송아지를 분양하게 된다. 이렇게 전달된 암송아지는 위탁 사육을 통해 농촌 소득 증대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되고, 생산자는 친환경 방식으로 키운 육류를 소비자와 직거래한다.

아예 '자원 순환' 방식으로 유기 축산이 자리 잡은 곳도 있다. 충남 아산의 '푸른들영농조합'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생협 소비자와 손을 맞잡고 자원순환형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자원순환 농업이란 지역 경종농업과 축산업을 연계하는 것으로, 농업 부산물을 최대한 활용해 축산에 사용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한살림

먼저 축산 농가들은 농업 부산물로 만든 전통 방식의 사료를 가축에게 먹이고, 가축에게서 나온 분뇨는 다시 유기농가들의 퇴비로 쓰인다. 조합이 생산한 농축산물은 한살림 등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도시와 직거래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친환경적 농축산물을 가까이서 얻게 되는 '로컬푸드' 운동이자, 급등하는 국제곡물가격 속에서 사료 자급률을 높이는 유기순환 운동이기도 하다.

이날 토론회 자리에서 안인숙 고양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은 "구제역 사태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일고 있지만, 소비자의 변화없이는 생산자의 변화도 추동할 수 없다"며 "안전하게 생산된 먹을거리를 소비자와 생산자가 얼굴을 맞대며 직거래 하는 방식이 앞으로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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