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는 포퓰리즘인가?"

[복지국가SOCIETY] "그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두고 우리 정치권에서는 무상급식 논쟁을 벌였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모두가 주지하듯이, 이 의제를 제기한 것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었고, 이를 정치적 의제로 키워낸 것은 다름 아닌 한나라당 측이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은 무상급식을 사회주의와 연관 짓는 무리한 색깔 공세를 감행했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상당히 성숙해져 있는 우리 시민사회에 별로 먹혀들지 않았고, 오히려 보편적 무상급식이 필요하다는 광범위한 여론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진보정치는 이에 기민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였으며, 심지어는 한나라당 내부의 일부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마저 보편적 무상급식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한나라당 지도부와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보편적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며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무상으로 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정부여당의 입장은 단호하였다. 진보 진영과 정부여당 간의 이러한 대립구도가 시민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먹혀들 조짐을 보이자,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전에 없던 적극적 정책 행보를 보여주었던 바, 보편적 무상급식을 민주당 정치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보편적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러한 정책적 대립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나자 많은 학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이를 한국정치의 새로운 현상으로 간주하였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보편적 무상급식과 같은 민생복지 의제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북풍과 노풍 등의 정치공학이 지방선거를 혼탁하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선거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에 대한 혹독한 심판이었고, 보편적 무상급식과 같은 민생복지 의제의 승리였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야당들은 자신들의 지자체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을 반드시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였다. 민주당도 지방선거 후 열린 의원 워크숍에서 전면적 무상급식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최대한 빨리 처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여당 등 보수적 엘리트들의 입장은 언제나 단호하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경선과정에서 원희룡 예비후보가 애초 주장했던 보편적 무상급식 공약은 나경원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없어져 버렸다. 우리나라의 보수 엘리트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부잣집 애들에게는 무상으로 밥을 주면 안 된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을 확실히 도와줘야 한다. 70~80퍼센트 국민들에게 복지를 주는 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의 이 말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보수적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보편적 무상급식 그 자체가 아니다. 사실, 이것을 실시하는 데는 연간 2조 원 정도면 된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1070조 원에 달하고, 일반정부의 재정 규모가 GDP의 30퍼센트인 대한민국에서 단지 연간 2조 원의 추가적 재정 부담이 두려워 정부여당과 보수적 엘리트들이 지방선거에서 불리한 줄 뻔히 알면서도 보편적 무상급식 반대를 끝까지 고수하였겠는가? 아니다. 이들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무상급식' 그 자체가 아니라 '보편주의'였다.

6월 9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민주당은 전면적 무상급식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와 함께 무상교육과 월 10만 원씩의 아동수당, 고등학교의 의무교육화, 노년층 교통수당, 노인틀니 등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다짐했다. 우리는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매우 걱정된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 정부여당과 우리나라의 보수적 엘리트들은 무상급식 그 자체 보다는 이것을 시작으로 해서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 사회서비스의 제반 영역으로 보편적 복지가 제도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 엘리트들은 민주당에게 '보편적 복지' 철학으로 돌아서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민주당의 복지 철학이 보편주의로 바뀌면 돈 들어갈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인데, 우리나라의 정부재정이 적자를 누적하고 있으므로 민주당이 과거 10년의 집권기간 동안 늘 하던 원래의 모습인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보편적 복지는 포퓰리즘이므로 우리나라가 이를 따를 경우 현재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도 절대 빼먹지 않는다.

실제로 보편적 복지는 '포퓰리즘'이고, 이것의 결과는 국가적 재정위기인가?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보수적 엘리트들의 말을 듣는 것이 좋겠다. 최근 재정위기로 문제가 된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PIGS)은 남부 유럽의 대표적 국가들로, '남 유럽형 복지국가 모델'에 속한다. 이들 국가들은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제도화가 가장 미발달된 국가들로 북유럽이나 유럽대륙의 국가들과는 '복지의 보편주의 수준'에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사실상 이들 남유럽 국가들은 보육, 교육, 여성, 의료, 요양 등 사회서비스의 보편주의 측면에서 복지국가 축에도 끼지 못한다. 사회서비스의 가족주의 모형으로 복지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성장과 복지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는 국가들이다. 그런데 진짜 보편주의 복지국가인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는 어떤가? 이들 나라는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우수하고, 경제성장률도 유럽 평균 보다 훨씬 높고,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력도 매우 탁월하다.
▲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스웨덴 노인들. 보편적 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가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도 더 우수한 편이다.

사회서비스의 보편주의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들먹이며 보편주의 복지를 폄하하고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은 '고상한' 주류 엘리트들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회서비스의 보편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에서 그것 때문에 나라가 파탄 났다는 새로운 소식과 증거들을 제시한다면, 진실로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보편주의 철학을 깨끗하게 포기할 용의가 있다. 정부여당과 보수적 엘리트들의 말대로라면, 보편주의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포퓰리즘'에 포획된 채 망해버린 국가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소식을 접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성장과 분배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상호 배타적일 때, 즉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제를 가진 국가들에서 양극화의 고통과 함께 경제사회적 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보편적 제도로서의 무상급식은 그야말로 작은 부분이다. 점차 사회서비스의 더 큰 부분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중위소득계층까지만 보육료를 차등 지원하고 있는 보육제도도 사실상의 무상보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동수당도 지급해야 한다. 보편적 무상교육은 당연한 것이며, 대학등록금도 이자 부담을 없앰으로써 사실상의 완전후불제로 개편되어야 한다. 의료와 요양도 보장성 수준을 대폭 높여 사실상의 보편주의를 달성해야 한다. 소득보장에서의 보편주의도 중요한다. 일생에 걸쳐 소득의 단절이 없도록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의 실질적 도입과 기초연금을 기본으로 하는 보편적 국민연금의 내실화도 요구된다. 이러한 보편적 제도의 도입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러므로 재정 누수의 방지 등 정부재정의 효율적 사용과 함께 조세정의의 구현과 '공평과세'를 통한 '증세'가 필요하다. 정부의 개입과 재정적 책임이 막중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감세와 규제완화를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해준다. 이제 '보편적 복지' 없는 경제성장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최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필자와 함께 각계 전문가 등 여러 오피니언 리더들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자는 시민운동으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민건강보험제도라는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우수한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므로, 다수 국민들이 의료비 불안을 느끼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이중의 경제적 부담을 겪고 있는 바, 이를 바로 잡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보수 언론과 엘리트들은 "꿈같은 복지"라며 우리를 '포퓰리즘'으로 몰아세우고 있다(<조선일보>, 2010년 6월 8일자). 아파서 입원해야 하는 환자에게 경제적 능력을 따지는 것은 반(反)인권적이다. 미국의 '식코' 형 시장주의 의료제도가 그렇다. 이와 달리, 유럽 복지국가들에서는 공적 의료보장제도가 보편적으로 잘 제도화되어 있으므로 입원 치료의 경우 사실상 무상의료다. 국가적으로 보편적 무상교육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교육과 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 언론과 엘리트들의 주장처럼, 이것이 '포퓰리즘'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포퓰리스트가 되자. 그래야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 즉 성장과 분배가 '하나로' 사회 통합적 발전을 지속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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