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를 "절망사(deaths of despair)"라고 부른다. 그리고 프린스턴대 동료 교수이자 부인인 앤 케이스와 함께 미국의 외교전문잡지인 <포린어페어스> 3/4월호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했다. 절망사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으로 미국인들의 기대 수명이 줄어들었다며 그 주된 원인을 절망사에서 찾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18년 동안 사망한 미국인보다 2주마다 절망사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들이 더 많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턴과 케이스는 특히 이러한 절망사가 젊은 세대와 백인 계층, 그리고 저학력 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1970년 이후 출생자 가운데 대학 미졸업자의 절망사가 대학 졸업자보다 2배 이상 높은데, 백인 성인들 가운데 대학 미졸업자의 비율이 42%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젊고 대학을 나오지 않은 백인들이 "절망사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절망사가 급격히 확산되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디턴과 케이스는 "미국 노동 계급의 장기적이고 점차적인 몰락"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실질임금의 하락과 일자리의 감소로 인해 많은 미국인들이 결혼이나 공동체 생활에서 소외되고 있는데, 이것이 절망사 확산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서 절망사가 늘어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득과 학력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저학력 젊은이들이 고학력자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부모보다도 "못 났다"는 자괴감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취약한 사회안전망도 절망사의 확산을 막지 못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럽과 달리 소득 재분배 효과가 상류층에게 집중되어 있고, 설상가상으로 미국인들의 의료비 부담률도 월등히 높다. 미국의 의료비 부담률은 GDP 대비 18%에 달하는데 이는 OECD 국가들 가운데 압도적인 1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턴과 케이스는 이것이 저소득 계층의 추가적인 실질 소득 감소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미국은 부자 나라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고용주가 노동자의 의료보험료를 책임지는데", 이로 인해 2018년 기업들의 의료보험료 부담액은 연 2만 달러에 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노동 비용의 일환으로 간주되어" 기업이 고용을 줄이거나 인간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디턴과 케이스는 절망사 확산의 치유책 가운데 하나로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 도입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사람에게 봉사하는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미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첫발을 내딘 보편적 의료보험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후퇴하고 있고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들은 또한 절망사를 "미국병"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세계화·자동화·양극화가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면서 "노동 계급의 몰락"이 확산되고 이것이 절망사의 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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